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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에큐메니안에 기고했던 글이지만 일정 기간이 지난 후 필자인 제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매체 측의 양해를 얻었으므로 이 곳에 올립니다. 다른 곳에 먼저 올린 글은 아무래도 그 사실을 밝히는 게 좋을 것 같아 링크를 합니다.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8083
써 놓고 보니 저는 아무래도 대한민국 쪽으로 팔이 굽는 보수주의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은 매체 측 편집진이 정한 것 말고 원래 제가 지은 것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주권 없는 안보, 그 매국적 논리의 결말
연평도 포격전을 전후한 상황을 토대로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면밀하게 관찰해 보면 한 가지 어이없는 결론으로 귀착된다. 대한민국은 외부 공격에 대해 스스로 방어 할 능력이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이 자체방어능력의 결여는 무기의 성능과 같은 물리적인 측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군사력에 대한 자주적 운영능력의 결여와 같은 정신적 문제와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자주적 운영능력의 결여는 홀로 설 의사가 전혀 없는 집권세력과 군 지휘부를 포함한 대한민국 보수 상층부의 의존형 성격장애 (Dependent-Asthenic- Personality Disorder) 에서 야기된 문제라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마치 60 살이 되도록 부모의 방향지시와 도움 없이는 죄로도 못 가고 우로도 못 가는 절대의존의 정신적 무장해제상태와 다름없는 비극적인 모습이다. 이 결론은 역으로 전시작통권 환수를 대전제로 한 온전한 국군통수권 확립이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절대절명의 긴급과제임을 새삼스럽게 가르쳐 주고 있지만, 포격이라는 일개 사건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 다수의 비분강개 여론에 묻혀 아직까지는 별 반향을 일으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11.23 연평도 포격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패전이었다. 문제는 이 국지전에서 패한 사건 자체가 아니라 패전의 본질과 배경을 숨기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숨기고 싶었던 패전의 본질과 배경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들은 한국군이 전투의 주체가 아니었다는 사태의 표면적 진실뿐만 아니라, 북한과 미국간의 고강도 심리전에서 미국이 패배한 책임까지 스스로 뒤집어 썼다는 사실 자체를 결사적으로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에게 겁을 주거나 스스로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가 아니라 11.23 패전에서부터 12.21 분풀이 사격훈련에 이르는 사태의 전개과정 중 발생한 이런 문제들을 숨기느라 뻥을 치고 거짓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한국군은 한미연합사 체제를 벗어나서는 훈련이고 작전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철저하게 의타적이고 비자주적이다 못해 매국적이기까지 한 군대라는 사실 역시 새삼 드러났는데 이것이야말로 한국 정부가 숨기고자 했던 치부의 핵심이다.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뜻하지 않은 돌발사태로 인해 대한민국 군대는 국제무대에 뜻하지 않게 끌려 나와 그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셈이다.
만일 주한미군이 포격에 대한 반격을 제대로 수행해 북한군의 사격원점에 타격을 가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만일 그랬다면 대한민국은 자신의 치부를 살짝 숨기고 넘어갈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헌데 재수없게도 당시 주한미군은 느닷없이 발생한 북한군 포격의 의미를 판단하고 대처할만한 정보가 없었다. 미국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그들의 군사적 지시를 수행해야 하는 대한민국 국군통수계통이 덩달아 우왕좌왕했고 그 바람에 ‘주권의 비극’으로 상징되는 한국군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 것이다. 군사력이 열세였기 때문에 패전한 것이 아니라 주권이 없는 상황에서 주권이 있는 척 하려다가 외국군대의 패전책임을 대신 뒤집어 쓴 것이다.
주한미군이 정보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위의 요지는 이렇다. 연평도 포격 이틀 전인 지난해 11월 21일 미국 ABC 텔레비전방송 프로그램 ‘월드 뉴스(World News)’에 출연한 스탠퍼드 대학교 Robert Carlin 객원연구원이 고백이 있은 직후 백악관 과 국무부, 미국군 수뇌부, 그리고 중앙정보국은 하나같이 대혼란에 빠졌다. 알려진 대로 영변 핵 연구단지에 설치된 농축우라늄시설과 원심분리기들을 본 미국의 핵 전문가들 역시 경악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미국 정보기관을 비롯한 핵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 기술이 초보단계인 줄 알았지 이렇게 많은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틀 후 북한군은 대한민국 영토인 연평도 포진지를 향해 방사포와 해안포 사격을 단행했다. 우랴늄 농축시설 공개 이후에 그 동안 미국이 견지했던 대북정책의 전면적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격을 당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즉시 상황판단을 할 수 없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의 정보제공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직접 지시를 기다리며 네 시간 가까이를 낭비한 건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포격전 전후의 이런 사정들이 드러나면서 청와대와 한국 국방부가 사태직후 발표한 대응과정에 대한 설명은 과장되고 미화된 것임이 또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청와대와 합참은 북측의 포격이 개시된 직후 F15K 등 공군전력을 출동시켜 적 포병진지를 공대지마사일로 파괴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느라고 고민을 한 것처럼 말을 흘렸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합참의장에게는 공군전력을 전투에 사용하는데 필요한 작전지휘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정보운용자원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긴가민가하며 청와대와 국방부의 말을 믿었었다.
패전의 주역이 한국군이 아니라 주한미군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나면서 청와대와 합참의 발표가 명백한 거짓말이었음이 덩달아 확인됐다. 군으로부터 흘러나온 정보들 또한 애당초 한국군이 반격의 주역이 될 수 없었음을 재차 증명해 줬다. 당시 출격한 전투기들은 북측의 미그 23 에 대항할 공중전 장비만 장착하고 있었을 뿐 사격원점인 포병진지를 타격하는데 필요한 공대지 미사일체계 Standoff Land Attack Missile Expanded Response 슬램-이알 (SLAM-ER)는 아예 장착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로 드러난 것이다.
북한군의 전자전 능력으로 공대지미사일 체계가 무용지물이 됐을 것 이라는 일부 군사전문가들의 사전예측을 논할 것도 없이 그 전에 이미 대한민국은 보복타격의 선결조건인 공대지미사일에 대한 발사권한도 운용정보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두고보자’ 식이나마 정부의 향후 사태 재발시 보복타격약속을 믿고 비분강개한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린 상당수 국민들만 또 한 번 바보가 된 셈이다.
도대체 독립된 주권국가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지 전작권이 외국군 사령관에게 있다는 기술적 사실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한 나라의 군대를 뿌리로부터 망가뜨릴 수 있다는 교훈이 중요한 것이다.
한미동맹의 구조적 지휘계통으로서의 한미연합사체제와1950 년 7 월 12 일 대전협정으로부터 60 년에 이른 전시작전통제권의 부재는 대한민국 군 지휘부의 정신상태를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뜨려 놨다. 이 의존적 성격장애가 얼마나 치명적일 정도로 중증인가는 전시작전권 환수 결사 반대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박승춘 예비역 중장 (참여정부 시절 국방정보본부장으로 항명파동을 일으켰던 인물) 의 안보관에서 잘 드러난다.
박승춘 씨는 대한민국 안보의 5 대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첫째, 국민의 안보의식, 둘째, 국가보안법, 셋째, 국군, 넷째, 한미동맹, 다섯 째, 주한미군. 그는 미국 군사력과의 구조적 결합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특히 미 보병 제 2 사단의 휴전선 남방 분산배치야 말로 대한민국 국가안보요소의 양대 핵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즉 북한군이 남진하면 미군 2 사단 병력과의 교전이 불가피한데 미군이 해외에서 적과 교전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즉각 지원병력을 현지에 파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만이 아닌 주둔국의 군대까지 미군사령관이 지휘관으로서 통제하는 조건에서라면 그 지원가능병력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한미연합사와 미군사령관의 전시작전통제권 보유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한미연합사 체제에서 북한군과의 전면전이 발생하면 미국은 지상군 2 개 군단, 5 개 항공모함강습단, 32 개 전투비행단, 전투기 2500 대, 2 개 해병기동여단, 전차 1000 대, 아파치 헬기 280 대, 전투함정 160 척을 한반도에 파견할 수 있다.
그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외국군을 전투에 참여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외국군 사령관이 자국군까지 지휘해도 무방할 뿐 아니라 그 외국군 사령관이 전시교전권을 가지고 있어야 그 사령관의 조국인 미국으로부터 복잡한 의회동의 절차 없이 대규모 지원병력이 들어올 수 있으므로 한미연합사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외국군 사령관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엄청나게 확대될 수 있다. 교전권, 작전권, 전시계엄권, 전시외교영향력 행사, 확전권, 종전권등을 모두 자기의지에 따라, 또는 모국인 미국 정부의 의지에 따라 결정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주권이 통째로 외국의 의도와 이익에 따라 재단될 수 있는 것인데, 이 대한민국 예비역 장성의 안보철학에는 국가주권확립에 필요한 기본개념들의 당위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종놈근성에 근거한 매국적 안보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단 박승춘 씨 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기를 들었던 현역-예비역 장성들과 정치권의 보수인사들 거의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 상층부의 매국적 종놈근성은 미영귀축 (米英鬼畜) 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천황군대를 예찬한 태평양전쟁 당시 친일귀족의 시국관에 필적할만한 하다. 이들의 종놈근성은 언젠가 대한민국의 주권과 안보를 송두리째 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팔아 넘기고야 말 정신적 무장해제 그 자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 파국적 결말을 경고하는 전조가 지난 해 말 벌어진 연평도 포격전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11. 1.1 20;45 sarnia (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