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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운전하며 등산하기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7978 작성일 2024-05-10 12:45 조회수 1302

 

북미 서부와 동부에는 산이 참 많죠. 따라서 트럭을 운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산을 많이 넘어야 합니다. 특히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알버타를 거쳐 뉴멕시코까지 뻗어 있는 로키산맥과, 동쪽에서 캘리포니아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악명 높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밴쿠버에서 캘거리로 가는 로키산맥 여정, 중부에서 시애틀로 넘어가는 Snoqualmie pass, 네바다 르노에서 새크라멘토로 가는 Donner pass 가 지랄 맞은 곳이죠. 아, 물론 겨울에 말입니다. 겨울을 제외하면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없이 오르막길을 거북이 걸음으로 오르다 보면 엔진에 무리가 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르막길 갓길에 문제가 생긴 트럭들이 후드를 열고 서 있는 걸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엔진은 끊임없이 굉음을 내며, 과열된 엔진을 식히기 위한 팬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내리막길 전에는 강제적으로 몇 분간 정차해서 브레이크 체크를 해야만 합니다. 내리막이라고 일반 승용차처럼 신나게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제이크 브레이크를 걸고 또다시 굉음을 내며 천천히 천천히 안전하게 내려가야 하죠. 가끔 초보 드라이버가 과도한 풋 브레이크를 사용하여 트레일러 액슬에서 연기가 풀풀 풍기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설치된 runaway ramp 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신경이 바짝 곤두섭니다.

 

시련은 겨울에 찾아옵니다. 폭설이 내리면 이런 길들은 곧잘 폐쇄되곤 합니다. Donner pass 는 아예 ‘트럭만 통과 금지’ 표시가 뜰 때도 있지요. 길이 다시 뚫릴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죠.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돈을 벌 수 있는 트럭커에게는 악몽과 같은 상황입니다.

 

눈이 내리는 산길을 오르는 건 유쾌한 경험이 아닙니다. 곧잘 트럭에게 체인 설치 명령이 떨어집니다. 갓길에 트럭을 세우고 낑낑대며 체인을 설치해야 하죠. 체인 설치는 힘들고 귀찮은 일입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Donner pass 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지정한 체인 설치 대행업자들도 많습니다. 제가 이틀 전(2024/2/19)에 체인을 하고 그 길을 넘었습니다. 겨우 4마일의 거리를 한시간 동안 기어갔습니다. 체인을 설치했던 후유증으로 근육통을 얻었는데 아직도 이곳저곳이 아프네요.

 

밴쿠버는 레인쿠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겨울에 거의 매일 비가 오기 때문이죠. 태평양 상공의 덥고 습한 공기가 로키 산맥을 만나면서 위로 올라가다가 냉각 응결되어 비가 내립니다. 그런데 이게 산 위에서는 눈으로 변한다는게 문제입니다.

 

몇 년 전에 BC 주의 호프라는 소도시에서 네슬레 브랜드의 생수를 가득 실었습니다. 취수장에서 바로 실은 것이죠. 배달지는 캘거리 근처의 월마트 웨어하우스였습니다. 캐나다 짐이기에 미국 짐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로키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급경사를 오르다 보면 체인 설치가 필요한지 아닌지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저는 체인 설치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점점 진눈깨비를 거쳐 폭설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길이 점점 미끄러워지면서 무거운 짐 때문에 운행이 불가능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길에는 저와 같은 신세의 트럭이 여러대 있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최대한 갓길에 붙여 체인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경사이고 캐나다 표준에 맞춘 무거운 짐 때문에 체인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헛바퀴를 돌다가 결국은 체인이 끊어졌는지 어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결국 도로 일부를 막으며 운행 불능이 되었습니다.

 

토우트럭을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봤습니다. 그런데 통화 불능 지역이었습니다. 회사에 나 대신 토우트럭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응답이 늦었습니다. 취수장에서 여러 대의 같은 회사 트럭을 봤는데 아마도 그들도 곤경에 처해 있어서 야간 디스패치가 무척 바쁜 모양인가 봅니다. 전화도 먹통이요 회사는 응답이 없는 와중에 저는 고속도로 일부를 가로막고 있는 상태네요. 와, 환장스러워라.

 

결국 경찰차가 저한테 접근해서 상황을 보고는 저 대신 토우트럭을 호출했습니다. 만약 제가 체인 설치 경고판을 무시하고 올라왔다면 딱지를 받았을 겁니다. 여튼 경찰이 불러 준 토우트럭에 매달려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서 토우트럭 기사는 제 사인만 받고 또 다른 트럭을 구조하기 위해 내려갔습니다. 아마 비용은 회사에 청구하겠지요.

 

여튼 겨울에 눈 내리는 상황에서 산맥을 넘는다는 건 이런 과정입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상용 트럭의 무인 자율 운전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도무지 상상이 안 갑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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