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스에서 비프를 싣고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로 가는중이었다. 본사에 들려 간단한 수리를 한 후 두 시간 정도를 달리다가 갑자기 트럭에 문제가 생겼다. 파워가 뚝 떨어져서 20 mph 이상 속도가 안나고 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열 시간 이상을 낭비한 후 본사는 토우트럭편에 임시 트럭을 보내줬다. 임시 트럭은 오랫동안 야외 주차장에 처박혀 있었던듯 잔뜩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것저것 따질 계제가 아니어서 급히 이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토우트럭은 내 트럭을 다시 본사로 가져가서 수리할 예정이다.
다음날 날이 밝아졌을때 트럭 문짝을 보니 'Million Mile Driver' 라는 휘장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오오! 누군가 백만마일 드라이버가 타다가 다른 트럭으로 바꾼 후 방치된 트럭이었는데 백만마일 휘장을 미처 못지운듯 했다.
백만마일 드라이버라 함은 한 회사에서 7년 반 정도를 꾸준히 운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치른 베테랑 드라이버를 증명하는 것이다.
회사는 백만마일 드라이버가 되면 트로피와 보너스를 준다. 본사 드라이버 라운지에는 백만마일 드라이버들의 사진이 쭈욱 진열돼있다. 개중에는 사백만마일 드라이버도 있다. 그야말로 30년 정도를 이 회사에서 운전했다는 거다.
백만마일 드라이버는 초보에게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다. 어떻게 후진 주차를 해야 하는지, 어떤 루트로 도어에 접근할지, 어떻게 좁은 영역에서 빠져나와야 할지 초보 드라이버 입장에선 막막할 때가 많다. 하지만 백만마일 드라이버는 식은죽 먹듯 이 어려운 일들을 해치운다.
머리가 좋다고 되는게 아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오직 경험이다. 트랙터와 트레일러가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는 마술을 발휘하는 존재들이다. 때문에 우리 트럭커들은 백만마일 드라이버를 만나면 자주 볼 수 없는 군자를 만난듯, 절정 고수를 만난듯 어깨를 좁히고 경의를 표하면서 몸을 사린다.
약 8 년의 세월이다. 그가 트럭 안에서 지낸 그 수많은 외로운 밤을 생각하면 절로 애절해진다. 그가 보냈던 7~8 번의 겨울을 생각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비록 임시로 타는거지만 그런 고수가 몰았던 트럭을 내가 지금 운전하고 있다.
주유를 위해 트럭스탑에서 줄을 서니, 빈둥대던 앞 줄의 드라이버가 내 트럭의 백만마일 휘장을 보고서는 갑자기 행동이 빨라진다. 감히 내 시간을 허투루 보내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거다.
트럭스탑에서 파킹을 하려고 위치를 잡으니 주변의 여러대의 트럭들이 멀찍이 멈춰서서 내가 여유있게 주차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갑자기 후진 주차도 잘 된다. 백만마일 휘장의 위력이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주변의 지나가는 트럭커들이 내게 목례하며 예를 갖춘다. 아무렴! 당연히 그래야지. 에헴~
아주 드물게 위의 동영상과 같은 지랄맞은 배달처가 있다. 이번에 애틀랜타의 리시버가 저런곳이었다. 보통때 같으면 진땀께나 흘렸겠지만 이번만은 아니었다. 난 백만마일 드라이버니까.
위엄을 갖추고서 일반 승용차들의 교통 흐름을 막고서는 쭈욱 한번의 후진으로 도킹에 성공했다. 역시 백만마일 드라이버의 트럭은 뭔가 다르다. 내 생각대로 달리고 움직이는 적토마같다.
배달을 마치고 다시 짐을 받아서 의기양양하게 북쪽으로 움직이는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원래 트럭이 수리됐으니 본사에 들러 다시 트럭을 바꾸라는 지시다.
쳇, 바꾸기 싫은데… 다시 어수룩한 동양인 트럭커로 돌아가기 싫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