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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을 교회로부터 해방시켜라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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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284 |
작성일 2009-04-03 16:16 |
조회수 1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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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글 길게 쓰면 실업자’라는 새 표어를 창조했다. 그 분이 또 ‘글 길게 쓰면 빨갱이’ 라는 댓글을 달기 전에 미리미리 짧게 쓰자.
본론이다.
목사에게 설교권이 있다면 평신도에게는 반론권이 있다. 종교문화적인 풍토 상 교회 예배시간에 반론하기가 적절치 않다면 다른 방법으로 해도 된다. 온라인에서 발언하든 신문에 기고를 하든.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회는 교역자 설교에 대한 평신도들의 반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민교회도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이민교회는 한국에 있는 보수교회들보다 더 보수적이다. 성당 미사에 참석해 본 적이 없으니 성당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교회는 공공장소다. 공공장소 중에서도 다중의 사상이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이 가장 많이 나오는 편에 속하는 공공장소다. 그렇다면 교회 신도뿐 아니라 그 교회가 소속해 있는 사회집단 구성원 누구나가 그 발언을 모니터링을 할 수 있고 문제가 있다면 반론도 할 수 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쉽게 풀어 말해보자. 교회는 18 세 이상의 회원권 소지자들만 드나드는 private club이 아니다. 회원권 없이도 아무나 드나들 수 있다. 무엇보다 미성년자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는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 신자들의 공동체이긴 하지만 그 단체가 갖는 일정한 공공성 때문에 그 교회가 소속된 사회의 감시와 비판에 항상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그리고 사회는 당연히 교회를 감시해야 한다.
어떤 설교자가 설교시간에 ‘동성결혼을 죄악시’ 하는 발언을 했다거나 다른 종교를 정도 이상으로 비난했다거나,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이명박 정권’을 축복하는 기도를 했다고 치자. 그것이 비록 자신의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를 바탕으로 한 발언이라 하더라도 ‘공인’이 ‘공공장소’에서 한 발언이므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공개비판을 할 권리가 있다. 이런 공개비판을 통한 견제와 압력은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다.
공개비판 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각각의 발언에 대한 반론적 견해도 소개할 수 있다.
‘동성결혼을 죄악시’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예수 역시 미소년 제자 요한과 사랑에 빠진 동성애자였다고 주장한 Cambridge St. Mary’s Church 교구장 H.W. Montefiore같은 사람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부당성을 지적할 수 있다.
‘다른 종교들은 미신에 불과하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기원전 6 세기 경까지 심술궂은 골목대장처럼 유대인 부족신으로 변방에서 빌빌거리며 다른 부족들에게 걸핏하면 폭력이나 휘두르던 유대교의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만난 이방종교 조로아스터교의 좀 더 ‘국제감각’을 갖춘 신에게 한 수 배워 한 층 세련된 하나님으로 거듭난 적이 있음을 살짝 언급해도 좋을 것이다.
다른 이야기다.
설교자가 ‘죄인’ ‘지옥’ ‘영원히 유황불에 타는 고통’ ‘사탄의 영을 받은 자’ ‘영원히 무저갱에 묻히고야 말 것’ 등과 같은 용어를 자주 사용하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강조한다고 하자. 보통 성인들은 그냥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극우 기독교’의 문화현상을 몸소 체험하고 현장 학습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 설교자 말이 진짜인 줄 아는 ‘순진한 교인들’이나 ‘어린이들’은 실제로 공포심과 압박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이런 공포심과 압박감이 잠재의식 안에 침전되어 지각공간의 폭을 좁게 할 뿐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과 합리적 사고능력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결론이다.
우리는 교회에 가면 이런 광경을 쉽사리 접할 수 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교회의 문을 들어서는 천진난만한 어린이. 그 어린이를 두 팔을 벌려 “welcome” 하며 포옹해 주는 목사님의 만면에 가득한 자애로운 미소.
참, 아름답고 은혜로운 장면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광경을 떠 올릴 때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는 Hitchcock의 경험담이 같이 떠오른다.
Hitchcock이 누구냐고? 왜 그 있잖아. ‘Psycho’ 하고 ‘the Birds’ 만든 영화감독.
Hitchcock이 어느 날 스코틀랜드 지방을 여행하다가 어느 교회 앞에 서 있는 ‘한 성직자와 한 소년’을 목격했다. 검은 사제복을 입은 그 성직자는 소년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다정하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공포영화의 대가는 창 밖의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단다.
“지금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섬찟한 광경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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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종교적 편견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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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 2009-04-03 23:4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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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molloy가 쓴 experiencing the world\'s religion이라는 책이 있는데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책입니다. 내용이 참 좋은 책인데 특히 기독교만 종교이고 다른건 다 우상이나 사탄이라고 우기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여기서 태어났거나 한국에서 학교 다니다 온 우리의 자녀들은 여기 학교에서 이런 과목을 배울테니 학교에서 농땡이 치지 않고 착실히 수업 들었으면 부모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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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아이(모태신앙)가 나보고(음식먹을때 기도 안하는 걸 보고) 교회 안 다니면 지옥간다고 했을때, 후덜덜.......(이건 뭐... 김일성 주체사상이 먹혀 들어가는 원리랑 같다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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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 2009-04-12 22:48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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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입니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라고 아마 이기적 유전자를 쓰신 과학자로 기억하는데, 이분이 쓴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을 읽어보길 권합니다.
이젠 종교로부터 인간이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모든 대량살상과 죄악은 종교적 선입관에서 발생된 그 하나님을 다르게 이해한데서 비롯된것 아닙니까? 현세의 세기적 갈등 역시 (기독교, 이슬람) 독선적인 종교의 전도로 말미암아 발생하고, 악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휴머니즘과 건강한 자연과학, 기술이 인류를 이끌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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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9-04-12 23:3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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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린지 오래된 글인데 답글을 달아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히치코크 예화는 바로 space 님이 소개하신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히치코크의 성직자와 소년이야기는 \'성폭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는데 저는 이야기를 좀 다른 식으로 써 먹었지요^^.
부활절인군요. 저는 터키를 안좋아 하므로 대신 치킨먹었습니다. 크란베리 잼발라봐야 밍밍한 건 마찬가지고. 교회가는 대신 평소에 하던대로 Tim Horton에 가서 커피마시며 iPod로 한 시간 가량 음악감상했구요.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했든 안했든 그런건 관심도 없고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냥 부활절이라니까 기독교인으로서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에 행했던 일들을 상고하며 다소 차분한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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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oso
| 2009-05-18 00:5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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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일부 종파 또는 단편적인 면에 너무 치우치신 글로 보여지네요.
거창한 제목에 비해 글 내용의 설득력이 조금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종교는 종교라는 특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 집니다.
저도 님의 글에 공감하는 부분이 상당이 있으나,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은 좋으나 그러면 대안이 무엇인지도 함께 제시 되었으면 정말 좋은 글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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