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1935년 파주에서 태어난 신호범은 4살 때 고아가 되었다. 실제로 서울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다니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국 육군 부대에서 잡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1954년, 레이 폴(Ray Paull)이라는 미
국인 치과의사에게 입양되면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로 이민을 가게 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하여
영어를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년 4개월만에 미국의 대입 검정고시인 GED를 통과한 그는 "저는 매일 밤 세 시
간만 자면서 영어 사전을 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의 새로운 아버지와 가족은 모두 제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저를
북돋아주고 믿어주었습니다."라고 말했다.[1] 그 후, 1962년 프로보에 위치한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64년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공공국제학 석사를, 그리고 73년 워싱턴 대학교에서 또 다른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
하였다.
정치경력
1992년 워싱턴 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1994년에는 상원의원 직에, 96년에는 워싱턴 주 부지사(Lieutenant
Governor)에 입후보 하였지만, 경쟁 상대와의 아주 적은 표차로 인해 낙선 하였다. "이런 곳에서 이기려면 개인적으
로 인사를 하겠다"라고 생각한 그는 선거 지역 인구인 2만 9천 가구(32만명) 집 문을 모두 두드렸다.[2]
그의 열정과 성의에 워싱턴 주민들은 감동하였고, 그 결과 4선 의원을 상대로 의원 직에 당선된다. 2006년, 그는 미
국 정치 역사상 유례없는 무투표 99.7%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