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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쥐" (Thirst)를 보고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1730 작성일 2009-09-09 14:51 조회수 1977
* 여기 씨엔드림 웹싸이트 안내를 보고 영화 박쥐를 보았습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그래도 제 나름대로 느낀 바를 적어 보았습니다. 영화를 텍스트로 본다면 읽는이마다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제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두 번은 더 봐야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장면에서 신발, 발가락 애무, 몸이 탄 재, 다시 신발의 씨권스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 아프리카 올림

지난 9월 6일 일요일 저녁 캘거리의 Plaza 극장에서 한국 영화 박쥐 (Thirst)를 보았다. 내가 가자고 해서 총 7명이 보았는데 영화 본 후의 반응은 하나같이 머리 아프고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재미가 없었고,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주차하느라 10여분 늦게 영화를 봐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박찬욱의 이 영화는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네러티브의 예상을 작정해서 깨려 하고, 그가 설정한 세트나 장치의 나열은 진부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그것이 그의 의도라면 그의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적 실험과 생산되는 기호들이 네러티브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박쥐"라는 한글 제목과 "Thirst"라는 영어 제목하며, 우리가 잘 아는 서구적 뱀파이어 주제부터 요즘 유행하는 욕망의 기호, 쇠락하는 전통한복집에 어우리지 않은 테이블과 마작, 중국식 또는 일본식 적산 가옥의 세트, 지겨운 구닥다리 유행가를 LP로 틀어대며, 고뇌하는 신부의 진부한 종교적 주제를 그는 막 버무려대고 있다.

삶은 전염이자 감염이다. 상현은 잘못된 수혈로 감염되어 뱀파이어가 된다. 어느 의료시험에서 500명 사상자 중에서 살아난 그는 성자로 떠 받들리며,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치병이라는 종교적 주술의 노예가 된다. 뱀파이어는 우연히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 가족을 만나고, 그 가족의 사육된 며느리 태주를 통해서 그에게 통제한 성의식이 감염되고, 태주 역시 상현을 통해서 자신의 통제당한 성의 욕망을 한없이 발산한다. 이러한 통제/억압과 자유의 변증법이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허우적거리듯이 버텨내고 있다.

박찬욱이 돌대가리가 아님은 모든 세트나 네러티브 전개, 그리고 각 장면마다 보여주는 기호와 상징이 묘한 엇갈림과 맛물림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태주가 신부 상현에게 하는 말, 나는 지옥 안가요.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엔 박찬욱이 지향하는 포스트 모던적 기호를 읽을 수 있었다. 지옥은 만들어진 것이지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의미도, 두려움도, 욕망도 내가 만들어낸 상징의 엇물림과 겹물림 때문에 존재한다. "카톨릭 신부" 상현은 종교라는 전통적인 구원의 주제를 극복하지 못하여 갈등하고, 데려다 길러지고 이젠 정신박약의 못난 남편과 어머니자 시어머니의 사육에서 스스로 자유라는 욕망에 눈뜬 태주는 새로운 욕망 형성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것은 흥미있는 교차이자 병치다. 상현은 자발적 성의 억압에서 해방되고 태주는 타의적 성의 억압에서 해방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성적 갈망은 뱀파이어가 피에 굶주려 피를 빠는 것만큼 격렬하다.

그러나 여전히 상현은 신부라는 종교적 통제에서 서성인다. 상현이 태주를 뱀파이어로 만든 것은 그 자신의 욕망의 통제와 이러한 통제의 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지도 모르겠다. 뱀파이어는 타자의 생명선인 피를 빨아먹고 생존해야 하는 존재이다. 상현은 타자를 죽이지 않고 최소한의 희생으로 자기 존재를 존속하려 하며, 이제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자신의 욕망, 즉 뱀파이어의 욕망을 극대화하려 한다. 사람 살해로 고뇌하는 상현과 달리 태주는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빨아 먹는다. 뱀파이어와 섹스 모티브는 이렇게 공생한다. 피를 빨아먹은 뱀파이어나 섹스의 갈증의 애무와 썩킹은 같은 것이니까. 그러므로 섹스는 인간이 욕망할 수 있는 최상의 기호이며, 그러한 욕망은 타자를 파멸시키므로서 성취되기 때문에 이기적이다.

상현은 이 중간에서 고뇌한다. 그러던 그가 이제 신부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가 태주의 통제되지 않은 욕망에 편승는 것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상현은 고뇌한다. 그러한 타자의 파멸을 통해서 욕망을 실현하는 것의 끝 말이다. 스스로 자신의 몸의 피를 공급했던 그의 스승격인 눈먼 신부 역시 상현이 욕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에 상현은 경악한다. 상현의 피 한방울이라도 먹어 스스로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욕망에 미쳐버린 주임신부, 상현은 그 신부를 살해한다. 상현은 그 신부에게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깨닫는다. 섹스와 뱀파이어의 욕망은 같은 것이며, 그리고 끝이 없는 것이라고. 박찬욱이 끼워놓은 강간 장면은 그 욕망의 끝의 졸렬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를 성자로 추종하는 자들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태주를 길러 준 식물인간이 된 태주의 시어머니와 태주를 태우고 깊은 밤을 뚫고 앞으로 태양이 작렬할 벌판으로 나아간다. 끝까지 욕망의 무한대로 질주하는 태주, 그리고 그것을 끝내려는 상현, 그들은 마침내 떠오르는 아침의 강렬한 태양아래 살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함께 한 줌의 재가 된다. 욕망은 스스로 타 들어가면서 성취되듯, 그 성취의 끝과 종말은 한 줌의 재다.

사실 욕망, 파멸과 구원은 하나였다. 아니 거기엔 감염만 있을 뿐이다. 이 감염은 허무다. 상현은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보다는 그래도 인간으로 남고 싶었다. 그는 뱀파이어를 포기하므로써 인간이 되었다. 자기 파괴가 구원이었던 것이다. 아니 허무였다. 그 인간이 뭔지……별거 아니다. 감염되는 것이다. 우리는 감염을 통해서 나와 너의 세계를 잇는다. 구원도 감염이며, 파멸도 감염이며, 삶도 감염이다.

박찬욱의 이 영화에는 종교도 없고, 세계도 없다. 감염만 있을 뿐이다. 그 감염이 세계를 만들어 내며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래도 우리는 감염을 원하며, 또 감염시키고자 한다. 그게 삶이다. 감염은 또 다른 욕망의 이름이니까. 상현이 끝내 뱀파이어로 남을 수 없었던 것은 박찬욱이 현실 인간인 탓일까? 박찬욱이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면, 그에게 전통적인 종교와의 싸움에 힘이 부친 탓일까? 또는 그는 여전히 모더니즘의 굴레에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진짜 재미없는 영화다. 재미를 붙이려면 각 장면이 주는 연극적 씨퀀스를 애써 이어보려는 부질없는 짓밖에 없다. 대신에 깨어진 플롯과 그 장치들에 만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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