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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금연 성공 예감 |
작성자 773860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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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2336 |
작성일 2010-02-09 23:40 |
조회수 2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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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금연 성공기
이 성공기를 쓰고자 하는 이유는 금연결심을 더욱 굳건하기 위한 것도 있고 다른 분들에게도 금연하는데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고교 졸업후 피워대기 시작했으니 어느덧 30년이 다 되었다. 대충 하루에 한갑정도 피웠으니까. 이것을 양으로 계산하면 365[갑/년]x30[년]= 10,950[갑] 이것을 현재 금액으로 치면 2천만원(갑당 2000원)이 넘는다. 캐나다 싯가로 따지면 10만불이 넘는다.(갑당 $10로 잡았음, 물론 과거엔 담배값이 많이 쌌지만 그간 인플레이션, 이자 등을 고려하여 현재 가치로 삼았음)
어쨌든 적은 돈이 아니군요.
그다음에 시간손실은 따지면
a: 하루평균 흡연량 1[갑/day]
b: 갑당 개피수 20[개피/갑] (캐나다에서 흡연경력 10년, 25개피짜리 였음)
c: 한개피 피우는데 소요시간 3 [분/개피]
d: 흡연 경력 30 [년]
여지껏 피운 총 담배 개피수는 a x b x d = 1 x 20 x (365 x 30) = 219,000[개피]
30년 동안 담배 피우는데 소요된 총 시간은 219,000[개피] x 3[분] = 657,000[min]
657,000[min]/60[min/H]
= 10,950 [H] / 24 [H/Day]
= 456[Day] + 6 [H]
도대체 믿겨지지 않는다. 30년 세월중에서 1년 하고도 3개월 6시간 동안 줄창 담배피우는데 소비했다는 사실에 뒤통수 한방 맞은 느낌이 든다.
지난 날들을 뒤돌아 보니 흡연욕구를 이기지 못했던 일들을 생각난다.
일하는 시간중에 담배피우려고 하던일 미뤄놓고 들락거리다 보면 일능률이 오를 수가 없었고 나가는 중에 들어오는 중에 직원들 만나 잡담나누다 보면 20분 정도는 금방 지나간다.
한국에서 살적에 한번은 아파트 아래층 사람하고 얼굴을 붉힌적이 있었다. 베란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중에 담배재정도는 재털이 털지 않고 그냥 바깥에다 대고 턴다.
아래층집도 문을 열어 두었는지 베란다로 담배재가 바람타고 들어 온댄다.
그리고 이 나라에 와서는 주로 garage에서 피웠다. 작지않은 빈 화분을 재털이 삼아 썼는데 약 두어달에 한번 비웠다. 비울적마다 내가 피운 담배꽁초를 보니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든다. 비울때 그 꽁초의 냄새는 꼴초한테도 역겨웠다.
아마도 끽연자중 99%이상은 담배를 끊을 생각은 다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동안 최장의 금연기간은 약간 일년 넘었던 정도고 작심삼일 결심은 가을하늘 하루살이수 만큼 셀수도 없다. 사용했던 방법은 금연보조제없이 단순한 결심으로 시도하는 것과 니코틴 패치, 씹는 검도 시도했었다. 한번은 가슴에 패치를 붙이고 니코틴 검을 동시에 씹었는데 담배 처음 배웠을 때 그 고통이었다. 얼마나 메스껍고 속이 울렁거렸던지 악몽이었다.
이번 금연은 작년 9월부터 시작했으니 5개월 반정도는 지났고 성공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작년초 패치를 사용하다 며칠 버티지 못하고 실패하였으나 줄곧 호시탐탐 다시 시도할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다가 family doctor에게 찾아가 상담을 하였다.
champix라는 복용제인데 정말 희한한 약(?)이다.
약 3개월정도 복용을 해야 하는데 처음 2주정도는 잠자는데 악몽의 연속이다.
꿈에서 깨어 나서도 꿈과 현실이 구분이 않될 정도로 꿈이 생생하다. 좋은 꿈이라면 평생을 복용하겠는데 생각하기 싫은 과거의 기억이 꿈이 되는 주재료이다.
인터넷에서 이 약에 대하여 검색을 해봤는데 니코틴성분이 없고 뇌수용체에 직접 작용해 도파민을 발생하는데 이것이 흡연과 같은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약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으로 실패하신 분들에게 추천한다.
몇 개월 금연해 놓고 피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생기는데 실패했던 이유가 타협하려는 가짐때문에 실패한다. 나의 대체적 예를 들어 보면
- 딱 한 모금만, 정말로 딱 한번!(정말 자신에게 치사해질 정도 임)
- 주체 못할 밀물같이 밀려오는 흡연욕망에 무너짐(며칠후 정상적(?)으로 다시 담배를 피우는 자신이 한심해지고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했나 하는 막심한 후회)
- 딱 한번만 피우고자 할때 핑계거리를 만든다.(예: 스트레스)
이번에 실패하면 끝이다, 마지막이다. 죽어서야 끊을 수 밖에 없다라는 결심을 하고 다짐 또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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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6 년 간 피웠던 담배를 단 한 방에 끊어버렸습니다. 벌써 6 년이 넘었군요.
모범생이었던 77 님과는 달리 저는 고등학교 1 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습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시대 배경이기도 했던 1978 년 이지요. 기억하시나요?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이 났던……
이 나쁜 습관은 내가 담배를 끊은 2003 년까지 무려 25 년 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담배를 끊게 된 계기가 좀 색다릅니다.
끊으려고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뜯은 담뱃갑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걸 모른 채 다른 옷들과 함께 세탁기를 돌린 것 입니다. 엉망이 된 옷가지에서 담배 피스들을 일일이 제거하고 다시 라운드리를 마치는 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젖은 상태에서는 담배 피스들을 제거할 수 없어 우선 dryer에 넣고 한 시간쯤 돌려 완전히 말리기부터 해야 했지요.
열이 머리 끝까지 뻗친 나는 카튼에 남은 담배 나머지 일곱 갑을 들고 다운타운으로 차를 몰고 나가 길거리에 있는 어느 홈리스(노숙자) 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내 돈으로 담배를 사지 않겠다고. 그 날부터 지금까지 6 년 이상 담배를 입에 대 본 적이 없습니다. 끊은 것 맞지요?
그렇게 갑자기 끊었는데 별다른 금단현상은 없었느냐고요? 왜 없었겠습니까?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몇 주일 동안 고생 좀 했지요. 저는 이 고통을 출산의 고통에 비유한 적도 있는데, 언젠가 와이프에게 욕을 먹고 난 뒤론 그런 비유를 겉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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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 2010-02-10 00:4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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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계획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담배를 피워 본 경험이 없어서
담배를 피울 때 쾌감이나 끊을 때 금단증상을 모르지만
담배가 건강에 안좋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대학 다닐 때
교수님이 설계를 할 때 먹줄 한 줄 긋고 마를 때 까지
담배연기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피울 줄 모르는 사람은 설계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부모님 때문에 감히 담배를 피울 생각을 못했지만
그것이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큰 유산이라고 생각 합니다.
이번엔 금연 성공하실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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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38600
| 2010-02-10 00:5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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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출산의 고통은 알길이 없으나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라고 언젠가 들은 적이 있읍니다.
출산의 고통을 비유할 정도로 얼마나 열이 나셨는지 상상이 됩니다.
저는 금연결심의 각오로 일부러 담배를 사서 담배개피를 일일이 끊어 길가 쓰레기통에 넣었던 적도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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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냥 추억이 돼 버린 Clipboard 님의 담배 역사
첫 담배: 은하수 (영자의 전성시대의 염복순이 피우던 파란 갑) 이제 생각해 보니 첫 담배는 1976 년이네…… 우와~ (이 때는 진짜 호기심, 그냥 뻐끔이었음)
1978 년 거북선
1980 년 솔
군복무 중에는 하얀 갑의 신형 은하수 (재수없으면 한산도)
제대하고 나서 캐나다 이민 올 때 까지는 88라이트
1990 년 리자이나 어느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산 첫 캐나다 담배는 무엇인지 기억 안 나는데 종업원이 거스름돈을 잘 못 준 줄 알고 말다툼한 기억은 남 (10 불 냈는데 5 불 얼마를 거슬러 줬는데 나는 캐나다 담뱃값이 그렇게 비싼 줄 몰랐음)
아무튼 그 무렵부터 담배를 끊은 2003 년까지 Player’s Light 로 초지일관 (한국이나 미국 다녀올 때만 잠시 마일드 세븐 또는 말보로 라이트 임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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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oneer
| 2010-02-10 16: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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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적...
6살 위 형님이 당시에 일기장에 아버지가 일년동안 마시는 소주 값에다 담배값을 계산해서 적었던 것이 생각 납니다.
사실 아들의 일기장을 보는 것은 잘못 된 일인데....
어쨌든 아버지가 그것을 보시고 난리가 났었지요.
옛날에야 아이들이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지요.
당시에 중학생이던 형님은 왜 자기 일기장을 보시느냐고 대들고
아버지는 감히 아버지를 비난했다고 야단을 치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사춘기의 형님과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의 전쟁이 기억납니다.
사실 일방적으로 아들만 혼났지요.
그런데 끝까지 잘못했다는 대답은 듣지 못하셨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잘못 하신 거니까요.^^
어쨌든 형님과 저는 술과 담배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저만....
먹고 사는데 그리고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려면 필요하다(?)는 이유로 술은 마시게 되었지요. 직장 일로 한달 내내 거의 매일 마신 적도 있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일년에 한두번 마시니 건강에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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