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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 종교문맹퇴치 24] 천국과 지옥과 종교 없는 큰 그림의 세계를 상상해 보세요!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051 작성일 2018-07-16 07:33 조회수 2126

[21세기의 종교(Religion)는 어떤 대상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우주의 개체들이 상호의존관계 (Relationship)를 이루어 살아내는 삶이다. 따라서 믿는 것(believing)과 사는 것(living)을 분리하거나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종교문맹이라고 한다. 종교문맹은 종교의 진리들과 과학의 진리들을 별개의 것들로 따로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며 또한 역사의 진리들과 종교의 진리들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문맹은 우주진화 세계관이 사회주류를 이루고 있는 21세기에 과거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그 분별을 무시하고 거부함으로써 비과학적인 삼층 세계관에 근거한 가치관과 윤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종교문맹은 인류의 밝은 미래에 큰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종교문맹은 반드시 퇴치되어야 한다.]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상상해 보세요!)의 노랫랫말처럼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우리 아래엔 지옥이 없고, 우리 위엔 하늘만이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 하루를 위해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무엇을 위해서도 죽이거나 죽어서는 안 돼요... 종교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 보세요... 소유란 것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탐욕도 굶주림도 필요 없어요... 오직 인류의 형제애로서 모든 사람들이 세계를 함께 공유한다고 상상해 봐요...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되어 살 거예.” 인습적인 기독교인들은 이 노래에 대해 세속적인 가수가 부른 것이라고 폄하할지 몰라도, 오늘날 종교문맹으로 허우적거리는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의미심장한 도전이 되는 예언자의 목소리다.

 

삼층 세계관의 기독교는 생존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종교차별, 인종차별, 빈부차별 그리고 지옥천국-현세내세-몸영혼의 이분법적 차별과 함께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생명체,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경계(boundary)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계 안에서 불안과 초조와 거짓과 은폐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간다. 따라서 138억 년 역사의 광활한 우주세계를 비좁고 편협하고 부족적인 세상으로 변질시켰다. 우리는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닫힌 마음을 활짝열고 정직하게 이성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종교 때문에 또는 성인이 되어서 타율적이고 암기식으로 믿었던 교리들 때문에 아직도 영향을 받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신중하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경계 넘어 큰 그림으로 보아야 우리의 삶은 더욱 의미있고 자유하고 행복해 질 수 있다.

 

현대과학이 발견하기를, 인간이 우주의 수많은 별들 중 지구에 출현한 역사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주가 우연적이고 자연적으로 탄생한 후, 96억 년이 지나 태양계와 지구가 생겼다. 그리고 40억 년 전 지구에 첫 생명체가 출현했고, 우주진화는 계속되어 260만 년 전 최초의 인간 하빌리스가 등장했다. 이성적인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30만 년 전에 등장했고, 언어를 사용하는 현대 호모싸피엔스 인간은 4만 년 전에 등장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에는 138억 년 우주역사의 DNA가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6천 년 전 초자연적인 창조주 하느님이 완성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이런 삼층 세계관의 창조 이야기는 고대 사회에서 부족적으로 내부에서 통용되었던 신화일뿐, 온 인류에게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2천 억개의 은하계가 있으며, 각 은하계는 2천 억개의 별들이 있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빛의 속도(초속 30km)로 몇 광년(빛이 일 년동안 가는 거리)에서 수억 광년에 이른다. 우리의 별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의 크기(직경 2.6 광년)는 우리의 은하수를 돔모양의 야구장에 비하면 그 안에 떠도는 보이지 않는 먼지만큼 작다.

 

우리의 우주는 얼마나 크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이 우주의 수십 조의 별들 중에 보이지 않게 작은 별이며,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주에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대단히 한정된 협소한 부분이다. 또한 우리의 우주 이외에 또다른 우주들이 있는 것은 확실한 데 얼마나 더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들이 우리의 우주 또는 다른 우주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점차 사실화되고 있다. 우리의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의 태양계는 폭발하여 사라진다.

 

3천 년 전 고대인들이 삼층 세계관을 상상할 때 이러한 우주진화 세계관을 상상도 못했다. 땅은 평평하고, 땅 위에 하늘 밖 상층과 땅 아래 하층에는 물로 가득하다고 믿었다. 하느님은 상층에 존재하면서 중간층의 세상에 간섭하고 만사를 조정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 우주론의 시각에서 만일에 이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하느님이 광대한 우주의 보잘 것없는 작은 별 지구의 어느 특정 종교만이 진실하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고, 다른 종교들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겠는지, 또한 지구에서 살다 죽은 후 다른 세계, 우리의 우주 밖에 다른 우주 세계로 옮겨갈 것인지, 아니면 우주들 이외에 또다른 세계가 있는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설상 다른 세계가 있더라도 그곳에 가기 위해 어떤 특정 종교에 속해야 하고, 교리와 형식과 공식을 믿어야 한다는 필수조건들이 반드시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이분법적 창조론과 구원론은 그야말로 망상이다. 우리는 조그만한 별 지구에서 살더라도 이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편견과 오만과 자기만족과 자기기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성적인 인간은 좀더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의미있게 만족스럽게 행복하게 살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단체, 정치단체, 종교단체, 부족, 민족,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익숙한 전통과 제도와 교리와 형식 등에 얽메여 부자유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다시 말해, 광활한 우주 세계에 살면서도 넓고 큰 그림으로 보지 못하고, 그림의 작은 일부분만 본다. 이것은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바깥의 넓은 세상을 모른체 좁은 공간 안에서 그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잘못된 가르침과 거짓 속에서 사는 것이다. 많은 종교인들은 이 광활한 우주의 수천억 개의 별들 중에 보이지 않게 작은 지구에 살면서 그것도 자신이 처해있는 조그만한 지역이 모든 세계라는 착각 속에서 전체 그림의 한 쪽 구석에 빠져있다. 작은 그림에 메어달리는 가장 큰 원인은 죽음과 생존의 두려움에서 나온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이 두려움과 욕심이 잘 드러나는 현상들의 좋은 예로, 백인우월주의, 친나치주의, 배타주의, 인종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이원론 즉 육체와 영혼의 분리 그리고 현세와 내세의 분리, 그리고 기독교의 이분법적 구원론 등이 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우주세계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의미있고 믿을만한 이야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큰 그림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겠는가? 즉 우주적인 큰 그림이 없었다면 우리는 부족적인 작은 그림 속에서 소극적이고 편협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인류사회의 모든 전문적인 일들과 활동들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우주 이야기 즉 큰 그림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발견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큰 그림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 아울러 인간의 진화를 추진하는 힘은 더 이상 우리의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의 성스러운 우주 이야기다.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인간이 살아 숨쉬고 있는 우주 이야기는 인간의 실제적인 배경이 되는 위대한 이야기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큰 그림 즉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에 해답을 준다.

 

인류역사에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누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의 해답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을 후세대들에게 전승했다. 인간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누구인가? - 정체성에 대한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 기원에 대한 질문;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 운명에 대한 질문; 우리는 왜 여기에 있나? - 목적에 대한 질문; 궁극적으로 무엇이 중요한가? - 의미에 대한 질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 도덕과 윤리에 대한 질문.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본능적인 질문들의 해답은 자신들이 지구에 출현한 이야기와 온 세상이 시작된 창조 이야기, 즉 우주진화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항상 이야기들 속에는 또다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역사는 우리 각 사람의 이야기 안에 담겨있다. 우리의 몸 전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개체들은 수십억 년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모든 세포들과 장기들은 수십억  년의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사고방식은 수천 년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은 이야기들 중의 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그 아이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또한 그들 가족의 이야기는 더 큰 이야기들 즉 그들이 속한 종교-사회 단체들과 도시와 주()와 국가 라는 이웃들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종교적 전통과 사회적 문명과 전체 인류의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으며, 최종적으로 우리의 별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를 넘어 우주 이야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우리 각 사람은 이야기들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들 중의 한 이야기이다. 우리 각 사람은 우리가 속해있는 더 큰 이야기들과 떼어놓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존재와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움없이 의미있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의 잃었던 원초적인 우주 이야기를 되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의 역학관계는 각 개체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생명의 망과 같다. 예를 들자면, 한 기업체의 흥망성쇠는 기업체가 속한 사회의 이야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기업체의 이야기는 각 노동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자녀들의 이야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층을 이루어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한 개체의 이야기가 전체에 그리고 전체의 이야기가 한 개체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 각 부분은 전체적인 큰 그림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더 큰 그림으로 이해하면 할수록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04년 회교도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강도 9.0의 해저 지진으로 쓰나미가 일어나 150,000명이 희생되었다. 많은 종교인들은 천연재해 또는 일신상의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 이것을 하느님의 계시, 경고, 심지어는 징벌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 어떻게 천연재해를 초자연적인 하느님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는가? 물론 우리 인간은 의미를 생각하는 생물종이기 때문에 사건이 크면 클수록 의미도 더 커진다. 지진과 화산활동과 쓰나미의 원인을 밝히는 판구조론(板構造論)이 발견되기 전 비과학시대에는 천연재해를 신/하느님의 계시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지구 전체의 지각 아래에 여러 개의 거대한 열순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지각운동을 일으키고 지표면으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기후를 안정시키는 역할를 한다. 만일에 지표면 아래에서 열순환 활동이 중지되고 이산화탄소가 없어지면 지구는 얼음덩어리가 된다. 21세기 첨단과학시대에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식적이고 이성적이다. 과학적인 설명이 불경스럽고 종교를 퇴색시킨다고 두려워하는 것은 종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과학은 종교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의미를 더 넓고 깊게 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지질학을 연구하고 이 분야에서 10여년을 일했다. 천연재해와 하느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과학을 종교의 시녀로 전락시키면 종교는 그 기능과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과학의 기능은 관찰할 수 있는 삼라만상으로부터 실제적인 현상들을 증명하는 것이고, 종교의 기능은 이러한 과학적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과학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던 고대인들도 자연현상과 사건들에서 어떤 사실을 발견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했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종교체계가 생겼다. 자아의식을 지닌 이성적인 인간은 원초적으로 과학적이고 종교적인 생물종이다. 물론 종교적이란 말의 의미는 종교체계의 교리와 공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깨닫고 실천적으로 사는 것이다.

 

모든 인류사회는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생물과 자연이 오늘처럼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즉 위대한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우주적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궤도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궤도 안에서 모든 문화들은 자신들의 창조신화를 갖고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의 단군신화, 유대인들의 창세기신화, 유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바벨론의 창조신화, 등이 있다. 개체들로써의 각 문화의 창조신화들은 인류사회 전체를 구성한다. 큰 그림 즉 우주 진화 이야기를 인식하는 것은 모든 개체들이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전체를 이루어 통합적으로 살아가는 길의 대안이 된다. 큰 그림은 서로 다른 모든 종교와 문화와 인종과 사회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의 토양이 된다.

 

많은 종교인들이 믿고 있는 삼층 세계관의 우주론은 종교체계가 교리적으로 가르친 것을 아무 의심없이 타율적이고 강압적으로 암기한 상태이다. 즉 색안경을 쓰고 우주를 보면 우주의 순수한 색깔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부족적이고 교리적인 색깔없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안경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은 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에 따라서 달라진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우리의 실제적인 현실이다. 우리가 실제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현실들은 이 우주 안에 있다. 우리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직 하나의 세계뿐이다. 내세의 다른 세계는 없다. 개인적으로 다른 세계를 꿈꾸고 상상하고 바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신학과 신앙과 철학이 될 수 없다.          

 

젊은 세대들은 (물론 기성세대들도 포함) 각급 학교와 종교와 사회단체에서 생명에 대해 진화론적 사고방식을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그들에게 이론과 공식을 암기하도록 강요하기 보다는, 과학적인 진화의 역사와 의미와 진화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판단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젊은이들은 라틴어 이름들과 연대를 암기하기 보다는 우주진화로부터 삶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하는 자율성과 창조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종교적 경전들은 과학책이 아니다. 우리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을 부족적인 종교의 작은 그림 속에 가두어 놓고 그들의 눈을 가릴 수 없다. 작은 그림 속에서 지루하게 타율적으로 사는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켜 큰 그림 속에서 창조력과 잠재력과 자율성을 발휘하며 살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러면 자신들의 삶을 100% 책임지고, 부모들과 이웃들과 세상과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해 감사하며 만족스럽게 살 수 있다. 종교인들은 민족과 국가라는 부족적 경계 넘어 우주적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 우주진화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의 의미, 생명의 의미, 인간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이 정립되며, 표층적인 종교인들은 심층적인 종교인들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것이 진화의 기쁜 소식이다.     

 

[필자: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더 읽을 책>

 

*** (본 칼럼의 생각들은 이 책들에서 나왔다. 책들을 통해 세계의 과학 철학 종교 사상에 대한 미래의 물결을

       이해할 수 있다.) ***

 

토마스 베리 & 브라이언 스윙. 우주 이야기. 대화문화아카데미, 2010

토마스 베리. 위대한 과업. 대화문화아카데미, 2009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돌베개, 2005

에크하르트 톨레. Now: 행성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조화로운삶, 2008

고든 카우프만. 태초에 창조성이 있었다. 한국기독교연구소, 2013

__________. 예수와 창조성.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

돈 큐핏. 떠나 보낸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__________.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한국기독교연구소, 2006

존 도미닉 크로산. 가장 위대한 기도. 한국기독교연구소, 2011

오강남.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북성재, 2011

__________. 기도: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대한기독교서회, 2008

틱낫한. 기도: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키는 힘. 명진출판, 2006

최성철. 깨달음의 하나님. 북성재, 2012

__________.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교회의 탄생: 믿는 하느님 보다 더 소중한 깨달음의 참 인간. 퍼플, 2014

마커스 보그. 새로 만난 하느님. 한국기독교연구소, 2001

알프레드 노드 화아티헤드. 이성의 기능. 통나무, 1998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김영사, 2007

__________. 눈먼 시계공. 사이언스북스, 2014

__________.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006

데이빗 그리핀, 포스트모던 하나님 포스트모던 기독교, 한국기독교연구소, 2002

김경재, 이름 없는 하느님, 도서출판 삼인, 2003

로버트 버시그. 선과 오토바이 관리 기술 (Zen &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문학과지성사, 2010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북스, 2014

__________. 지구의 정복자. 사이언스북스, 2014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범양사, 2008

로이드 기링. 기로에 선 그리스도교 신앙. 한국기독교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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