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순례의 여행을 떠나지만 4월의 황무지 주민들은 쾌락의 여행을 떠난다.
이민 오기 전에 서양사회에 대해 부러운 것이 하나 있었으니 부활절 휴가다. 신문이나 방송에 보면 미국 대통령들은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로 부활절 휴가 떠나더라.
미국 대통령이야 나하고 상관없는 멀고 먼 존재니까 막연히 그런가보다 했으나 외국계 회사 취직한 친구들이 성 금요일이라 논다고 들었을 때는 "신이 정말 너그러운 존재구나. 평생 교회 근처에도 안 가보는 인간들을 금요일에 쉬게 하다니.”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피부에 와서 닿았다.
한국에서는 교회에나 가야지 달걀이라도 얻어먹지 언감생심 부활절 휴가라니.
어찌 어찌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고 어찌 어찌하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니 부활절휴가가 현실로 다가왔다. "나도 드디어 부활절 휴가를 찾아 먹는구나."
세상 일이란 게 모를 때는 대단해 보여도 알고 나면 별게 아니듯 부활절 휴가도 알고 보니 별게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은 부활절 휴가를 며칠이나 지내는지 몰라도 나는 고작 4일이다. 그나마 토, 일은 원래 노는 날이니까 성 금요일 하고 부활절 월요일이 노는 날이다.
그렇기는 해도 내가 장사를 하거나 개인 사업을 했다면 부활절 휴가를 꿈도 꾸지 못할 텐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부활절 휴가를 지내게 되어 그것도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퇴직을 앞두고 있는데 딸이 이번 부활절 휴가에는 같이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다. "아빠는 퇴직하면 매일 매일이 성탄절 휴가이고 매일 매일이 부활절 휴가니까 퇴직하기 전에 여행을 하자."
그래서 여동생, 딸과 함께 4월의 황무지 주민 답게 순례의 여행이 아닌 즐거운 여행을 떠났는데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산골마을에서 성 금요일 예배를 참석하려 했더니 문이 굳게 닫혀 방문객의 출입을 거부했다. 코비드-19가 할퀴고 지난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산골마을에 처음 찾아왔을 때가 생각 났다. 그때는 한국에서 매제가 와서 여행 중에 이 산골 마을을 찾았다. 이곳에 한국 식당이 한 군데 있었다. 지금도 한 군데 있다.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주인이 나오니 매제가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 민박하는 한국 사람이 있냐고. 한군데 있다고 하니 매제가 여기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다면서 호텔 가지 말고 민박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갔다. 젊은 부부인데 남편은 선물가게에서 일하고 부인은 임신 중이었는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었다. 뱃속에 있는 아이 태교를 위해서 좋은 음악을 듣고 있다고.
다음날 아침 일어났더니 아침 식사를 준비했으니 같이 먹자고 한다. 잠만 자기로 했는데 웬 아침이냐고 물으니 찾아오신 손님인데 반찬은 없지만 같이 먹자고 한다. 반찬도 많고 푸짐했다. “여기서는 아침을 이렇게 매일 거하게 먹냐?” 라고 물으니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많이 드시라고 한다. 팬 케이크에 커피나 마실 요량이었는데 횡재한 기분이었다.
차려주는 아침을 잘 먹고 방값 계산을 하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면서 “어떻게 한국 사람끼리 돈을 받냐?”면서 그냥 가시라고 한다. 얼마 안되는 돈을 식탁 위에 놓으니 다시 집어 주머니에 넣어주며 가스비라도 하시라고.
일단 방으로 돌아왔는데 매제가 “형님, 이거 그냥 가면 안되는 거 아냐?” 라고 한다. “당연히 안되지, 아침까지 먹었는데.” 매제가 마침 봉투가 있다면서 내놓길래 봉투에 고마운 마음까지 담아 책상위에 놓고 주인 부부와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시 산골 마을을 갔을 때 그 젊은 부부의 고마운 마음이 생각나 인사라고 하려고 찾아 갔더니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고 한다.
딸 하고는 여행을 여러 번 했는데 퇴직을 앞둔 이번 여행은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대지를 덮은 눈이 죽어 가는 마른 뿌리에 생명을 대주듯 저녁 나절 셋이 커피를 손에 들고 산골 마을을 거닐며 살아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만 부활이 아니라 퇴직을 해도 그걸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걱정도 되고 염려도 되지만 부활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