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른 일로 바빴던 사이 많은 일들이 벌어졌군요. 어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하토야마 전 일본 민주당 정권 사이의 파국적 갈등국면에 관한 보도자료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양국간의 파국적 갈등국면 와중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 재조사는 신뢰할만한 조사기구에 의해 좀 더 큰 그림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advance voting day입니다. 가서 멋지게 한 표 행사하고 왔습니다. 전략투표를 할까 소신투표를 할까 한동안 고민하다가 소신투표 했습니다. 언젠가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선거란 어떤 인물을 뽑아주기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철학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선거구에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야 후보들의 면면을 검토했지요. 그래도 후보들의 이름이 무언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철새나 배신자 관상은 아닌지, 도둑놈이나 사기꾼 경력은 없는지 뭐 이런 것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요. 본론입니다. 2008 년 11 월 24 일 이명박 대통령이 LA 동포간담회에서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주식을 팔 때가 아니라 살 때’ 라며 ‘지금 주식사면 1 년 안에 부자 된다’는 소리를 한 것 입니다. 그 시기가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한지 두 달이 지난 금융공황 진입초반이었는데 대한민국이 직격탄을 맞아 증권과 부동산 시장이 붕괴위기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였습니다. 이 대통령의 이 발언은 사실 미주동포들이 고국의 증권과 부동산에 좀 투자해 달라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발언을 가리켜 동서고금에 유래를 찾기 어려운 황당한 ‘대통령 발언사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인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란 제로섬 게임 속성이 있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 쪽의 이익이란 반드시 다른 한 쪽의 손해를 담보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대상인지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표를 할 일은 아니라는 것 인데요. 유리한 투자대상이나 종목을 찾는 노력은 차라리 자기 혼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게 정상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유가상승이 앞으로의 대세’라는 분석을 석유자본에 의해 고용된 경제전망분석가들이 내 놓게 되면 크고 작은 투자자들이 몰리게 될 것이고 유가는 정상적인 시장교환가치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대한민국 같은 비산유국의 저소득층의 생존을 압박하게 될 것 입니다. 석유시장뿐 아니라 국제곡물시장역시 공정한 시장논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런 투기자본의 자본운동에 의해 가격이 폭등해서 곡물자본 투자자들에게 돈 보따리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헌데 곡물시장의 경우 그 반대쪽에서 발생하는 결과는 석유시장의 그것보다 훨씬 끔찍해서 저 밑바닥 기아선상에 있던 수 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앉은 자리에서 굶어 죽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자본주의의 비극적인 면 아닐까요?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윤리적 장점을 설명하기 위한 교보재로서라면 함부로 투자이론을 도입할 일이 아닙니다. 차라리 간단히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이 세상은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존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세상의 환경 역시 최고의 선을 이루면서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뿐 아니라 자연의 기본적인 법칙이지요. 이거 부정하는 사람 별로 없을 겁니다. 복지제도의 철학적 핵심은 이런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그 기본적인 법칙이 경쟁외적 강제에 의해 왜곡되거나 독점되어 부당한 희생자들이 나오는 것을 방지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기능하도록 적절한 제도적 개입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은 그 역할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고 교회나 자선단체의 몫이라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고요. 같은 하늘아래 살면서 부의 독과점 현상 때문에, 또는 주변의 이기적 무관심 때문에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동료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제기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의 윤리적 책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의 기본 양심 같은 것이고요. 또 정 그럴 양심조차 작동하지 않을 경우, 보험 든다고 생각하면 속이 편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짐승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잔혹한 수레바퀴에 치인 희생자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사회는 엄청난 액수의 질서유지비용을 부담하다가 결국 폭동과 혁명으로 뒤집어 질 수 밖에 없는데, 내가 중산층 또는 그 이상의 신분으로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회가 전복되면 큰일 아닐까요? 복지란 ‘고매한’ 사회과학적 철학이 담겨있는 제도이기도 하지만 그거 이해하기가 복잡하고 어려우면 그냥 보험 든다 이렇게 생각해도 된답니다^^ 게시판이라 말을 너무 압축하는 바람에 너무 개념적인 문장이 되어 버렸는데, 이만 줄입니다. 참, 이글의 범위는 아니지만 지난 2008 년 광우병 사태 당시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광우병은 정치적 질병’이라는 답변을 하셨는데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사태의 본질은 광우병 자체에 있었다기 보다는 검역주권에 관한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