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70" width="110" allowfullscreen="true" allowscriptaccess="always"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src="http://www.youtube.com/v/THwx-frF_EM?version=3:&autoplay=1&loop=1"></embed>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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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승신 후보가 총선을 불과 한 달 여 앞두고 갑자기 당적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당적을 바꾼 이유에 대해 왜 성의 있는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출사표를 던진 것인지가 궁금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일단 그런 질문을 접어 두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이 후보가 속한 보수당의 당원이자 이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 한 분이 이 게시판에 올린 경악할만한 내용의 정견이 담긴 포스팅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정치인을 존경한다” 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분이 ‘존경을 표할만하다’ 는 이승신 후보 역시 국익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정치인인가요?
이승신 후보가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국익이 최우선’ 이라는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 입니다. 9.11 직후 네오콘 극우 정치인이나 관료들 조차도 ‘애국’이라든가 ‘국가 공동체의 안보’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기는 했어도 ‘국익이 최우선이다’ 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공동체 최우선의 가치는 ‘국익’ 같은 뜬구름 잡는 개념이 아니라 구성원 개인 한 명 한 명의 생존권과 기본인권, 나아가 행복추구권이라는 것이 문명세계의 공통된 합의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보수 정치인들조차 '국익이 중요하다'는 말은 해도 '국익이 최우선적 가치'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착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칫 이런 말을 했다가 극우 망언록에 그 이름이 오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익을 최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도대체 누구를 먼저 떠 올릴 수 있을까요?
그런 정치인들을 꼽으라면 우선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30~40 년대 독일 나찌당을 이끈 아돌프 히틀러를 들 수 있을 것 입니다. 마침 오늘이 이 사람의 탄생기념일이군요.
현재 내년에 있을 프랑스 대선 여론조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장 마리 르팽 국민전선 당수도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이란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계급위계를 보존하는 기구로서의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그들은 국익을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가 희생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준 정치인들 입니다.
이런 정치철학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극우라고 부릅니다. 캐나다에서는 참 보기 드문데 빅토리아 출신 변호사 덕 크리스트 같은 작자가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자는 지난 2006 년 총선 당시 이승신 후보가 현재 소속해 있는 보수당 스톡웰 데이 연방 통상장관 (어제 새로 임명됐나요?) 에게 연대 지지의사를 표명했다가 거절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캐나다는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극우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있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국가 공동체라는 말 이지요.
이 후보는 이 후보의 지지자 한 분이 스스로를 중도우파라고 하면서 실수인지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고색창연한 가치관을 내세워 동포 게시판에 극우적인 표현이 담긴 글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 분은 또 “40 여 년 전 한국에서나 그 이후 캐나다에서나…… 빵을 크게 키우는 정책을 가진 정당에 투표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좀 다행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40 여 년 전이라면 최소한 1972 년 10 월 17 일 이전이니 유신 이전 시대에야 공화당에 투표했다고 한 들 흠이 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빵에 대해서는 빵 제조 전문가 팔봉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생각나는군요.
“이 세상에서 세 번째로 좋은 빵이 ‘배부른 빵 (큰 빵)’ 이고, 두 번째로 좋은 빵은 ‘재미있는 빵 (다양한 빵)’이며 가장 좋은 빵은 ‘행복한 빵’이다”
빵 만드는 놈 따로 있고 공짜로 얻어먹기를 기다리는 놈 따로 있는 게 아닌데 왜 분배정의 문제에 딴지를 거는 도구로 빵 비유가 등장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성장우선주의자라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교육 보건 저소득층 보호에 사용되는 예산을 가급적 삭감하는 만큼, 1 년에 수 천 만 불을 연봉과 인센티브로 챙겨가는 저 날강도 같은 금융회사 임원들과 천문학적인 액수의 주식배당금 돈다발을 삽으로 쓸어가는 불로소득자들에게도 무거운 세금을 징수해야 할 것 입니다.”
수 만 명의 호주머니에 돈을 쓸어 담아주기 위해 수 천 만 명이 생활고로 쩔쩔매거나 아예 기본 생황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아름다운 경쟁사회’로 각색시켜 준 추억의 ‘빵 이야기’
아직도 계속 하시는 것…… 둘 중 하나 아닌가요?
뭔가를 잘 모르거나 정직하지 않거나……
파모라마스 님께 정식으로 질문합니다.
님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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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정치인을 존경합니다. 만일 한국에 투표권이 있다고 가정하면 박근혜에 투표할지는 정말 망설여 지거던요. 그분은 국익보다는 선거 공약을 더 중시하는것 같거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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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선 이라는 말은 모든 가치에 선행한다는 개념입니다. 저는 이 세 문장의 글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이 떠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그 개념 기준이 몹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국익이란 걸 위해서는 약속도 내팽개칠 수 있고 진실을 덮는 공작정치도 합리화될 수 있겠구나......
제 질문은 아주 간단합니다. 설명을 요구하거나 시비를 걸기 위한 게 아니라 진의를 알고 싶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국익이 모든 가치에 선행하는 최우선적인 가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