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이 영화를 알려 줘서 보았습니다.
아프리카 수단 남부 지역의 톤즈라는 곳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다가 암으로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을 기린 다큐멘터리 film입니다. 이 분의 삶을 보면 조우 한다는 것 (encountering)의 기적을 보여 줍니다. 조우 한다는 것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뜻밖의 만남, 예기치 않은 만남입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의대생이었다가 사제가 되는 결단, 그리고 신학생 시절 수단의 톤즈로의 여행, 그리고 거기서 생을 보내기로 한 결단, 새롭게 친구가 된 그의 환자들 그리고 아이들, 이 모든 것도 뜻밖의 조우일 수 있습니다. 이 조우는 예기치 않은 새로운 삶을 만듭니다.
조우란 갈등을 빚는 것일 수 있고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수단은 내전, 기독교와 이슬람 갈등으로 가난과 기아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곳에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 작은 사랑의 불꽃을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47의 불꽃같은 인생을 새로운 이웃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섬겼습니다.
http://www.youtube.com/embed/s7fykD7hOfg
제가 수단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인류학자 에반스 프리챠드의 책 [The Nuer]라는 데서, 그리고 1971년 하바드의 Robert Gardner
가 찍은 흑백 다큐멘터리 film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링크는 preview:
http://www.youtube.com/embed/J0VBnrIkAtA ). 이것은 지리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film입니다. 그리고 몇 년전 캘거리에서 정치학을 하는 난민 출신의 Jacob이라는 수단 학생을 만났습니다. 위의 1960년 대 film을 같이 보면서 (저는 두번째), 거기에 나온 사람들이 자기들과 같은 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마치 아득한 옛날과 현대의 만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에 대한 [톤즈야, 울지마]라는 이 film을 보니 참 감동적이면서도 마음이 착잡하군요. 첫째는 수단이 종교 부족 분쟁으로 신음하고, 둘째는 이 신부님이 남기신 아름다운 유산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구나 하는 교차되는 마음 때문입니다.
암으로 마지막 생을 다할 때까지 톤즈를 걱정하는 이 신부님의 모습은 영화 이야기에서 표현된 사랑은 깊을 수록 아프다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짊어져야 할 숙명일진대, 사랑은 숙명이 아니라 늘 새롭게 부활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잊지 않음을 안고 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신부가 암을 선고 받고도 톤즈의 아이들을 위해 쓴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끝까지 톤즈를 잊지 않은 이 분의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랑은 실천하는것이고, 선교는 그 부산물임을 이 신부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 이 게시판엔 유튜브 동영상이 안되는데 댓글 달 때 생기는 링크 오류와 함께 수리를 해야 될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