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그냥 심심해서 끄적거린 정제되지 않은 글입니다. 바쁘신 분들께는 일독을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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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단편 소설 '도둑맞은 가난' 의 여주인공은 가난하고 가련한 여공이다. 하루에 연탄 반장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녀는 같은 처지의, 도금 공장에 다니는 청년과 단칸방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사실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 청년의 부자 아버지가 가난을 겪어 보라며 청년을 등떠밀어 공장에 다니다가 결국 그 여공과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공은 크게 좌절하여 부자들이 가난까지도 뺏어 간다며 절규한다.
젊은 시절 이 소설을 읽고 참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가난 속에서도 그래도 장래를 꿈꾸며 살고 있었다. 비록 연탄 반장을 아낀다는 핑계 였지만 그 청년과 알콩달콩 살 미래를 내심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동거하던 남자가 사실은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상실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가난이 부끄럽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계속 밝혀 왔듯이 나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나의 친척, 친구, 이웃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의 유년기와 소년기 그리고 청년기는 행복으로 가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았던 그 빈민가의 작은 집, 수도꼭지 하나를 세 가구가 공유하던 그 집에, 누군가 부자집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경하겠다고 위장전입을 해온다면 나는 무척 화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동물원의 구경거리가 아니므로!
세이노가 박완서의 이 단편소설을 자신의 책에서 언급했다. 그리고 상당히 이상한 결론을 도출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이 부잣집 도련님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관찰한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을 여러개 언급한다.
그가 언급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특징은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저 부자들이 자신들의 종업원들이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가짐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예를들면 '돈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 일이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았던 돈의 액수 이하로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등등 정확히 가진자들의 논리를 가난한 자들의 특징이라며 나의 가난한 친척, 친구, 이웃들을 모욕한다.
세이노는 두 딸이 있다. 두 번째 딸이 태어났을 때 이미 세이노는 부자였다. 그는 자신의 두 딸이 가난을 경험해 보길 원했다. 정확히 '도둑맞은 가난' 에서 부잣집 청년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래는 세이노가 그의 아내에게 말한, 두 딸에게 가난을 경험시켜 보기 위한 계획이다.
(인용 시작)
나는 틀림없이 앞으로 더더욱 부자로 산다. 나는 딸들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고 싶다. 그 비결중 하나는 낮은 곳에서 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들이 중학교 수준이 되면 아빠가 갑자기 망했다고 말하고 거짓으로 재산을 몽땅 압류당하는 것으로 연극을 꾸미자. 그리고 판잣집으로 이사가서 단칸방 생활을 하자. 너는 파출부를 하는 것으로 하고 나는 뭐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 모르겠다. 우리 둘은 허름한 옷을 입고 매일 아침 판잣집에서 나와 숨겨놓은 진짜 집에 가서 낮에 있다가 저녁에는 다시 애들이 있는 판잣집으로 돌아가자. 물론 애들에게는 돈이 전혀 없는듯 처신하고 등록금은 일부러 늦게 주자. 맛있는 것이 먹고 싶으면 우리끼리 몰래 밖에서 외식하고 들어가고 딸들에게는 수제비나 먹이자. 봉투 붙이는 일 같은 것도 가져와 딸들에게 시키자.
(인용 끝)
이 계획은 그의 부인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뭐 이렇게 복잡한 계획을 세웠는가 모르겠다. 그냥 소설 속의 부자 아버지처럼 딸들이 20 살이 넘었을 때 쫓아내 버렸으면 그만이었을 건데… 그러면 그의 두 딸은 공장에 다니다가 월세를 아끼기 위해 가난한 청년과 동거를 시작했을 텐데,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했는가 모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