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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온 지 30 년 되는 날에 발견한 '여기 사는 이유'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13324 작성일 2020-05-16 08:32 조회수 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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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년 5 월 16 일은 특별한 날이다. 

한국을 떠난지 30 주년이 되는 날이다. 


1990 년 5 월 16 일 수요일 저녁, 

친구들, 그리고 단체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선후배들의 전송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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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31 년 전에 발급받은 첫 대한민국 여권이고, 

오른쪽은 두 번 째이자 마지막 대한민국 여권이다.  


두 개 다 5 년짜리 거주여권이다.  

당시 여권을 받으려면 종로 5 가 어딘가에 가서 소양교육을 받아야 했다. 


비록 영주권을 받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때 캐나다에 살러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출발 몇 주 전 까지 비행기표도 사지 않았었다. 


누나 초청으로 등떠밀리다시피 이민수속을 시작했다. 

1989 년 연말 쯤, 영주권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몇 달 후, 대사관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5 월 말까지 캐나다에 입국하지 않으면 영주권을 취소하겠다는 통보였다. 


그래? 

캐나다가 대사관을 통해 협박까지 하며 꼭 와 주십사 통사정을 하니 거절할 수도 없고,,  

여행이나 다녀오겠다는 생각으로 비행기표를 샀다.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서울(김포)발 토론토행 대한항공 KE072 편이었다.  

이 비행기가 당시에는 밴쿠버를 경유해서 토론토까지 운항했다. 

외항사는 국내선 여객을 태울 수 없으므로 밴쿠버-토론토 구간은 절반 정도의 승객만 채운 채 운항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캐나다로 여행 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한국인 대부분은 이민 또는 유학을 떠나는 사람 아니면, 한국에 다녀가는 캐나다 교포들이었다.  

탑승객 태반은 일본인들이었다. 

일본인 여행자들은 비싼 자기네 직항 비행기 대신 서울로 돌아서가는 저렴한 대한항공을 많이 이용했다.


지금은 캐나다노선 대한항공 승객 태반이 동남아계 캐내디언이라는 것을 아실 것이다. 

모르셨다고? 


500 명 가까운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보잉 747-200 점보기가 이륙했다. 

한 두 달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떠난 것이므로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서울의 불빛들이 아래로 멀어져갔다.   


비행기 뒷자리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행기 이륙하는데 누가 재수없게 울고 있나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 또래 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멀어져가는 서울시내 야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보나마나 이민을 떠나는 여인일 것이다. 


그 아가씨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혀를 끌끌찼다. 

'웬만하면 태어난 나라에 그냥 살지, 왜 굳이 떠나면서 질질짜고 있나?'


이민가는 아가씨를 보며 속으로 혀를 끌끌찼던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눌러 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도 확실히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 두 달 여행이나 하고 오겠다는 생각으로 떠났는데, 

어쩌다가 30 년이 흘러갔다. 


막상 와보니 경치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기왕에 온 길, 다시 돌아가는 것도 귀찮아 그냥 눌러 앉은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제 어르신이 되고보니 어렴풋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냥 눌러앉은 이유는,,, 아마도 자유로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이미 30 년 전에 그 자유로움을 처음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느낀 순간이 있었다. 


차를 몰고 록키를 향해 1 번 하이웨이를 달려가던 중, Scott Hill 을 넘어서자마자 눈 앞이 확 트이면서 펼쳐지는 광활한 foothill. 

그 장쾌한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뇌리를 스쳤던 단어는 아름다움이나 광활함, 이런 게 아니었다. 

'자-유' 바로 이 두 음절의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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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내가 한국을 떠난 그 해 1 월에는 3 당합당 사건이 있었다. 

3 당합당 사건이란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 갑자기 한 자리에 모여 만세를 부른 사건을 말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1 월 22 일 이었을 것이다. 


만세사건이 발생하기 9 개월 전인 1989 년 4 월, 

나는 전국단위로 재결집한 재야 기관지에 차별적 보수대연합을 처음 예견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차별적 보수대연합이란 군사독재정권이 양김(兩金) 중 하나와 연대하여 다른 하나를 고사시키는 정계개편공작을 말한다. 

양김이란 말을 모르는 분들도 많을터인데, 양김(兩金)이란 김대중-김영삼을 말한다.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쇠락하거나 맛이 가지는 않았던 조선일보에서 내가 쓴 칼럼을 '재야의 시각'이라며 인용보도했다. 

인터뷰 요청이 왔지만 거절했다. 


결코 좋은 성격은 아니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남들 앞에 나서서 무엇을 자랑하거나 잘난 척하는 걸 병적일 정도로 싫어한다. 


.. 는 말은 농담이고, 

말이 인터뷰지 자기들도 감을 잡고 있었을 차별적 여야합당 움직임의 단초를 파악할 수 있는 또다른 정보라인을 캐내보기 위한 수작이 뻔했다. 


예견 중 빗나간 대목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노태우 정권의 합당공작대상을 평화민주당(김대중)으로 판단했었는데, 결국 통일민주당(김영삼)이 최종 합당대상으로 결정된 것이다. 

영호남보수연합을 비밀리에 추진하던 박철언 라인이 반DJ 군부강경파와 서동권 안기부라인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결과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전해 들었다.  


강현준은 내 본명이 아니다. 

내멋대로 지은 가명이었다. 

사진에서 잘린 옆 기사 문목사 방북문답기사를 쓴 정시진도 본명이 아니다. 

내 본명은 아무도 모를테고, 

정시진 씨 본명은 그와는 상관없는 이 글에서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당시 노동계와 호남지역에서 이 시론을 두고 본부측에 강력한 항의를 해왔다.

왜 노동자 농민 이야기가 아닌 정치적인 칼럼을 저 중요한 시론에 실었느냐는 것이 노동계의 항의였고,

근거없이 DJ 행보를 비판한 글을 왜 실었느냐는 것이 호남지역 일부 시민단체들의 항의였다.  

"그것도 어른이 아닌 20 대 아이가 제멋대로 쓴 글"을.. 

두 달 후 같은 자리에 내가 천안문사태를 맹공한 칼럼을 다시 싣자 아예 나를 본부 편집위원 자리에서 자르라고 압력을 가해왔다.   


어쨌든 


1980 년대 후반,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한국에서의 열정적인 마지막 나날들을 보냈던, 

그래서 한 면에서는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는 그 나라가, 30 년이 지난 오늘 저렇게 '큰 나라'로 성장해 우뚝 서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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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주년인데 갈데는 없고, 

짜장면 하나 먹자고 마스크 쓴 채 이렇게 줄이나 서고, 

그저 할아버지처럼 옛날 이야기나 .....     



Flatten the Curve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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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pboard  |  2020-05-1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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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년 5 월 16 일 저녁 KE 072 편이 이륙할 때 오른쪽 창가좌석(좌석번호 기억안남)에서 우시던 아가씨(지금은 50 대 후반 쯤?), 혹시 이 글 보시면 쪽지 주세요..

Vendre10  |  2020-05-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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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쓰느라 시간 아까워 교정 안보고 올렸었는데 궁시렁 그만하고 자진삭제로 사이트 데이터용량 절약 차원에서 자딘 삭제 합니다.

westforest  |  2020-05-1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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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이민 오신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아마도 날씨가 좋아지는 때를 택해서 그런건가요? 우리는 이민 오던 해 5월이 추워서 많이 당혹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5월인데 나뭇잎도 안나오고 밤엔 디지게 춥고..

편도 비행기 표를 끊어서 오는데 저는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마침 내리는 비에 택시타고 가는데 인천공항 가는 길이 참 멀구나.. 그리고 공항에서 제 큰 딸 친구들이 평일 학교 수업을 다 빼먹고 공항에 대거 몰려와서는 하하호호 재잘거리다가 출국장으로 들어가는데 애들이 서로 울고 불고해서 주변 사람들 다 울린거 ㅎㅎ

정확히 일주일후면 제가 이민온지 17년째됩니다. 사르니아님에 비하면 여전히 애송이 이민자이지만
캐나다인으로 살아가는데 나름 자부심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고국이 저렇게 큰 나라로 우뚝서 있음에 가슴 뿌듯한 마음 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캐나다와 한국이 좀더 가까워지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교역량도 늘리고 상호 교류도 확대하고 국제사회에서 함께 발맞추어 세계를 이끌어가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너무 큰 바램인가요? ㅎㅎ

이민 30주년 축하드립니다. 한국의 인재가 빠져 나와 한국사회엔 그만큼 손해가 되었지만 결국 세상은 하나로 네트워킹되어있으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겠죠. 계속 건강하세요.

clipboard  |  2020-05-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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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마지막 나날을 진보진영 총본산에 있으면서 일부 노동운동단체 활동가들의 교조주의와 권위주의, 그 적나라한 ‘비민주적’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엄청난 실망을 한 적이 있어요. 저 사람들이 지금의 민노총 지도부를 이루고 상당수는 정계로 진출했는데(나이로 보아 은퇴했을지도),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조금 궁금하군요.

이런 ‘후진적 사고’의 문제는 한국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 개선되어야 할 점 입니다. 막무가내식의 지역피해망상증후군도 마찬가지 입니다. DJ 행보를 비판하면 왜 안 된다는 것인지, 그런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 무슨 운동을 한다는 건지 나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가요.

캐나다에 와서 첫 인상이 좋았던 이유는 여기서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 겁니다. 좋은 출발은 나중에 사소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해석과 치유가 비교적 수월합니다. 한국에서는 그게 힘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이 코비드-19 대응을 잘 한 것은 의료진이 우수하고 방역과 관련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가장 우선적인 기본팩트라고 생각해요. 이 우선적 기본팩트는 우연적 요소가 유리하게 집합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가장 머리좋은 아이들이 의대로 몰린 역사가 길었다는 게 첫째고, 마스크를 항시 착용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적 요소가 둘째입니다.

대통령이 훌륭해서라거나, 한국사람들의 시민의식이 특별히 높아서,, 이런말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격려를 하는 건 좋지만 본질을 착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알버타 주도 한국 이상으로 잘 대응했어요. 치명율은 한국보다 낮고 회복속도와 완치율도 뛰어납니다. 이걸 두고 제이슨 케니(주수상)나 집권당이 잘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소리를 하면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다른 정책과는 달리 방역은 초고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기 때문에 정치집단의 역할이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어요. 그 모든 공은 frontline health care workers 에게 돌리고 있고, 그들을 영웅대접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거죠. 다만 임시현상이긴 하지만 권력이 선출직이 아닌 의료 분야 스태프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은 경계하고 감시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 권력은 항상 문민통제를 받아야 정상이고, 민주국가에서는 대부분 그게 실현되는데, 이번 팬데믹 사태에서는 그게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듯 합니다.

Utata  |  2020-05-1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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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래서 클립보드님글을 좋아합니다.

정치색이 없으셔서...

clipboard  |  2020-05-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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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색은 있습니다 ^^
정치색이 없을 수는 없지요.
다만 글에서 불필요한 당파성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편 입니다.
다른 사람을 일부러 화내게 할 목적으로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당파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다 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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