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쫀이 영감 (두번째)
‘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남의 눈에 쫀쫀하게 보였다면, 쫀쫀한거지 내가 어찌하랴!’
하지만 좀 억울했다. 딴에는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신경을 썼고, 자정이 다되가는 시간에 다음 날 직장에 가야했지만 그 먼거리를 운전해서 살고 있던 아파트 정문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결국은 “쫀쫀하다” 라는 말을 듣다니…
어진이는 아내의 친구와 만났던 일을 처음부터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행동을 했기에, 그녀의 눈에 쫀쫀하게 보였을까? 그녀가 처음 집에 다녀간 후에, 얼마 있다가 혼자서 아내가 하는 세탁소를 찾아왔다. Subway와 뻐스 갈아타면서 고생을 좀 한것 같았다. 그 날 어진이는 퇴근하자마자 세탁소로 갔고 아내는 친구에게 저녁을 해준다고 하면서 부리나케 친구와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어진이는 세탁소에서 잔일을 정리하고 마무리를 한 다음 집에갔다.
집에 가보니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딴에는 오랫만에 온 친구를 대접한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니 숟가락 젓가락 놓는 것을 도와주고 물도 따라 놓고 table setting을 어진이가 했다. 집에서 여자라고는 아내 혼자이기 때문에 남자들(어진이와 세 아들들)이 아내를 도와 부엌일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진이의 가족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였고, 그게 혼자 외톨이로 쓸쓸히(?) 살아가는 아내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혹시 그게 “쫀쫀하다” 라는 말을 듣게된 첫번째 이유일까?
모르긴 해도 결정적인 이유는 설거지였던 것 같다. 요즘은 많이 변했겠지만 50대 후반인 어진이의 나이 또래에서 남편이 설거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 더욱이 한국에서야 아내들이 발을 동동굴러도 남편들은 TV를 보겠지… 저녁을 먹고나면 신문을 펴들고 Tea table위에 두발을 올려놓고 “야~ 숭늉 좀 가져와!” 소리지르지 않을까? 그러나 카나다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지 않은가! 여자들이 모두 또순이가 되어 남자들의 일을 하니, 남자들도 집에서 여자들의 일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때문에 쫀쫀하게 보였다면, 백번 “쫀쫀하다” 라는 말을 들을 각오가 돼있다!
또 어진이는 아내의 친구와 함께 한국식당에 갔었다. 비디오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여자들도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조상탓에 술을 못했다. 맥주 반 잔이 치사량이였다. 반 잔만 마시면 정신이 어쩔어쩔해지고 얼굴은 술을 혼자 다 마신 사람처럼 새빨개졌다. 아들들도 그와 비슷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도마도”라고 불린다고 했다. 아들들에게는 그게 하나의 불만이였다. 자꾸 마시면 면역이 좀 생긴다지만, 그 고생(?)을 하면서 까지 면역을 기르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하기를 그와 같은 사람은 alcohol를 분해하는 효소가 체내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진이는 군에 있을 때는 고참들이 하던 말이 떠 올랐다. “저 시끼는 어떻게 된 시끼야! 놀때는 기차게 노는 시끼가 술은 한잔도 못해!” “재수없는 시끼! 이 시끼야, 한곡 뽑아! ㅎㅎㅎ”
식당에서 “술을 좀 드시겠어요?” 아내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괜찮아요.” 아직도 서먹서먹했는지 사양을 했다. 집을 떠나서 유학와 있는 아들들을 돌봐주다 보면 속상하는 일도 있고 울적할 때도 있었을텐데… 친구라고 찾아왔는데, 친구도 술을 못하고 그 남편되는 싸나이도 술을 못하니… 재수 옴붙었다고 생각했겠지…
그렇다고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실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이지, 어떨 때는 술을 좀 마실수 있으면…… 할 때가 있었다.
그러니 “쫀쫀하다” 라는 말을 들을수 밖에…
“에라! 못먹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기 보다는 “쫀쫀이” 라는 말을 듣자! 그게 더 편하다!”
아내의 친구가 “쫀쫀하다” 라고 하는 말이 맘엔 안 들었지만 억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한국과 카나다의 사정이 다르니까…
“그런데 요놈의 마누라는 왜 쫀쫀이 영감이라고 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