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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anpro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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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13445 |
작성일 2020-06-12 10:53 |
조회수 2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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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자진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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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신 분이라(늘봄)
연세가 있으시고,,곧 주님을 뵈올 듯 싶습니다.
본인이 적어 놓은 글과 말.
심판대 앞에서 부끄러워서 입을 다물을 것입니다.
빨리 회개하시고 주변의 교회가 가셔서 도움을 요청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영혼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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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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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쉴 때만 대뇌 피질의 활동으로 영혼이 존재하고 죽는 순간 영혼은 없어 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체는 "혼"을 갖이고 있지만 인간에게만 "영"과 "혼"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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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사실이라면 죽어서 어디 가나 걱정할 게 아니라 숨이 붙어 있는 동안 소중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판단을 잘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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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30년 전에 캐나다에서 지질학 박사과정 중에 신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삼층 세계관에 기초한 내세주의적 황그만능주의적 성서문자주적 믿음이 천만다행히도 우주진화세계관의 현세적 우주적 통합적 이성적 신앙으로 전환될 수 있었습니다. 초자연적이고 유신론적이고 이분법적이고 부족족인 나의 옹졸한 하느님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성서는 은유적으로 읽도록 기록된 책이며, 절대적인 권위가 아니라 단지 많은 권위들 중에 하나일뿐이라고 배웠습니다. 처음에 교수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때 나의 성서근본주의 믿음은 크게 경악했습니다. 첫 학기 동안 나의 양심과 이성은 갈등과 고민으로 이루말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나의 눈과 귀가 열리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저만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느끼고 고민하는 새로운 삶의 여정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과거에 나의 하느님과 교회와 성서에 대한 "믿음"은 보상심리의 거래관계였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어떤 댓가를 바라는 사심이 가득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아 알았습니다. 원초적으로 믿음이란 말의 어원은 사심없는 사랑이라는 뜻인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과 성서는 보상을 바라는 믿음의 객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하느님과 성서는 오히려 물질만능주의 개인주의 차별주의 등의 추악하고 잔인한 인간들을 양산했습니다.
보수적인 신자들은 믿는 것은 자유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개인적인 일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나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차별하고 이기적인 욕심을 챙기는 파렴치한 행위가 될 때에 그 믿음을 아낌없이 버려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이웃들과 지구촌의 동료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용도폐기처분해야 합니다. 내가 벌어서 내가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말할 수 있느냐고 분노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망입니다. 우리 작은 사회도 그렇습니다. 나의 믿음은 개인적인 욕심을 챙기는 표층적인 것 보다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적어고 예수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내가 목사들을 비판하는 것은 믿음에 대해 교인들에게 정직하고 이성적으로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 목회자가 되는 안수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예수가 무엇을 가르치고 그가 몸소 살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과 성서와 교회와 세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여정이 시작된 마당에 나는 앞으로 목회자로써 예수가 산 것처럼 살 수 있겠는지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연합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20년을 목회했습니다.
성서는 훌륭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흉물이 되고 사탄과 마귀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근대사에서 성서문자주의가 인종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내세주의 황금만능주의 전쟁 테러 등의 추악한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핵심적인 사상은 우주적이고 통합적입니다. 성서는 일점일획도 가감할 수 없는 완전한 책이 아닙니다. 오류투성이고 왜곡된 사실로 가득합니다. 역사적 예수의 정신은 문자적인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진실한 책입니다. 진실한 책을 추악한 책으로 만든 것은 소위 믿음이 좋다는 신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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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믿는 사람들도 영혼의 세계를 믿습니다.
그러니 수천년동안 제사들을 지냈고, 영매(굳)을 통해 알려고 했지요.
나는 안 믿는다 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으로 믿어 왔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하나님이 마음의 법을 새겨 두렵고 떨림으로 믿고 생활한다고 하지요.
늘봄님은 전에 댓글에도 적어드렸다시피 답이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성경에 역사에 대해 깊게 공부해 보시길 바랍니다.
구약은 성자하나님이 이땅에 성육신 하시고 오셨을 때 아무 지적을 안하셔서,,,유대인이던 이슬람이던 카톨릭이던 개신교이던 이견일치로 아무 문제를 삼지를 않습니다. 다만 마이너 하게 저자 내지 역사(왕) 시기로 견해를 나누는 일이지요.
신약은 중세때 까지 몇 권을 전경에 넣을지 말아야 될지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이너 하게 지금까지 번역에 대한 문제이지
이런 것들도 큰 진리(보편적 진리) 은 문제가 전혀 되질 않고 있습니다.
킹 제임스 흠정역에 무슨 구절이 빠졌다도 어느 사본엔 있고 최근 사본에 없고 그래서 없음으로 표기한 것일 뿐 왜곡이 아닙니다. 또한 보편적 진리에 전혀 지장을 주질 않습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이 있고요 은유적으로 해석이 있습니다. 이것을 초대교회 교부들로 부터 지금까지 선인들이 어떻게 믿어왔고 후대들에게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잘 남겨줘 왔습니다 (예를들어 주기도문,웨스트민스터,아타나시우스 신경)
늘봄님 주장이라면 2020년까지 열심히 믿어왔던 사람들은 다 헛것이 됩니다. 헛것이라는 이야기는 다 다른 곳에 갈 사람들이고 늘봄님만 천국에 있는 엉뚱한 복음이 되고 맙니다.
제발 멋대로 쓰지 마시고요..아니 멋대로 믿으셔서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다른 분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시질 마시길 바랍니다.
바울이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갈라디아서 1장에서 2번씩 연속으로 다른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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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때에 천진 난만한 어릴 학생들이 배가 갈아 앉을 때 학생 본인들과 부모 님들이 하나(느)님께 살려 달라고 울부 짖었습니다. 처참하게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하느(나)님의 도움은 없었습니다. 전지 전능하시다는 그분도 물리적 법칙은 이기지를 못하였습니다. 짐을 너무 많이 실어 배가 깔아 안기 시작 할 때에 못 깔아 않게 할 수 있는 힘이 하나님에게는 없어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실제 살아 계신것이 아니고 2-3,000 여년전 인간들이 그 당시의 지식에 기초하여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적 존재"가 하나님이 아닌지 생각 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셔야 마땅한데 성경에는 인간이 달에가서 돌을 갖이고 온 역사적 사실, 인터넷으로 의사 소통하는 과학문명의 발달등에 대하여서는 일언 반구도 없습니다. 성경 저자들의 지식이 과학의 발전을 상상도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믿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시는분 모두 존경합니다. 이 믿음이 아무것도 아닐수 있는 사실에 말문이 막힘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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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 과학은 좀 다르게 설명을 합니다
글이 아주 장문이 될까 우려해서, 가능한 간단하게 적습니다.
혹 궁금하시면, 더 설명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현재,미래를 아신다. 그리고 인간에겐 선택의 자유의지를르 주었다.
첨에 이말을 들엇을때 모순이라고 생각하엿습니다.
어떤분 설명도 이해가 되지가 않았습니다. 현 과학의 발전을 알기 전까지는요.
인간의 자유의지로 사람을 죽이면, 하나님의 미래를 바꿀수 있고.
'
만인 내가 사람을 죽이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땐 하나님의 잘못이라고요,
대부분 신학자들이 다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건 그분들이 무지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이 골치아픈 논리는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가지의 나무 처럼 구순간 순간 세로운 우주가 탄생을 하게 되는거지요.
즉 화가 나서 사람을 죽여 감옥에 간 사람이
어떤 우주에선 그순간을 참아 행복하게 산 두개가 동시에 존재 한다는거지요.
그러면, 하나님은 이미 두개의 미래를 아셧고,
인간은 그 두개중 자유의지로 택했다는 논리를 주는거지요.
사실 시간은 변하는게 아닙니다. 마치 2차원의 세걔 인간들에게 높이라는 의미이지요.
높이가 변함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보여집니다, 우리가 시간에 따라 늙는거 처럼요.
사실 우린 4 차원세상에선 태어나서 늙을때 까지가 한모습이죠.
4차원 이상에 세걔에선, 또 내가 사람을 죽인 세상과 안죽인 세상이 또 하나로 보이는거지요.
결론은 신이 과거 현재 미래를 안다는 논리와
왜 인간이 사람을 죽여도 신의 잘못이 아나린 논리적인 답입니다.
현 과학으로 말씀드리면, 세월호 가 침몰시 전부 구조된 우주와 다 사망한 우주가
이미 동시에 존재하고 그 선택은 인간의 몫이란 점입니다.
너무 기네요.
제글은 현 과학에서는 상당수가 진실로 믿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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