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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모라마스님의 민족혼과 한민족에 대한 견해 |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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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3991 |
작성일 2011-04-28 10:45 |
조회수 1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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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옛날에 제가 pioneer님께 원래 드린 글인데, 좀 거친 단어 빼고 그대로 퍼왔습니다. 민족주의의 문제에 대해서 적은 글인데, 몇 년이 지나서 봐도 제 생각에 별로 차이가 안나서 리싸이클링 합니다. 최근에 저의 민족주의 이론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앤드슨의 상상된 공동체에서 좀 더 정치한 “초민족주의” (transnationalism) 개념에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민자들이 한국 민족혼이나 한민족 등등에 대한 강조는 초민족주의 이론 또는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래 글이 파모라마스님을 염두해 두고 쓴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파모님의 민족주의에 대해서 제 나름의 “비평”을 하려고 했었는데 파이어니어 님 글들 리뷰하면서, 이 글을 새삼스럽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클립보드님께서 소개하신 Won Tai Sohn의 [Kim Il Sung and Korea's Struggle: An Unconventional Firsthand History]를 다시 상기받아 이제야 이 책도 주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아프리카 올림
우리가 국가 (nation)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서구의 근대성의 영향입니다. 그 이 전에는 서구에서도 국가 개념이 희박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 국가는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민족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만 해도 한참 소중화론에 빠져서, 이미 망한 명나라를 이상화된 공동체 (imagined community)로 구성한 골빈 성리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일제의 강점을 경험하고, 청일 전쟁, 러일전쟁 보면서 눈이 번쩍 뜬 소수가 있었을 뿐입니다.
거기에다가 국가 (state)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삼국시대도 있었고, 땅이 절반밖에 안된 고려시대도 있었고, 조선에 이르러야 현재의 지도에 구색을 갖추었고, 실은 청과 조선의 국경이 그렇게 선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대표적 예가 간도 지역 아닙니까? 그래서 정부의 행정이 실천되는 국가 (state)와 좀더 광의의 추상적인 개념인 국가 (nation)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갖는 민족주의 (nationalism; 국가주의로 번역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저는 정치학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민족주의란 개념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가 현실 국가와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유대인처럼 수 천년 동안 국가가 없다가 시온주의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을 세운 그런 상상된 국가도 있질 않습니까?
그러므로 도대체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역사적인 존재라 한국사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를 회군했거나 신유학의 정치이념을 가진 정도전과 그의 일파가 조선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을 부인해도 그것은 이미 역사적 과거가 되었고, 박정희같이 친일의 첨병을 걷던 이가 다시 뽈갱이 짓하다가, 또 다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파시스트 또는 전체주의적 국가를 만들어 온통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인권유린을 일삼은 이 쿠데타 정부의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다시 평가할 이유가 많은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 이후 민주화의 여력에 찬물을 끼얹고 나타난 전두환이라는 자는 할 술 더 떠서 민주 인사를 감옥에 처넣고 광주에 탱크를 몰고 가게 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총칼로 죽였습니다. 이 과거는 단순히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묻혀진 사실을 계속 밝히고 다시 해석해야 할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며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은 무엇일가요?
애국이란 우리가 어떤 준칙을 갖고 이해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애국심에 대한 정의는 그런 애국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참여와 활동에 의해서 달리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만일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정부의 선전에 따라 그냥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해괴망측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인사들을 매국으로 몰아넣은 프로파갠다가 바로 그런 짓이죠. 또 예를 들면, 재작년 불타 올랐던 촛불시위를 통해서 불도우저로 몰아부치는 (일명 삽질하기) 이명박 정부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애국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가 개인의 인권과 존엄을 함부로 유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정부는 이미 정부의 자격이 없으니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애국이 아니겠습니까? 돈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돈만으로 국격을 살 수는 없지요.
이념도 영원하질 않습니다. 한때 “중공”이라는 중국은 남한과 가장 중요한 경제적 교역국이 되었으며, “북괴”는 “북한”이나 “북조선”이 되었으며, 월남이 패망해서 이 나라는 영원히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남한과의 교류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른바 한류의 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공산주의 수괴로 알고 있는 베트남의 민족해방의 영웅 호치민 선생은 지금도 13세기의 베트남 민족의 영웅인 Tran Hung Dao와 더불어 베트남인의 가슴에 깊이 살아 부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빛나는 투쟁사의 베트남이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고, 한 때 장개석 정부를 몰아낸 중공은 곧 미국 경제 규모를 넘어선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2천년-2천 5백년의 유대인의 흩어짐 (diaspora)이 유대인의 종말은 아니었습니다.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여러 왕조의 합종연횡 이었던 유럽은 민족주의의 등장으로 갈갈이 나눠졌다가 다시 EC로 연합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이제 돈만 아는 나라가 아니라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며, 약한자와 가난한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가난한 나라를 돕는 그런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졸부국가가 되며, 국격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한쪽에서는 미디어법이나 만들어 언론제벌 힘이나 실어주고, 삼성처럼 힘있고 빽줄쎄고 돈많다고 금방 풀어주는 그런 나라를 원치 않습니다.
게다가 이민자 2-3세가 되면 이미 그들은 이민자 1세대가 경험하는 그런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전혀 갖고 있질 않습니다. Korean-Canadians가 한국이라는 nation-state를 사랑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래야 하나요? 삼성 제품 쓴다고 자랑스러워 하기보다는 한국이 인권을 존중하며,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며, 또 바른 정의를 실천하는 그런 나라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국격이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돈많이 벌었다고 으시대지 말고 남의 아픔을 돌아보고 돌아볼 줄 아는 교양있는 국민이 다수가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약자나 강자나, 돈많은 이나 없는 이가 서로 포옹할 수 있는 사랑과 정의가 포옹하는 그런 날을 꿈꾸는 (until justice and love embrace), 즉 바른 인간성이 구현되는 날을 기다리며…
아프리카 올림
* 보론:
민족과 민족주의의 정의 (definition)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요즘은 광의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이 대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 분들이 모국을 사랑하자는 것은 매우 좁은 의미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언어가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유대인들만 해도, 이스라엘 탄생 전에는 히브리어를 많이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살았으니까요. 지금도 유대인 중에 히브리어 못하는 사람들 많구요. 유대 회당 가봐도 토라와 기도집은 영어와 히브리어를 함께 실은 책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사용하자고 최초로 제안한 사람은 Eliezer Ben Yahuda (1858-1912)라는 사람인데 그에 대한 일대기는 [Tongue of the Prophets]에 소상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2천년간 유대인의 동질성을 유지시킨 것은 히브리어가 아니라 모세 5경으로 불려지는 토라와 구전으로 내려온 토라=>미쉬나=>게마라=>탈무드로 발전된는 유대인들의 경험의 전승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 한편, 캐나다와 미국은 같은 영어를 쓰지만, 서로간의 민족주의적 공유 (imagined community)가 별로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가 영어가 제 1언어를 이루지만, 이민자들이 모인 다문화 사회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국적은 미국인 캐나다인이라도 자기 조상들의 국가를 진짜 국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언어가 민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Nationalism에 대해서는 Anthony D. Smith라는 분이 가장 광범위하게 연구했구요. 이 분의 책 중에 이론적으로 천착한 것은 [Nationalism and Modernism]입니다. 이 분이 John Hutchinson과 함께 편집한 자료집인 [Nationalism]도 좋구요. 제가 언급한 imagined community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Benedict Anderson의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라는 책이 중요합니다. 앤더슨은 서구에서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갈 수 있어서 일반 대중에게까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했다고 봅니다. 또한 라틴어가 종교예식언어로서 그리고 엘리트 언어로서 주류 (독점)를 이룬 상황에서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자국 의식 등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루터가 성서를 자국어인 독일어로 옮긴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많은 나라에서 성서를 자국으로 번역하였는데, 이 또한 민족주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되지요. 언어의 힘이 얼마나 무서우냐 하면, 서로 한번도 만나본 사람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슬람의 아랍어로된 코란 (꾸란)은 서로가 이념을 공유하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죠. 아랍어는 아랍의 종교 민족주의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슬람의 코란 정책은 코란의 지역언어에로의 “번역불가능성” (nontranlatability)입니다. 즉 공식적인 종교 예식에 아랍어로 되지 않은 코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종교 의식이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된 코란을 연구 차원에서는 사용 가능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프리카계 미국학자인 Lamin Sannegh (르민 싸네)의 [Translating the Message]의 책 제 7장을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는 영어로 된 코란은 이슬람에서 인정하는 공식 텍스트가 아니라 비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죠. 이런 정책은 이슬람 확산 당시 가장 많이 엘리트 또는 지식인들을 보유하고 찬란한 문명을 발전시킨 이란지역의 페르시아 문명이 아랍문명에 굴종하게 된 주요한 변수가 되었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이란 사람은 아직도 자기들은 아랍인이 아닌 Persians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지정학적으로 한정된 나라 (state)보다 생각과 이념이 공유된 공동체, 즉 상상된 공동체 (imagined community)로서의 나라 (nation)가 더 포괄적 개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기독교 성서 번역과 한글 장려는 새로운 한국적 민족주의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겨레 신문이 순한글 신문으로 창간했을 때 조센일보가 비웃었는데, 요즘 인터넷의 거의 100% 한글로 기사가 나오잖아요? 한국의 공식언어가 한자 사용에서 한글사용으로 옮긴 것은 우리가 중국의 한자 문명으로부터의 의식적 단절을 의미함과 동시에 새로운 민족주의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북조선에서 순한글 전용으로 사용한 것도 바로 북조선이 새로운 민족주의의 한 형태를 보여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조선의 주체사상과 한글은 깊이 연괄된 것이며, 북조선이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매우 민족주의적이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서구어로 물든 남한 사람들이 순한글을 배우는데 북조선인민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단절과 조우의 상호관계는 우리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인도하죠. 북조선의 문화는 싸그리 깡그리 없애는 꿈을 꾸는 문화적 파시스트가 남한에 나올 수 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번에는 쪼까가 아니라 크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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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의 깊이 있는 글 감사히 읽었고 많이 배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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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4-28 13:3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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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민자들의 고국과의 애국심 또는 국가애는 좀 전문 용어긴 하지만 transnationalism의 측면에서 보면 더 쉽게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연구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에 와서 미국의 이민 2-3세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제법되고 있습니다. 주로 사회학, 정치학, cultural strudies, Asian-American literature를 하는 사람들이 이 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특히 이 분야에 2-3세들이 많이 연구들 하는데, 한국에 갈 필요없이 미국권내에서 한인들이나 아시아인들을 연구할 수 있는 근접 용이성 때문인 것같습니다. 파모님의 민족주의도 초민족주의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으리라 제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파모님과 대화하면서 제가 흥분을 많이 했었는데, 자기 주장보다는 어떤 사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이 번에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당 멤버쉽에 관련된 글 퍼오신 것보고 캐나다 정당사에 대해서 좀 읽었는데 흥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선거 끝나고 제 생각을 약간 덧붙이고 싶군요.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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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4-28 19:4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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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민지에서 소수민족에 관심있는 분을 위해서 소수민족과 transnationalism에 대한 개략적 소개는 Pyong Gap Min and Jung Ha Kim이 편집한 [Religions in Asian America: Buidling Faith Communities] (Walnut Creek: Altamira, 2002)가 있습니다. 이 책의 27-29면에 개략적으로 문헌과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파모라마스님께서 저의 고등학교 대선배님이시다는 것을 오늘 이메일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과는 다르지만 대학원 선배님이시기도 하구요. 그동안 좀 격렬한 논쟁을 벌였는데 겸언쩍기도 하구요. 세상 좁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게시판이 서로를 연결하는 좋은 역할도 하는군요. 이번 논쟁을 통해서 제가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고등학교 대선배님을 만나는 인연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54회이고 파모님은 28회이시니,,,저의 논조가 바뀌지는 않겠지만…참, 반갑군요. 여기 게시판에 ~향우회, 동창회, ~~지회, 이런 모임 등등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개인적으로 알게 되니 묘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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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후배를 만나 굉장히 끼쁘고요, 집도 자동차로 5-10분 거리에 아주 가까운곳에 사시네요.
살아온 환경등을 보면 아프리카님이 보수당으로, 저가 NDP 로가 더 어울릴것 같은데 현실은 꺼꾸로네요.
Debate는 단지 글로서만 하는것이니 모든것 다 버리고 글로서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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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4-29 00:2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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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대 선배님(이번 한번만 사용하겠습니다)이심을 알고 고등학생 때 생각이 나서 잠시 동안 흥분되고 감격했었습니다. 일전에 한국의 분단 상황 때문에 문화담론보다는 여전히 우리에겐 정치담론이 주를 이룬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도 이 상황은 지속될 듯합니다. 그래도 앞으로 문화담론도 많이 나오면 좋겠군요. 정치와 사회는 분리되지 않지만요.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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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11-04-29 08:5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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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ate는 단지 글로서만 하는것이니 모든것 다 버리고 글로서만 합시다.\"
cool 하신 파모라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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