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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이는 살아낼 수 없다.
작성자 ezrason     게시물번호 12500 작성일 2019-11-16 14:23 조회수 2995

믿음이 없이는 살아낼 수 없다.

혹시 부족한 저의 글을 통해 마음이 시원해지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봅니다.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다.

2. 예수님은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3.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1.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다.

디모데후서 3:16~17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 4:11~12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디모데후서 3장에서 성경을 주신 목적과 에베소서 4장에서 직분 자를 삼으신 목적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선한일(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에베소서에 언급된 직분들 가운데 목사와 교사는 목사들 즉 교사들”(τος ποιμνες καδιδσκαλοι)이라는 뜻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1500년에 걸쳐서 40여명의 저자가 기록했지만 원저자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동일한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창조, 타락, 구원, 종말이라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만약 인간은 죽어서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존재라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기적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성경을 부인하고 싶으면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의미의 목사 타이틀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목사도 성경에 기록된 직분이니....

 

2. 예수님은 당신을 믿으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20장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도마에게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다.

 

요한복음 20:27~31

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4:1~3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 자신을 믿으라는 말씀은 이 외에도 많지만 너무 많아 모두 인용할 수 없다. 예수님이 자신을 믿으라고 하신 적이 없다고 주장하려면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인용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성경 이상의 권위 있는 글에서....

 

3.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죄와 저주, 사탄의 종노릇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얻기 원하신다.

 

요한복음3:16~21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믿어야 알 수 있고, 믿어야 살 수 있고, 믿어야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교회를 세웠다. 아니 예수님께서 교회를 유산으로 남기신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다(골로새서1:18). 제자들은 순교했다. 그들이 믿는 주님을 전하다가.... 그 후에 수많은 성도들도 그 길을 따랐다. 믿으니 그렇게 살아간 것이다. 결코 세상의 성공신화와 같은 가치 때문이 아니다. 오직 우리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들도 교회로 모이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전하고 가르침을 따라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비틀 거리고, 넘어지고, 주저앉을지라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듯 많이 부족한 주님의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신다

어쩌면 행위보다 존재가 더 우선하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자녀들의 잘나고 못남, 어떻게 살아가는 지보다 우선하는 것은 나의 자녀라는 존재가 더 귀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리라....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을 섬기지 않았었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편협하게 자기 틀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을 사랑하고 섬겼다.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신 것처럼 세상의 주인이시니....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마나 사랑하시는지 전하고 싶은 마음에 몇 글자 적었습니다.

 

손승희목사(ezrason12@gmail.com)

캘거리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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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sperity  |  2019-11-1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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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목사님:

마태복은 10장 23절에 "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 그 후 2,000 여년이 지나도 예수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를 더 기달려야 이 세상에 다시 올까요? 200만년을 더 기다려야 됩니까, 20억년을 더 기다려야 됩니까?

혹시 저자가가 잘못 기록한것은 아닌지요?

clipboard  |  2019-11-1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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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님께서 마태오복음 말씀을 하셨는데, 저자가 잘못 기록했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지만 고대문화/언어와 후대의 해석간에 소통의 단절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는 ezrason 님의 본문글로 미루어볼 때 그 분께서 번영님의 질문에 만족할만한 답변을 주실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15 년 전 쯤부터 5 년 전 사이에 기독교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었는데, 그 중 성탄절도 가까워오고 있으니 말씀하신 마태오의 기록과 관련해서, 고대문서를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제 의견을 적은 글 하나만 복사해서 올리겠습니다.

=====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성탄절은 예수선생께서 탄생하신 날이라고 합니다.

근데,,,,,, 조금 이상한 게 있습니다.

예수선생의 image를 재창조해 기독교를 글로벌 상품으로 제작했던 바울은 이상하게도 그의 탄생 이야기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행적에 대해 거의 관심을 표명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선생의 고향이라든가, 그가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골고다언덕 같은 곳에 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예수선생의 무덤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선생이 언제 어떻게 탄생했느냐 하는 문제가 바울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바울은 왜 예수선생의 탄생 이야기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재창조한 예수선생을 역사적 인물로서 전파할 의도가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예수선생의 아이디(출생증명서와 생활기록부) 부터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을텐데 전혀 그런 노력을 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쓴 편지인 갈라디아서에서‘기독교를 받아들인 후에도 3 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을 쓴 후대의 기록자는 갈라디아서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을 만났다고 거짓말 기록을 한 셈입니다.

이제는 신학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동의하는 것이지만,,,,,,

바울시대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 신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그런 건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부활 이야기 역시 예수-바울 시대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데, 후대에 마치 부활 이야기가 원래 있었던 거처럼 이야기를 꾸며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 부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예수선생 생신으로 그 주제를 제한하고 부활 이야기는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생일잔치에 와서 초상난 이야기하는 건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가 작년 성탄절 무렵에 ‘성서’를 열심히 읽으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기독교경전 (일부 오만한 기독교인들이 신약이라고 부르는) 본문 중에 가끔 등장하는 “그 경위는 이러하니라~” 라는 문장을 조심해야겠구나,,, 하는 것 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스토리 두 개를 앞뒤가 맞도록 연결시키려 할 때 기독교경전에서는 항상 “그 경위는 이러하니라~” 라고 하는 접속문장이 삽입됩니다.

크리스마스니까 마태오복음을 예로들자면, 그 문서의 1 장 17 절과 18 절 사이에도 "그 경위는 이러하니라~" 라고 하는 수상쩍은 접속문장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마태오복음 1 장 1 절부터 17 절에서는 예수의 족보를 나열했습니다.누구는 누구를 낳고 누구는 누구를 낳고 계속 이어지다가 그 장 맨 마지막에 느닷없이 요셉의 아버지가 요셉을 낳은 게 아니라,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고 써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 ‘며느리의 남편을 낳았다’니 이게 무슨 희안한 어법인가 !! 하고 순간적으로, 그리고 새삼스럽게 놀랐었습니다. 여기에는 틀림없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 이 절을 읽으면서 싸르니아는 마태오복음 1 장부터 17 장을 쓴 사람이 예수선생께서 혼외 임신을 통해 탄생했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일 거라고 추정했습니다.

혼외 임신은 고대유대율법이 지배했던 지역에서 당연히 비합법 임신인데, 비합법 임신이 동정녀 임신으로 둔갑하게 된 계기가 단순히 히브리어 ‘젊은 여자 (almah)’를 ‘그리스어 처녀(parthenos)’로 잘못 번역한 데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잘못 번역했다면 우연한 오역이 아니라 의도적인 오역이었을 것 입니다.

예수선생의 족보에 처지가 비슷비슷한 여인 세 사람이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느닷없이 마리아라는 여자 이름만 족보 맨 마지막에 혼자 등장하면 어색하고 이상하니까 앞에다가 다말, 라합, 밧세바 등 세 여자를 일부러 끼워넣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번개처럼 함께 떠 올랐습니다.


공교롭게도 세 여자 모두 ‘비정상적 여인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섹스해서 임신하는 바람에 예수선생의 조상이 됐습니다. 라합은 거리의 여자 출신입니다. 밧세바는 남편이 소속된 군대의 통수권자인 킹 데이빗과 적절치 않은 로멘스를 벌였습니다. 로멘스로 끝난 게 아니라, 밧세바의 남편이 죽임을 당하는 치정살인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제 추측이 맞을 겁니다. 마태오복음의 필자는 '비합법적 임산부' 마리아에게 집중되는 독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세 여자를 족보에 함께 등장시켰을 것 입니다. (물론 제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는 ‘불행한 처지’ 였던 세 여인을 등장시키는 것을 통해 낮은 처지로 강람하신 예수선생의 슬픈 image 를 감동적인 방향으로 극대화 시키는데 까지 성공했습니다. 불행함과 불쌍함을 위대함으로 멋지게 승화시킨 것 입니다. 마태오복음의 필자가 놀라운 예지력과 문학감각을 갖춘 타고난 대문호가 아니라면 이런 성공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18 절부터25 절까지는 앞의 1 장부터 17 절까지의 그 이상한 족보 이야기를 토대로 너무도 유명한 동정녀 탄생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전혀 주제가 각각 다른 두 이야기, 즉 1 절부터 17 절까지의 족보 이야기와18 절부터 이어지는 동정녀탄생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해 18 절 부터의 이야기를 쓴 필자는 예의 다음과 같은 접속문장을 17절과 18 절 사이에 끼워 넣은 것 같습니다.

“그 경위는 이러하니라……”

이 접속문장 덕분에 오늘도 사람들은 예수선생의 조상 이야기와 탄생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기독교를 각본-연출한 바울감독은 예수선생의 탄생스토리를 전혀 몰랐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울감독이 예수선생의 탄생스토리를 몰랐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건, 어쨌건,,

싸르니아는 여전히 예수선생의 생신을 즐겁게 축하합니다.
중요한 것은,

Do not stay so blind.

그래야 여전히 성탄절을 즐겁게 측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하누카

2014 년 12 월 sarnia (clipboard)

clipboard  |  2019-11-1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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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는 ezrason님의 글에 반대클릭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의 글에 반대클릭은 하지 않습니다.
할 말 있으면 그냥 말로 합니다.

prosperity  |  2019-11-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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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pboard님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성경 내용을 통달 하셔야 쓸수 있는 내용입니다. 저는 성경을 두차례 정독한 경험이 있습니다.

clipboard  |  2019-11-1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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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제가 지금 성경을 찾고 있는 중 입니다.
공동번역하고 영문성경 두 개가 있었는데 둘 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군요.

prosperity  |  2019-11-1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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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pboard 님, 예수에 관한 소설 한권 쓰시면 오교수님 소설보다 더 재미 나는 Best Seller 소설을 한권 쓸것 같습니다.

clipboard  |  2019-11-1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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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소설을 쓴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역사적 예수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말이 되는 더큐멘터리나 바이오그래피를 소설형식을 빌어서라도 써 보셨으면 합니다.

그건 그렇고,

한국의 김용옥 교수라는 분이 2 년 전 쯤 밴쿠버에 온 적이 있다는데, 이 분이 캐나다에 처음 왔는지 캐나다의 다문화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입니다. 감명의 종점은 밴쿠버 차이나타운에 있는 광동식 죽집이더군요. 오늘 캐나다 10 일간의 여행에 대해 소감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짧은 이야기였는데 핵심은 잘 짚은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Z01o5cmdCQ

근데 유툽이 처음부터 안 나오고 차이나타운 죽집 이야기부터 나오네요.

ezrason  |  2019-11-1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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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pboard 님의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댓글은 구약과 신약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함에서 비롯된 글인 것같습니다. 족보와 연결된 구약의 내용을 잘 읽어보시고요. 그 사건사건들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는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고요. 자격없는 것 같은 자를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오늘 죄가 많은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은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clipboard  |  2019-11-1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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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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