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사상초유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일대미 외교전에서 모처럼 선방을 날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한국 숨통조이기 합동작전'에 맞서, 지금까지 보여주던 답답하고 소극적이던 자세를 일거에 내던지고 명운을 건 대반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명운을 건 대반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현재 문 정권이 겪고 있는 사상초유의 정치적 위기에 대해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 정치적 위기란 이른바 '조국사태'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조국이란 '조국찬가'할 때 그 조국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냈고 현재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사람 조국 씨를 말한다.
조직적인 내부정보유출로부터 시작한 것으로도 의심되는 이른바 '조국사태'는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이 나라 진보진영 전체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심각한 사건이다. 그 내부정보유출을 기획하고 주도한 집단이 어느 정파 소속인지는 아직 드러난 바 없다.
일개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개인과 가족 과거사에서 비롯된 문제들이 조성해 놓은 불리한 정세가 진보진영 전체의 종말적 위기처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는 일부 섹트가 방어가 지극히 어려워진 전선에서 고군분투를 방불케 하는 '버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의뢰인 또는 의뢰인 집단은 고도로 훈련된 사냥 전문가들을 고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냥 전문가들로부터 기본자료들을 넘겨받은 의뢰인들은 그 자료들을 국회 인사청문회가 요구되는 조국 씨 정치장정의 길목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살포했다.
(보수 기레기들만의 힘으로 밑도끝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취재해서 건져 올릴 수 있는 자료들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래 지금까지 비명횡사한 내부인자들이 주로 NL 출신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희생자가 비NL계열 출신 조국이라는 점이 조금 특이하기는 하다.
민병두 역시 비NL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는 이 공격으로부터 심각한 내상을 입은 건 아니므로 예외로 한다.
한국인 보편적 정서의 특성상 그들의 심기를 가장 자극한 사건은 아마도 딸의 고려대 및 부산대 의료전문대학원 입학 및 수학과정과 관련한 부정개입 의혹인 것처럼 보인다.
날고기는 사냥 전문가들도 이 의혹에 학맥카르텔이 작동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 증거란 조국과 담당교수들간에 실체적으로 주고 받은 문자 및 통신자료를 말한다.
대부분의 피플이 '딸과 관련된 문제'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사냥 전문가들이 실체적 증거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광분하고 있는 분야는 따로 있다.
조국 씨 선친과 동생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편법적 부채회피와 재산안전도피를 목적으로 벌인 위장소송 의혹에 조국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뿐 아니라 진보진영 천체를 당혹스럽게 만든 사실상의 진짜 위기국면은 지난 23 일 금요일 시작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엉뚱한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이 날 조국 씨는 딸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웅동학원과 사모펀드 부분에 대해서만 헌납 운운했는데 그 내용이 답답할만큼 요령부득이었다.
마치 자신이 웅동학원의 초월적 인사권자라도 되는 것 처럼 이사장이 사퇴할 것이라느니, 웅동학원이 항일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하고 인재양성에만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하겠다느니 하는 뚱딴지같은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자신에게 처분 권한이 없는 부인과 성년자녀들 명의의 사모펀드 투자금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등,
전혀 설득력도 없고 비법적인데다가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이기까지한 의식의 잔재가 저변에 깔려있는 말들을 늘어놓음으로서, 그동안 그의 보이스카웃 같이 '단정한' 언행을 지켜보아 온 사람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이율배반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동생의 이혼한 전처가 압도적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웅동학원을 그 법인의 아무 직책도 가지지 않은 조국 씨가 무슨 법적 근거로 공익재단에 기부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었다.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되는대로 써서 갈긴 글이 아니라면 이런 엉뚱한 입장문은 나올 수 없다.
가족이 관련된 사건이라도 자기가 관련이 없으면 이런 소리는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사태의 본질은 진영 또는 특정조직이나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진보 보수를 망라해서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고의 정체와 문화적 후진성'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부조리 의혹이 외력에 의해 폭로된 것이라고 보면 무방할 것 같다.
인맥 카르텔 안의 견고한 패거리 정서가 이성과 법치를 압도하고, 보스의 한마디가 매뉴얼보다 우선시 되며, 유교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계급서열과 차별의식이 온 나라 구석구석에 만연된 '동아시아적 후진성'의 전형적 특성은 진보진영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발각된 사건일 뿐이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후진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문화권마다 각각 특화되어 뛰어나게 발달한 후진성이 다 따로 있다는 이야기니 오해는 하지말기 바란다)
따라서 내 눈에는 이런 사건이 진보진영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한국은 1987 년 정치제도가 어느정도 민주화 되었고 1998 년 이후 시스템이 어느 정도 투명해 지기는 했지만,
의식수준과 조직문화는 일부 글로벌 섹터를 제외하면 여전히 후진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 이라는 것은 쉬쉬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런 후진성이 사고의 정체와 연루되어, 보수는 부패와 권위주의로 그 모습이 항상 드러나왔던데 비해, 진보는 위선적 행태가 가끔씩만 발각되곤 했다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국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것 같지만,
조국에 의해 대법관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어느 변호사가 조국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권유하며 이런 말을 남긴 것이 기억난다.
한국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면 잘 보이지 않지만, 기득권과 비기득권으로 나누면 희한하게 잘 보인다는 말이 그것이다.
난무하는 개소리 아우성 잔치 와중에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가장 잘 정리해서 지적한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만 싸르니아는 저 변호사와는 달리 조국씨가 자진사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국 씨가 명백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연루의혹사건들' 과 그의 법무부 장관 임명은 별개의 문제라고 간주하는 것이 맞다.
(한국에는 '국민의 눈높이'니 '국민의 정서'니 하는 뜬구름잡는 소리들이 마치 선악을 판단해 주는 전가의 보도처럼 돌아다니고 있는데, 국민의 눈높이나 국민의 정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개인의 눈높이와 개인의 정서가 존재할 뿐이다. 어떤 사건을 조명하는 그 개인의 눈높이나 개인의 정서조차, 실체적 증거가 드러나지 않는 이상 그저 개인의 감정상태에 머물뿐, 상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재단하는 실효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어쨌든
이런 국내의 혼란스런 정치적 대위기국면 안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당황하지 않고 반드시 해야 할 일 두 가지를 슬기롭게 잘 수행해냈다.
(사실 오늘은 문재인 정부의 이 두 가지 훌륭한 일처리에 대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첫째, 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종료 선언을 함으로써 미국에게 (일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처음으로 정면도전하는 파격적 메시지를 날렸다.
일부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부가 조국사태를 덮기 위해 GSOMIA 종료선언을 했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데, 협약 종료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미국에서조차 그런 식의 분석은 한마디도 나온 적이 없다. 판단력을 상실한듯한 멍충이같은 소리는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터져 나오는 한국 보수세력의 전매특허처럼 보인다.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NSC 확대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이해가 있었다'고 한 말에 대해 '한국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길길이 뛴 적은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한국 대통령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조롱을 되갚아 준 것이라고 해석하면 가장 정확하다.
둘째, 동해영토수호훈련을 감행함으로써 일본 우파정치세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 훈련에는 이지스함과 해상초계기는 물론 공격용 헬기와 F-15K가 동원됐다. 특전사 병력도 독도해상에 전개되었다.
한국군 병력이 독도해상에 전개된 것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65 년 한일기본조약의 부속밀약으로, 일본정부의 밀사로 서울에 파견된 우노 소스께 당시 자민당 의원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밀사로 우노를 상대한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 사이에 맺어진 이른바 독도밀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일본을 물론 독도 문제에 있어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는 미국의 스탠스까지 일거에 무너뜨리는 쾌거이기 때문에 그렇다.
박정희가 일본에 팔아먹은 독도밀약의 핵심내용은 '독도수역을 울릉도를 기준으로 한 EEZ (배타적 경제수역) 이 아닌 한일공동관리수역으로 설정하되 한국정부가 임시로 관리하도록 일본이 양해하는 것과, 독도의 관리를 영토수호 개념인 군대가 아닌 해양경찰이 담당한다는 게 핵심골자다.
주말부터 진행되고 있는 동해영토수호훈련은,
미국과 일본의 밀약에 의해 영유권 미정지로 취급받고 있는 애매한 상황을 뒤집어 엎고,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등기 전매' 형식으로 일본에 몰래 팔아먹은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재확정하고 이를 선포하기 위한 과감한 군사조치라고 보면 된다.
2019. 8.25 1600 (sarnia-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