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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할배 (두번째)
작성자 어진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157 작성일 2007-12-18 19:10 조회수 2396
진짜 할배 (두번째)

“딩동~ 딩동~~”
초인종을 눌렀다. 현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오셨다~!”
“어디 보자~”
수미는 찬이 손에 안겨서 자고 있었다. 예뻤다!
‘얘가 내 손녀란 말이지?’
“수미야~ 할머니다! 어디~ 우리 수미 한번 안아보자”
“여보, 잠간! 가서 손씼고 와!”
순진이는 부리났케 손을 씼고 오더니, 조심스럽게 수미를 받아들었다. 순진이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여보, 수미가 한국애 같애!!!” 순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수미는 진짜 ‘이상하다!’ 할 정도로 한국 아이 같았다.

시내가 찬이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내야, 힘들었지? 몸은 괜찮아?”
“Thanks Abunim. I’m fine!”
“시내야, 수고했어!”
시내를 꼭 안아주었다. 나에게 처음으로 손녀를 안겨준 시내가 고마웠다. 한참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정신이 없는데, 무엇인가 내 무릅를 긁고 있었다. 내려다보니 Winston이 반갑다고 내게 와서 다리를 긁고 있었는데, 모두 수미에게 정신이 팔려서 Winston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에구~ 우리 손자 Winston이 이렇게 알아달라고 인사를 하는데 아무도 아는 척를 안해? 미안해~ 미안해~!”
앉아서Winston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녀석을 안아주었다. 좋아서 어쩔줄 모르면서 내 얼굴을 핥았다.
“녀석, 그렇게 좋아? Winston, 할배가 수미를 한번 안아봐야 되거든, 조금 있다 놀아줄께”
Winston을 놓고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씼었다.
“자~ 우리 손녀 한번 안아보자~”
수미를 순진이에게서 받아 안았다. 종이장 처럼 가볍다고 생각했다. 내 아들들을 안았을 때하고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이젠 내가 진짜 할배가 됐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이렇게 건강하고 예쁜 손녀를 주셨군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가정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여자 아이였다!

찬이는 영어 이름을 “Ava” 라고 지었다. “Ava” 라는 이름의 뜻은 “새(bird)” 라고 했다. 그 이름을 처음 듣고 봄 하늘을 나르며 봄소식을 전해주는 종달새를 생각했었다. 순진이와 나는 이름을  “수미” 라고 지었다.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고 부터 한국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하고, 영어 이름과도 소리의 흐름이 좋아야 하고, 성과도 함께 발음하는데 어색하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좋은 의미를 가져야 했다. 매일 불러야 하는게 이름인데 좋은 이름을 지어 주고 싶었다. “수미”  빼어날 수(秀), 아름다울 미(美)를 썼다. 사람들은 여자 아이이니까 “예뻐야 한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우리는 좀 더 크고 깊은 의미를 두었다. 우리는 수미가 아름다운 아이로 자라나기를 원했다. 몸과 마음이 아름다운 아이가 되길 바랬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서 영혼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길 바래서 “수미” 라는 이름을  첫 손녀에게 지어주었다.

수미를 안고 온 가족이 둘러서서 수미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 가정에 예쁘고 건강한 아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여기 모인 저희들 모두 수미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게 해 주십시요. 수미가 자라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많은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요. 수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가정과 이웃과 사회가 기뻐하게 해 주십시요. 수미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게 해 주십시요.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라게 해 주십시요. 제가 이루지 못한 이민의 꿈을 수미가 이루어가게 해 주십시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뜨고 내게 안겨있는 수미를 내려다 보았다.
수미의 자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내 손녀라서 그럴까?’
‘첫 손녀를 안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수미와 나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시내는 아이를 낳은 사람같지 않게 건강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해산을 한 사람들을 방안에서 거의 두 주일 동안 꼼짝도 못하게 하는데, 카나다에서는 산모를 전혀 다르게 대했다. 한국에서는 산모가 해산을 하고 목욕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일어나서 걸어다니는 것도 못하게 했지만, 시내는 거의 정상적인 사람과 같이 행동을 해서 순진이를 걱정시켰다.
“얘~ 너 그렇게 돌아다녀도 돼? 가만 앉아있어”
“괜찮아요. 어머님”
“젖은 잘 나와?”
“아직은 잘 안나와요”
“그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조금 시간이 걸릴꺼야!”
“배가 고픈지 수미가 많이 울었어요”
“찬아, 네가 잊지말고 꼬리국에 미역을 넣어서 매끼마다 먹게 해”
“알았어요”
“엄마가 젖이 많아야 얘가 튼튼해 지는거라구”

순진이는 찬이를 부엌에 데리고 가서 끓여 온 꼬리국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을 꼼꼼히 설명해 주었다. 산모가 힘들어 할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났다. 집에 오는 길에 순진이는 시내가 젖이 부족하다는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젖이 많이 나와야 할텐데……”
“별 걱정을 다 하네! 엄마가 건강한데 무슨 걱정이야!”
“괜찮겠지~?”
“그럼~ 당신이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면 젖이 콸~콸 나올꺼야!”
“정말 그럴까?”
“물론이지!”

“여보 수미가 너무 예쁘더라!”
“누구 손녀인데!”
“난 수미가 한국 아이 같아서 참 좋아!”
“그런 말을 시내 듣는데서 하지마!”
“알았어. 난 사실 조금 걱정했었다~”
순진이는 아들들에게 어려서 부터 꼭 한국 여자들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세뇌(?) 교육을 시켰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 자식들이 부모가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느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여보, 앞으로 두고 봐라~ 수미는 한국과 카나다의 좋은 것들을 잘 조화 시켜놓은 아주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이 되테니까!”
“………”

“그래~ 할머니가 된 기분이 어때?”
“할머니라는 말이 아직 어색한데, 수미가 너무 너무 예뻐!”
“당신 할머니 되기에 너무 젊은 것 아냐?” 약간 낯간지러운 말을 했다.
“당신도 수염만 깍으면 나처럼 젊어 보일텐데……”
“또~ 또 그 소리!”
순진이의 손을 가만이 잡았다.
“운전하면서 왜 이래?”
“어디~ 할망구 손을 한번 잡아보자~!”
“주책이야!”
“씨~ 좋으면서……”
순진이의 손은 항상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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