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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8165 에 올린 글 <남한의 자주정권이 핵무장을 한다면……>에 진보진영에 속한 것으로 여겨지는 독자 한 분이 “깜짝 놀라셨다”면서 답글을 주셨습니다. 그 분이 깜짝 놀라신 이유는 제 글이 깜짝 놀랄 만큼 불후의 명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 매체 에큐메니안에 느닷없이 핵무장 주장을 늘어 놓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분의 반론과 질문에 역시 두 번에 걸쳐 답변과 재반론을 올렸는데 아무래도 ‘남한 핵무장’ 문제는 진보진영으로서는 생소하고도 중대한 문제라 여기에 소개합니다.
그 분은 ‘난세에 위태로워 진 규범과 가치를 보위할 수 있는 최상의 선은 균형을 유지하는데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과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고 멀리 보는 것을 넘어 근원적인 것까지 탐구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백 번 지당한 말씀이긴 하나 한반도 정세라는 현실 토대 안에서 평화와 보편적 정의를 담보할 수 있는 실천적 어젠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 근원적 가치라는 것과 빛좋은 개살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의견 있으면 부탁합니다.
아래는 그 분께 드린 마지막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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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답글을 포함한 토론내용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칼럼 본문이 에큐메니안에 게재되기 직전 '완전히 생각을 바꾸면서' 라는 제목의 글을 몇 군데 올린 적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서 보시다시피 ‘과도기’라는 용어가 여기 답글에서 갑자기 등장한 용어는 아닙니다. 대칭균형전략에 대한 제 새 의견을 피력하면서 그 전략의 주체가 될 남한 정부가 갖추어야 할 자격 요건으로서의 자주성과 정세에 따른 시기적 제한요건으로서의 과도기라는 용어를 집어 넣은 것 입니다. 칼럼 본문에서는 과도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최후 결론에 ‘멀리 보자’ 는 문장에 함축된 의미에 모든 의미가 녹아 있다고 보면 됩니다.
단, 과도기의 의미를 남북간의 군사적 비대칭이 해소되고 물리적 통일기반이 마련되는 시점이 오면 ‘한반도 비핵화’ 로 다시 회귀한다는 의미로 오해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저는 통일 이후에도 반동국제자본과 제국주의 군사력에 맞서 한반도 통일국가의 주권과 외교력을 보위하기 위해 핵을 비롯한 전략무기체계를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인류역사상 제국주의자들이 반전시위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전쟁을 중단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반전시위와 평화운동은 시민운동의 몫이고 고귀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만, 국가조직은 국가조직대로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기능해야 하는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국가조직이 적들의 침략의지를 변경시킬 수 있는 수단은 외교력과 아울러 그 외교력을 사실상 뒷받침하는 제어장치인 무력으로서의 군사력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은 무력을 강탈과 침략을 위한 폭력수단으로 사용하지만 평화주의자들이 정부를 담당하고 있는 ‘착하고 이쁜 나라’는 무력을 균형력 (power of balance, balance of power 와는 다른 개념) 을 이용해 폭력을 견제하는 ‘detour’ 개념으로만 사용합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는 근원적 정신이란 ‘핵무기’ 같은 거 하고는 상종해서는 안 되는 고상한 수도사 같은 존재가 아니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 안 에 두 발을 딛고 평화와 보편적 정의의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을 생산해 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파괴하고 폭력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물리적 비대칭과 불균형입니다. 균형이란 일종의 정돈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모든 개체가 자신을 포함한 주변 환경을 항상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즉 존재로서의 자연적-윤리적 의무를 수행하다 보니까 생긴 바람직한 결과입니다. 약간 똥밟은 소리를 섞어 말하면 열역학 제 2 의 법칙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생존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근원적 가치를 몸으로 실천한 결과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입니다.
북한의 uranium enrichment program 과 전략미사일 개발은 그들의 체제를 폭력으로 뒤집어 엎으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기도를 좌절시키고야 말았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옳고 그르다는 가치판단을 떠나 어쨌든 그들은 60 여 년 간에 걸친 기나 긴 세월을 지나면서 천신만고 끝에 스스로를 지켜 낸 것 입니다.
남한 자주정권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멀게는 향후 한반도 통일국가가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과 주권침해로부터 스스로를 보위하는 견제수단으로서 기능할 것 입니다. 둘째, 그럴 리야 없겠지만, 남북간의 비대칭을 하나씩 해소해 나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혹시 돌출될 지도 모르는 북한 내부의 좌편향 모험주의자들이나 기회주의자들의 발호를 견제하는 그야말로 ‘과도기적’ detour 기능을 수행할 것 입니다. 현재의 북한 지도부는 ‘착하고 이쁜 마음’이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른바 혁명 1 세대 가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월급 받고 일하는 전문관료들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좀 미덥지가 않아서요.
마지막으로 분단의 기원에 관한 님의 인식에는 오류가 없으며 저 역시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님이 제시한 통일 로드맵역시 흠 잡을 데 없는 것이고요.
다만 액자 속에 표구하여 책상 앞에 걸어놓고 날마다 쳐다보면서 마음에 새겨야 할 원칙들과 날마다 실천해야 할 어젠다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