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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re: re: 양육방식과 종교/정치
작성자 종교     게시물번호 -8193 작성일 2007-04-21 19:35 조회수 559

토마님, 답변 감사합니다. 저는 7월이 되면 좀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같습니다. 그 때 꼭 뵙고 한 잔했으면 좋겠습니다. 보네스 공원에 가서 삼겹살을 한번 굽는 것도 좋을 것같구요. 감사합니다.

 

과학적 방법에 대해서는 아까 글 적었을 때부터 저와 토마님의 이해가 다르지 않다는 전제를 둔 것이었구요. 제가 지적한 것은 사람들이 사물을 인식하고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 (world-building process)은 우리가 말하는 과학적 절차에 의해서 꼭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중요한 타자에 의해 오히려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현상학자는 생활세계 (life-world; lived world; Lebensweld)라고 하는데, 학문적인 또는 과학적 성찰 이전 (pre-reflective)의 단계를 말합니다. 제가 제시한 것은 바로 우리 모두, 대부분 이런 전성찰적 단계에서 세계를 구성하고 지식을 얻는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킨스의 The God Delusion에 올리신 글이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최근의 이 책이 공전의 히트를 쳐서 상징적으로 열거 했을 뿐인데, 어쨌든  이런 논의들이 서구 중심적 논의라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신을 믿는 종교는 종교적 현상의 일부인데 유신론-무신론의 구도 때문에 불교의 깨달음이나 유교가 말하는 태극, 이치, 하늘, 道의 인신론적 내지 형이상학적 개념과 여기에 맞추어 살려는 경 (敬)으로서의 사는 가치가 전혀 반응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윤리학에서 말하는 삶의 가치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인데 말씀이죠.

 

저는 토마님께서 기독교적 신이나 예수를 믿지 않으신데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교회라는 조직이 일반 세속적 조직보다 제 경험으로 보건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타인들과 어떻게 평화롭고 정의롭게 더불어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이상학적 신념을 갖든 사회에서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존경받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토마님같은 무신론적 생각을 가지신 분이 많아서 많은 글을 서로 올리면 참 좋을 것같네요. 생각은 달라야 자극이 되고 발전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인 사회에서 토마님처럼 용기있게 자기 신념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저는 그것을 높이 사고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종교나 사회 전반에 대한 생각을 나누길 바라겠습니다.

 

종교 올림

 

 

 

 

 

  



☞ 토마 님께서 남기신 글


안녕하세요? 종교학이 경험과학인 사회과학의 한 분야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님이 이 학문에 종사하시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도킨스가 그 편지에서 말하는 것은 종교를 포함한 일반적인 전통적 관념이 전통, 권위, 계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제반 학문에 대한 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 분야에서의 학문적 성과는 아마 도킨스도 관심이 있을것입니다.

 

제가 올린 도킨스의 편지는 "A Devel’s Chaplain"라는 책에 나온것입니다. 아마 나온지 꽤되어서 (7-8년???) 중고책방에 있을지 모릅니다. 말씀하신 책 God Delusion도 후다닥 (대충) 읽어 보았는데, 도킨스는 종교에 대해 너무 적대적이라고 느꼈읍니다. 저는 물론 도킨스가 종교의 "말되지 않음 (non-sense)"에 대해 말할땐 완벽히 동의합니다만, 도킨스처럼 종교가 Harmful non-sense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토마님이 나오셔서 댓글을 다는 것이 예의일 것같아서 주저리 주저리 몇 마디 적어 보았습니다. 두서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곧 한번 뵈면 좋을텐데요.

 

 

저는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는지, 천국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전통이 가르쳐 주는 자기 겸허와 이웃 사랑은 결코 버리고 싶지 않는 저의 삶의 중요한 지식이자 권위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가 부활했다거나, 천국이 있다거나를 절대 믿지 않고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아님니다만, 말씀하신 기독교의 그 전통--자기겸허와 이웃사랑--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사시는 분들은 참으로 무한존경을 받을만하죠 (예수님을 포함해서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 종교 님께서 남기신 글


토마님 안녕하세요.

 

도킨스의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신간을 사보려하는데 베스트셀러로 된 책은 저는 잘 안사고 보통 중고 시장에 흘러 들어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저처럼 가난한 사람이 새책 사는 것은 아까워서 말이죠.

 

전통, 권위, 계시에 근거한 지식이 아니라 관찰과 검증을 통한 지식, 그리고 이런 지식은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라기보다는 근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자가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듯이, 인문사화과학자들도 기존의 가설이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종교 사회학자인 아일린 바커 (Eileen Barker; London School of Economics)라는 여성 학자는 영국에서 통일교들의 행위 패턴을 13년간의 연구를 통해서 책을 냈는데 책 제목이 통일교도 되기 (The Making of a Moonie)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의 책은 긴 기간동안 영국 성공회가 주류종교인 사회에서 이방인 소수종교인들의 종교 개종 방식과 사회적 관계를 연구한 사회과학적 연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바커가 제안하기를 제기를 Scientific Study of Religion이라는 말보다는 Social Scientific Study of Religion를 사용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과 사회적 관계의 방식이 자연과학적 연구로 모두 환원시킬 수 없다는 제안입니다.

 

종교 이야기가 나왔으니 종교사회학 또는 종교학적인 차원에서 몇 말씀드립니다. 종교학은 경험과학으로서 어떤한 계시나 신이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출발합니다. 이런 출발점을 방법론적 불가지론 (methological agnoticism)이라고들 하지요. 즉 학문의 대상으로 된 종교적 현상이란 대상을 연구할 때에 종교학은 신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는 종교학적 연구의 범위를 넘어서니 건드리지 않고, 오직 경험적 내용만 다룬다는 뜻입니다. 즉 이런 면에서 칸트적이지요.

 

종교학이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신이 있다, 열반이 이루어진다, 무당들의 신이 존재한다, 도통이 실재한다 등의 검증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것이 실재한다고 믿는다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표현하는 내용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경험적 내용이기 때문에 후자만 다룹니다. 

 

이런 인간들의 종교적 진술은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이런 종교적 패턴을 두고 볼 때, 사람들의 지식을 구성하는 방식은 자연과학적 가설이나 이론에 근거해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나라에 다녀와도, 그 사람이 신을 믿을 수 있고,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이 예수의 대속의 교리를 믿는다든가, 첨단을 걷는 물리학자가 불교의 열반을 믿는다는 것은 자연과학적 검증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 사회학적으로 우리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실제로 자연과학적 결과라기 보다는 도마님의 아래의 글에서 지적하셨듯이 친구나 종교, 정치적 이념이 지시하는 훈육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식 사회학에서 이것을 "중요한 타자" (significant other)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삶의 가치나 윤리적 규범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나 또는 사회적 권위를 중요한 타자라고 하는데 우리의 지식 구성은 바로 이런 영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내 성서를 문자적으로 파는 사람과 도킨스의 책?모든 지식의 규범과 기준으로 삼아서 사는 사람의 세계 (symbolic world)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현재 제가 도킨스의 God's Delusion을 읽었다면 이 글을 쓰는 저의 입장이나 내용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종교적 현상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제가 종교학을 한다고 하면, 하는 말이 교회하나 차리면 되겠네요. 이민교회 잘되던데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없겠수다라고 하는데 종교학은 일반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적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종교학은 어떠한 종교적 계시, 권위, 교리, 전통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주어진 자료를 통해서만 학적 작업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이런 경험론적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과학적 결과물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하는 것은 나쁘다, 남을 시기 질투하는 것은 대인답지 못한 소인배의 행동이다, 남을 사기처먹는 못된 짓은 치졸한 짓이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갖는 사회적 규범이나 지식, 그리고 윤리적 규범이나 지식은 전통, 권위에 근거해서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누누히 지적했듯이, 어쩌면 종교학이 목사되는 것으로 아는 방법론 조차 이런 계시, 권위, 전통에 근거하지 않든다는 것은 다시 강조합니다.

 

저는 소박하게 자연과학하는 정직하게 과학적 이론과 가설을 통해서 논문을 쓰고 (황우석 교수처럼 하지 않고), 사회과학하는 사람들이 통계적 조작이나 해석을 통해서 거대 기업에 이익이 되는 파렴치 하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노력하고, 인문학 하는 사람이 특정 계급이나 정당을 위해서 아부하지 않고 굳건하게 자기가 믿는 신념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실은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규범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행위자 (social actors)입니다.

 

저도, 모

토마님이 나오셔서 댓글을 다는 것이 예의일 것같아서 주저리 주저리 몇 마디 적어 보았습니다. 두서가 없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노미나와 피노미나의 구분에서 노미나의 영역은 결국 우리의 결단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예수가 육체적으로 부활했는지, 천국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전통이 가르쳐 주는 자기 겸허와 이웃 사랑은 결코 버리고 싶지 않는 저의 삶의 중요한 지식이자 권위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이것은 종교학의 범위를 넘은 저의 실존적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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