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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나게 한 최악의 비행경험
작성자 clipboard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2673 작성일 2010-05-11 14:44 조회수 2041
* sarnia 는 clipboard 의 또다른 닉네임이랍니다^^. 귀찮아서 그대로 사용합니다. >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은 북미노선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LA 와 뉴욕 노선이 기피대상 제 1 호라고 하는군요. 이유는, 첫째 매번 만석이고, 둘째 거의 매번 VIP 나 CIP 가 탑승하고, 셋째 까다롭게 구는 잔소리꾼들과 승객들의 요구사항이 많고, 넷째 모든 노선이 최소한 10 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하는 장거리인데다가, 넷째 현지 물가가 비싸 쇼핑 등의 매리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북미노선 승객들이 말이 많다는 건 아마 사실일겁니다. (sarnia 님은 비교적 조용한 축에 속합니다. 참고로 sarnia 님은 화장실 근처 운동하는 곳에서 주로 배회하며 같은 승객들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승무원들에게는 거의 말을 걸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 북미노선 승객들이 더 말이 많아지는 구간이 한 곳 있는데, 비행기가 일본상공에 진입할 때쯤입니다. 인천을 출발해서 태평양을 건너가는 비행기는 이 구간을 비행할 때쯤 점심이든 저녁이든 첫 식사를 하게 되는데 꼭 한 두 차례 비빔밥 때문에 승무원들이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 하필 자기 앞에서 비빔밥이 떨어졌느냐”는 것 이지요. 그거 아세요? 국적기 승무원이 외국인 승객에게 식사주문을 받을 땐 비빔밥 소개를 아주 성의 없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 말 입니다. 그냥 vegetable on rice 라고 아주 조그맣게 말 합니다. 그대신 소고기 요리와 닭고기 요리를 소개할 때는 약간 목소리가 밝아지고 경쾌해 지지요. 처음에는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비빔밥을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나 했는데, 그보다는 한국인 탑승객들에게 돌아가기도 모자란 비빔밥말고 다른 거 드시라는 간절한 유도주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험한 노선에서 까다로운 손님들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한 승무원 나름대로의 생존기법인 셈이지요. sarnia 님이 눈치로 때려잡은 게 그렇다는 거지 아니면 그만이랍니다^^   다음은 터뷸런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sarnia 님의 경험담 한 가지. 북미노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다 보면 거의 한 두 차례 터뷸런스(난기류) 를 만나게 됩니다. 제 경험으로는 거의 예외 없이 첫 식사시간 직후에 비행기가 한 차례씩 롤러코스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이 시간에는 커피와 차를 따라주는 시간인데 비행기가 터뷸런스에 들어가면 당연히 이 서비스가 중지됩니다. 승무원들이 기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가벼운 난기류라도 뜨거운 물을 들고 다니는 행동이 금지되기 때문이랍니다.   대체로 10 분 정도 지나면 비행기가 난기류지역을 벗어나게 되는데,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자마자 또 비행기 안이 분주해 지기 시작합니다. 수 십 개의 승무원 호출등이 동시에 점등되기 때문인데, 빈 식판 치우고 커피 빨리 가져오라는 것이지요.       터뷸런스 이야기 나올 때마다 제가 잊지 못하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2008 년 10 월 24 일 18 시 20 분 인천 발 대한항공 071. 금요일이었던 이 날은 단 한 자리의 공석도 없는 만석이었습니다. 이륙 후 두 시간쯤 됐나. 일본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으로 진입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승객들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최악의 터뷸런스 경험입니다. 산소마스크가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뿐 이지 등급으로 따지면 ‘severe turbulence’ 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식판이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의 강한 요동과 진동이 계속됐고 두 세 차례의 급강하로 몸이 좌석에서 붕 뜰 지경이었습니다. 문제는 보통 10 분 이내에 끝나는 요동이 거의 30 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바람에 멀미하는 손님들도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입니다. 마침 그 때 객실사무장이 조종실과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 식사시간인데……” 기내가 소란스러워 자세히 듣지는 못 했지만 이 말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비행기 혹시 trainee 가 몰고 가는 거 아닐까?” 암튼 이 경험을 통해서 제가 깨달은 게 하나가 있는데, “죽을 수도 있다는 불길한 개연성 앞에서 무서운 마음만 드는 건 아니구나” 하는 것 입니다. 실제로 그 경황 중에도 제게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 두 가지는 좀 엉뚱한 것 이었습니다. 첫째, 앞에 있는 미역국이 식으면 맛이 없는데 하는 것 하고 둘째, 벌써 얼굴이 하얘져서 빌빌거리고 있는 옆자리 승객 (20 대 남자) 이 혹시 토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 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정말입니다) 그리고 약간 먼 걱정은 내가 죽으면 적지 않은 보험금이 나올텐데 그것이 제대로 전달될 사람들에게 전달될까 하는 것 이었구요.   그 날 제가 타고 간 비행기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보잉 747-400 이었습니다. ‘거대한 터뷸런스 앞에서는 에어버스 380 이든 보잉 737 이든 모든 비행기가 평등하다’ 2008 년 10 월 24 일 밤 북태평양 상공에서 sarnia 님은 밥 먹다 말고 이런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작은 비행기 타고 가시는 분 너무 불안해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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