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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성 유전의 효과
작성자 토마     게시물번호 10147 작성일 2017-06-26 16:29 조회수 1542
밑에 와치독님과 아프리카님 사이의 대화중 종교성의 유전적 효과 얘기가 나와서 갑툭튀합니다. 

심리적 현상에 대한 유전적 효과는 주로 일란성 쌍생아와 이란성 쌍생아들을 비교하여 알아냅니다.  일란성 쌍생아들은 유전자 카피가 100% 같은 사람들이고, 이란성 쌍생아들은 평균적으로 50%의 유전자를 쉐어 합니다. 

만일에 일란성 쌍생아나 이란성 쌍생아나 종교적 행태의 유사성에 큰 차이가 없다면, 우리의 결론은 종교성은 유전보다는 환경의 영향을 더 받는다고 봐야 할 것이고, 만일 일란성 쌍생아들이 이란성보다 더 비슷하다면 유전적 효과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종교성을 religious affiliation으로 정의 했을때는 연구결과가 별 재미가 없숩니다. 기독교 집안에서 사람들은 기독교라고 쓰고, 불교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불교, 무슬림 집안은 무슬림, 그렇게 가기 땜에 종교내에 어떤 variation이 없지요. 
더 재밌는 연구 결과들은 종교성 (즉 얼마나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느냐?)을 연구할때 입니다. 얼마나 자주 교회나 사찰에 가는지. 성경과 불경과 코란 등등을 얼마나 자주 읽는지, 또는 기도를 자주 하는지 등의 행동 방식을 연구하면 기독교인이라도 어떤 사람은 매우 "신실"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죠,. 

이런 종교성을 측정하여 연구했을 경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면 (20대 미만) 일란성 쌍생아나 이란성 쌍생아나 그 유사 성에서 차이가 거의 업습니다.  즉 가정환경이 청소년기 까지의 종교성을 거의 "결정"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격에 맞는 종교적 스탠스를 갖기 시작합니다.  즉 30대, 40대, 또는 50대 성인을 가지고 같은 연구를 하면, 일란성 쌍둥이들의 종교성 유사성이 이란성 쌍생아들보다 훨씬 더 커서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경향은 정치적 성향, 보수성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즉 어린 시절에는 부모영향이 절대적이지만, 자라면서 자신의 성격에 맞는 (그러므로 좀 더 유전적 효과에 영향을 받는) 종교적, 정치적 스탠스를 갖도록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이 현재까지의 결론입니다.   간만에 토마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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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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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님께서 한 판에 정리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토마님 말씀을 제 나름대로 이해한다면, 독특한 환경적 영향이 아니라면, 성인들의 종교성은 거의 바뀔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런 사람들의 변화의 가능성(개종포함)은 현저히 떨어지겠군요. 그러니까 성인들을 상대로 이른바 전도(선교)를 열심히 해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말해서 여기에서 정치적 종교적 선전활동의 결과가 significant 하지 않을 것 같으니, 정치선전이나 종교선교활동보다는 여러 이슈들을 두고 그냥 노닥거리거나 가끔 티격태격 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겠군요.

토마  |  2017-06-27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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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모 절대적으로 그렇다기 보다는 그런 경향이 있다는 정도이니까 선전선동 활동도 열심히 해야죠. ;-)

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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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언급해서 낯 뜨겁지만, 어쨌든 토마님을 통해서 프랜스 드 왈 하고 알트마이어를 알게 된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훈스버거와 알트마이어의 [Atheists] 이후 [Amazing Conversions](1997)를 꼭 읽고 싶었는데, UfC 도서관에는 없고 책값은 비싸고…제가 비싸다는 것은 10불 이상이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CBC annual book sale에 이 책을 보자 맘이 반가워 마음이 후덜덜 했죠. 저는 이 책의 써베이 대상자들이 주로 캐나다 대학생으로 제한 적이긴 하지만, 결론은 제가 알고 있는 기존의 신종교연구나 종교사회학자들의 아이들의 종교성을 socialization에 주로 둔다는 것과 차이가 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Amazing Conversions](1997)이 좀 outdated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저자들은 미네소타 쌍둥이 연구가 아직 replicated 된 적이 없어서 여러 연구자들이 의문을 제기했다고 하는데요. 그 후 많이 replicated 되었나요? 그리고 알트마이어와 훈스버거는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봐도 종교성의 견지에서 generic dispositions를 지지하는 바가 거의 없다(little support)라고 하고 있는데요. 이와 반대로 그들의 연구결과는 많은 방식으로 개인의 “종교발달의 상식적 사회화 설명”(the common sense socialization explanations of religious developments)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아래 워치독님과의 대화에서도 이들을 언급했지만, prenatal upbringing이 자녀들의 종교적 태도와 실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97%, 97%, 97%이구고요. 개종이나 배교는 아주 희귀한 사례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무신론자의 비율이 극히 적은데 그 중에서 배교자로서의 무신론자의 비율로 보면 더 적겠죠 (무신론자의 53%).

토마  |  2017-06-27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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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쌍둥이 연구는 이제 여러 나라의 쌍생아 등록쌤플만도 수만쌍에 달합니다. 연구간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종교성도 아마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일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청소년기까지는 물론 집안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지만 20대를 지나고 늙어가면서 유전적 효과가 서서히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두 그 알트마이어 책은 직접 못 보았습니다. 나중에 뵈면 빌려서 봐야 겠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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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님, 답변 감사합니다. 실은 윗 글 올리고 후회(?) 했습니다. 제 게으름이 부끄러웠죠. 토마님 책의 "종교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동안 이 쪽에 대한 글을 약간 읽다보니 제 머리속에 쏙 들어왔습니다. 토마님의 non-judgmental 글이 인상적이고 그리고 저는 많이 배웠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툭툭 던진 말씀이 저한텐 엄청 교육이 되었고 제가 모르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실은 저만 모르고 있었더군요. 아무래도 토마님이나 저나 전생에 좋은 일,즉 선업(good karma)을 좀 많이 쌓았나 봅니다. 이렇게 만난 인연도 있군요. 물론 이 말이 농담인지 아시죠? 저는 요즘 뒷마당에서 노느라고 얼굴이 까맣게 탔습니다. 오늘은 데크 좀 고쳤죠.이 책은 아주 조금 읽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빌려 드리죠. 알트마이어의 언급된 두 책을 작년에 읽었다면, 알바할 때 엄청 도움이 되었을텐데, 아쉽군요.^^

토마  |  2017-06-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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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특히 저희들 책이 좋다고 하면 기분이 매우 업되죠 ㅎㅎㅎ

언제 한번 만나서 커피를 하시죠. 저두 작년부터 꽃 기르는 재미를 알았습니다. 얼마나 예쁘던지 꼭 자식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작년에 그렇게 많이 올라오던 백합이 아직 피지 않았는데, 기다려 집니다. 나중에 활짝 피면 사진이라도 올려야 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내사랑아프리카  |  2017-06-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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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 장을 읽다가 좀 더 차분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미뤘더니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넘 재밌어서 오늘이나 내일 다 끝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올 초부터 나무에 싹이 언제 돋을지 매일 매일 확인하고 예상치 않은 여러 꽃들을 배워 나가는 재미가 여간 아니군요. 그래서 아예 다른 곳에 놀러가는 것 잊고 집에서 음악듣고, 커피 마시고, 저희 펫들(요즘 한국은 트리펫/treepets이란 말도 있더군요)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그리고 가지가 옆으로 뻗다가 올라가는 소나무의 줄기와 꽃들에 홀 딱 반했습니다. 5월부터 번갈아 피는 꽃들의 향연을 보면서 저는 어느샌가 신비주의자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산골마을 출신이라 식물에 익숙하지만, 농부이신 부모님의 농사를 제대로 도와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군요. 저희 집엔 밤나무농사와 한봉 농사를 엄청나게 했었고, 부친이 나무에 나름 조예가 있으셔서 다양한 종을 심으셨는데, 그것이 부친의 나무이지 나무들이 저한테 말을 걸어오는 지는 몰랐습니다. 나무의 생령적 특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화 [반지의 제왕] 제 2편에 나오는 나무들의 대화 장면부터였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원시부족민인가 봅니다. 요즘 저는 나무에도 정령이 있다는 animism에 빠졌습니다. 언제 사진 좀 올리 주시던가 이미지 좀 보내 주세요.:)

토마  |  2017-06-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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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식물에 빠진 분들 많네요 ;-) 저는 교외에서 살 때는 그 정원이 제가 핸들할 수 있는거 보다 컸고, 그때는 주로 더 어글리하지 않기 위해 일을 했는데, 이사와서 손바닥만한 정원에서 사니 꽂도 심고, 그 꽃을 기다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격세 지감이죠. 아프리카님정도는 아니지만, 저두 꽃과의 교감이 몬지 약간 느끼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죠 ;-)

watchdog  |  2017-06-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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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이해했는 지 모르지만, 종교성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종교활동이 자기 취향과 일치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더 쉽다는 얘기인가요? 이 논리가 맞다면 제 유년 시절을 떠올려봐도 맞아떨어집니다. 8세 이후 20대 초반까지 종교활동을 했지만 타고난 호기심과 실험을 좋아하는 제 마인드와는 동떨어졌기 때문에 흥미를 잃고 배교를 하게 된 셈인 것 같습니다. 반면 사교활동을 좋아하고 봉사하는 마인드가 투철하신 어머니께는 종교활동이 개인적 취향과 맞아떨어지고, 그래서 30대가 된 성인이 되어서도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토요일 마다 10시만 되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와서 인쇄물을 나눠주러 오는데 나름 친절하게 3번이나 거절했음에도 계속 찾아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토요일 아침에 차 고치는 중에 몰몬 전교사 둘이 다가와서 거의 1시간 가까이 얘길하다 돌려보낸 적도 있는데, 이런 거 하면 밥값은 주는 지 천당가려면 전도 몇 시간 채워야 되는 건지, 뭐 이런 게 궁금해서 끝도 없이 물어봤다가 질린 표정을 하고 가더군요. 내일 또 여호와 증인들이 오면 뒷마당으로 초대해서 감자 흙 덮는 거나 좀 도와달라고 해 볼까요. ㅎㅎ

늘봄  |  2017-07-0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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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성 또는 종교적 이란 말(religious)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요즘 많은 현대인들은 종교적이란 말의 의미를 어떤 특정 종교단체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 성당 사찰에 속하지 않고도 대단히 종교적으로 삽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종교적 또는 종교성 이란 말의 의미는 인간이 존엄성을 잃지 않고 온전하게 사람답게 살려는 바램이고 요청입니다. 물론 종교단체에 속하지 않고도 종교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세상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종교적 요청은 제도적인 종교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던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며, 나중에 신/하느님이란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21세기 과학시대에 신/하느님 없이도 종교성은 살아있고 종교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율성 창조성 이성 지성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종교성이고 종교적인 삶입니다.

교회/성당/사찰에 가는 것만이 종교성 내지는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독교 유대교 회교도 불교 힌두교 만이 종교가 아닙니다. 즉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것만이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인간의 상호의존적인 삶이며 관계론입니다. 종교인-무종교인 기독교인-비기독교인 신자-불신자 유신론자-무신론자로 차별하는 말은 믿음체계에서 사람들을 내부인-외부인으로 분리시키려고 만든 생존의 이분법적인 발상입니다.

종교, 종교성, 종교적 이란 말에 대해 과거에 교리적이고 관념적으로 생각했던 의미를 새로운 의미로 대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7-07-0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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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치독님, 안녕하세요. 제가 이해한 토마님의 말씀은 종교성이란 순전히 사회화 과정의 산물이 아니라 유전과도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은 20대까지는 부모나 자기 주변의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의 영향 하에 있다가, 20살 이후엔 경제적 등이 자유로워져서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성이 발휘되어 종교성도 그런 특성이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댓글에서 언급한 알터마이어와 훈스버거가 나중에 입장을 바꾸었는지는 모르지만, 위의 [Amazing Conversion]이라는 책에서 그들은 유전적 기질 (genetic dispositions)이 종교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의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225쪽). 저는 심리학 쪽에서는 잘 모르고 종교사회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종교성은 사회화(socialization)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보고 있는데 저는 지금까지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이 문제는 토마님 (with Michael Ashton)의 [The H Factor of Personality]를 보시면 더 종교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제 개인의 성격을 반추하는 데도 좋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반사경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게시판과 마당 게시판을 통해서 토마님을 만난 것을 인생의 행운으로 생각하고 있고, 캐나다에 와서 저의 쌤에 이어서 저의 앎을 지평을 넓혀준 두번째 분입니다. 종교성의 문제는 와치독님과 대화 이전은 그저 지나가듯이 했을 터인데 님과의 대화 덕분에 앞으로 독서할 때 이 문제를 더 심도있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늘봄님의 위의 주장은 일부 신학적 주장으로서 일면 타당한 면은 있지만, 종교성 측정이라는 측면에서 사회과학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호한 주장들입니다. 저는 사회과학은 잘모르지만, 사회과학(심리학, 인류학, 사회학)에서 말하는 종교성(religiosity)이란 사회적 심리학적 실재로서의 종교현상을 수량화시켜서 그 스케일을 알아보자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종교의 정의나 종교성은 연구대상을 어떻게 잘 operationalize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며칠 전에도 언급했지만, 종교에 대한 사회학적, 정치학적, 심리학적 개론서를 보더라도 사회과학적 접근은 종교들의 자기 진리주장(religious claims), 신의 실재 유무의 주장, 그리고 신학적 진술을 배제하고 사람들의 사회적 그리고 행위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 종교성을 측정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위의 늘봄님의 주장은 신학 seminary에서의 토론이나 담론으로는 가능하겠지만 종교의 사회과학적 과학적 담론이 될 수 없고, 심지어 인문학적 입장에서도 통용되기 힘든 주장입니다. 늘봄님께 늘 아쉬운 것은 늘봄님의 독서가 상당히 편향적이고 그러한 편향성에 근거해서 여러 현상이나 대상들을 일반화(generalization)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한 번 깊이 숙고해 보시면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늘봄님의 이해와 소통이 더 용이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신학의 측면에서는 제가 늘봄님과의 토론을 통해서 많이 생각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만일 늘봄님이 안 계셨다면, 신학적 사유에 대한 도전과 인식에서 저는 상당히 complacent 했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늘봄님을 만난 것도 제 인생의 행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일 또 여호와 증인들이 오면 뒷마당으로 초대해서 감자 흙 덮는 거나 좀 도와달라고 해 볼까요?”는 좋은 제안이 될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때론 성가신 마음이 생길 때가 있는데, 좀 잔인 하기는 하지만, M. James Penton의 [Apocalypse Delayed: The Story of Jehovah's Witnesses: The Story of Jehovah's Witnesses]를 보여주며 몇 마디 했더니 다시는 안 찾아오더군요. 제임스 펜턴의 조상은 여호와 증인의 창시자 Charles Taze Russell과 함께 한 1세대들이고 본인이 여호와증인이었습니다. 어릴 때 그가 몸이 약해서 밥벌어 먹기 힘들 것같아 부모가 대학을 보냈는데, 그는 역사를 전공하고 레쓰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친 교수였습니다. 여호와증인은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을 장려하지않거든요. 그는 이 책으로 여호화 증인으로부터 파문을 당했죠. 위의 책은 3판을 찍었고 토론토 대학 출판부에서 출판되었습니다.

토마  |  2017-07-0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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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이 많이 붙을 줄 몰랐습니다. 아프리카님이 저보다 더 잘 답변을 해 주신거 같아서 저는 더 이상 붙일 말은 없습니다.

늘봄님의 의견에 대해서 아프리카님이 잘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수량화 하는냐에 대한 구체적 절차를 이야기 해야 하고 이제까지의 여러 연구에서 종교적 commitment는 행동적으로 정의하고 양화해 왔습니다. 제가 위에서 말한 연구 결과는 이와 같이 정의된 종교적 행동에 대한 유전적 효과를 말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은 종교가 인식론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또는 종교의 현대적 의미는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까요.

watchdog  |  2017-07-0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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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님의 친절한 clarification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탈종교 성장 과정과 비슷한 것도 흥미롭고요.

여호와 증인들의 교육에 대한 입장은 몰랐던 점인데 지식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저에겐 결정적인 deal breaker네요. Blood transfusion 거부하는 것도 놀랄 일인데, 교인들에게 교육의 기회마저 거부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생각되네요.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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