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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 때문에 기분 더러웠던 하루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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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025 |
작성일 2009-01-28 19:58 |
조회수 2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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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년으로 기억한다. 6 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작고한 고 정대위 박사가 모교 학장으로 부임해 왔을 때 이야기다. 새 학장이 온다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귀가 번쩍 띄는 정보가 하나 들어왔다. 당시 문교부(지금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던 이규호 씨가 그의 은사였던 새 학장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교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이규호 전 장관은 학교 동문으로 12. 12 사태 직후 신군부에 의해 발탁돼 통일원 장관을 하다가 5 공이 출범하자 마자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모교가 반민주 청정지역이라는 일종의 착각 겸 자부심이 대단했던 시기여서 군사정권의 각료가운데 동문이 끼어 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학생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몇 몇이 모여 거사 계획을 세웠다. 이 장관의 승용차가 학교 구역에 들어서는 즉시 썩은 계란으로 그 차량을 집중공격 한다는 시나리오였다. 선발된 공격조 교육 교재로 쓰기 위해 당시 장관급 공무원 전용차량이던 ‘그라나다’와 ‘푸조’의 사진을 구하려고 남산 도서관 간행물실에서 몇 시간 동안 신문 잡지를 뒤적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음).
정대위 박사의 학장 취임식에 이규호 장관이 나타나지 않아 이 거사는 계획으로 그쳤지만, 당시 학생들의 결벽에 가까운 수치심이 지금 생각하면 참 아름다웠던 아련한 추억이다.
내가 오늘 도마 위에 올릴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된 이규호 씨가 아니라 장경동 목사다.
이규호 전 장관과 장경동 목사가 서로 비교할 대상은 아니다. 시대적 의미도 다르고 그들의 사상 사이에 의미 있는 공통점이 있지도 않다. 공통점이라곤 두 사람이 각각 나와 같은 학교와 교단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 자신만이 느꼈던 일종의 ‘더러운 기분’ 뿐이다. 그리고 이 더러운 기분은 이규호 전 장관이 모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장경동 목사가 같은 교단 출신(천만 다행으로 지금은 아니란다)이라는 이야기를 언젠가 그 교단 목회자로부터 들었을 때 더 심하게 몰려왔었다.
며칠 전 미국 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한 타 종교 비하발언으로 또 말썽을 일으킨 이 사람이 혹시 외국인들에게도 알려져 있나 궁금해서 어제 Google 에서 ‘Chang Kyung Dong’을 검색해 보았다. Youtube 동영상이 가장 먼저 떴는데 줄줄이 달린 영어 댓글들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fuxk Korea” 같은 무개념 악플이야 무시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한국 종교 문화의 저열함과 유치함을 나름 진지한 논리로 빈정대는 소리들에는 일부 공감과 함께 일종의 민족적 모멸감마저 맛 보아야 했다.
장경동 목사 이 사람이 종교 감시와 설교 모니터링 활동이 활발한 미국에서 마구 내뱉은 소리들이 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스스로 대한민국의 명예까지 훼손하고 있는 준 매국노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장경동 목사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자주 쓰는 말은 “무식하다”는 말이다. 며칠 전 말썽의 진원지인 미국의 어느 한인교회에서도 그는 일부 목사들이 십일조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이를 굳이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그들이 무식해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십일조에 대한 다른 견해를 피력한 어떤 목사가 무식할 가능성보다는 “석가는 불교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즉 “석가가 불교를 만들었다”)는 난생 처음 듣는 소리를 되풀이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장 목사가 무식할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최악의 경우라야 ‘해석의 오류’ 일 뿐이지만 후자는 사실관계에 대한 ‘정보의 부재’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말을 몇 개월 간격을 두고 두 차례나 한 것으로 봐서 나는 그가 왜 무식할 수 밖에 없는 지 드디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무식은 영어로 ignorance 인데 ignore (무시하다) 라는 타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다. 자기가 고집하고 있는 고정관념에 도움이 되는 정보 이외에는 알려고 하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그 철저한 ignoring (무시함) 이 결국 ignorance (무식)을 초래하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헌데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무식하건 어쨌건 기독교인이라면 우선 자신의 종교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기독교의 복음’을 어떻게 하면 비 기독교인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를 심혈을 기울여 연구할 것이다. 가장 먼저는 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관심을 갖도록 노력할 것이다. 소박한 예이기는 하지만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매년 석탄일에 축하 현수막을 거는 것이라던가, 샘물교회(담임 박은조 목사: 재작년 그 사건 후 많이 정신차렸다)가 지역 선교 지원의 일환으로 인근의 형편이 어려운 사찰에 시주를 올리는 사례 등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전도를 한답시고 ‘장경동 목사처럼’ 이런 말을 했다고 하자.
“스님들도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
우선 나는 그 전도자의 정서지능을 average bear 수치보다 저렴하다고 단정할 수 밖에 없다. 둘째 나는 그가 아기를 반토막 내서라도 자기의 어머니로서의 존재영역을 확보하려 한 솔로몬 앞의 가짜 어머니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셋째, 혹시 그가 기독교를 파괴하기 위해 장기간 암약해 온 어느 ‘기독교 증오단체’의 간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겠다.
단언하건대 정답은 이 셋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혹시 다른 정답이 있다면 제시해 보기 바란다.
아무래도 솔로몬과 두 어머니 이야기는 신앙을 빙자해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헌금을 뜯어내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가짜 선지자들을 찾아내는데 써 먹으라고 히브리 경전 안에 보너스로 끼워져 있는 예화인 것 같다.
장경동 목사가 나와 같은 교단 출신이건 아니건 나에게 그런 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그가 나와 같이 대한민국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더러웠던 어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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