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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이 논 것같아서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4267 작성일 2011-07-07 18:54 조회수 2132
하루새 댓글을 많이 단 것같은데, 제 시평 하나 올리고 물러갈까 합니다. 원래는 알버타 저널 신문에 실었던 것입니다 저는 캘거리의 시인님들 중에 김소월의 음악적 시적 전통을 가장 잘 잇는 분은 여러분이 계시겠지만 운계 박충선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늦게 시작을 했으면서도 소월적 전통을 잇는 것은 그만큼 운계님의 시적 언어의 다스림이 정제되어 있다는 뜻이겠죠.  제 나름대로 쓴 간결체 시평입니다. 별거 아니지만, 간결체 글쓰기는 철학자 키엘케골의 번역자 임춘갑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저는 키엘케골의 문장이 짧은 줄 알았는데, 원문은 확인 안해봤지만 영문은 상당히 길더군요. 운계(雲溪)박충선의 시집 [빈 지게에 향기를 지고]를 읽고 -내사랑아프리카 untitled1_copy8.jpg 삶은 베를 짜는 것과 같다. 어떤이는 삶의 한 매듭도 맺지 못하고, 어떤이는 한 폭의 주단을 짜기도 한다. 캐나다 알버타의 시인 운계(雲溪)박충선은 영원히 잃어버릴 수 있는 삶의 한올 한올을 언어로 엮어 한권의 시집으로 내 놓았다. 시란 직관을 통하여 아침 안개처럼 스러질 삶의 순간을 담아야 하는 것이기에 그의 시들은 외롭고, 아프고, 처연하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감동을 준다. 그의 시에는 그가 경험한 다양한 삶의 모습이 겹겹이 겹쳐져 있다. 이런 삶의 중첩성이 그의 시가 단선적이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만드는 동력이 되게 한다. 우리가 그의 삶의 연대기적 과정을 다 안다면, 그의 시적 세계를 하나의 질그릇에 다 담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오직 시 자체를 통해서 우리는 그의 시적 세계로 들어가 언어가 주는 향기를 느껴야 한다. 그의 시집 [빈 지게에 향기를 지고]는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꽃 그리고 눈과 바람,” “빈지게,” “카르비안 해변,” “영원한 고향,” 그리고 “겨울산.” 1. 비움 다양한 시적 형상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비움” (emptiness)을 지향한다. 어쩌면 삶이 주는 현실적 요청, 그리고 중압감이 시적 언어를 압도할 수 있을 터인데, 그는 이러한 무게를 계속해서 비워내므로써 매너리즘을 극복한다. 소리없이 뛰쳐 나온 꽃몽오리/ 춘설이 내려 앉아/ 여린가지 휘어지게 하누나…쌓인 눈에 부풀어 보지 못하고 시드는 꽃잎/그래도 눈과 바람 앞에 은은한 꽃향기 (“꽃 그리고 눈과 바람” 중에서) 이러한 그의 비움의 관조는 완전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다. 청송의 바늘 끝 잎마다/ 머뭇머뭇/ 청정심/ 푸르름과 어우러져/ 노래 부르다/ 부서져 내리는 소리없이/ 짧은 시간을 떨어져/ 흙바닥에 깨어지고는/ 흔적도 남김없이/ 땅속깊은 어둠으로/ 스며들면 어떠랴 (“꽃 잎위에 번지는 눈망울은”에서) 이런 자기 부정이야 말로 진정한 비움인데, 이것은 삶의 여정과 이로 인한 연륜에 의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끝자락은/ 빈 지게/ 지게꼬리 꼭 잡고/ 바람불어 날아갈 검불지고 넘은 삶의 여정 (“빈 지게” 중에서) 2. 여백 자기 비움은 삶의 여백을 남긴다. 여백은 타자를 수용하는 능력이며 과정이다. 여백없이 타자의 음성을 들을 수 없으며, 여백없이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기독교인이면서도 어느 스님이 그에게 지어준 호 “운계”를 소중히 간직하듯 그는 그만큼 자유롭고, 그의 시에는 항상 자기보다 타자 그리고 타인이 넉넉히 자리잡는다. 헤어져 그리움 뿐인/ 님의 초상/ 가슴속을 저려오니 (“산사 (山寺)에서” 중에서) 여백을 남길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새롭게 그려 낼 수 있으며, 그리움의 날개를 달아 그 님에게 날아 갈 수 있다. 사랑으로/ 그리움으로…못이룬 한 (恨)/ 낙옆 새에/ 묻고 가련다 (“추사 (秋思)” 중에서) 지닐 수 있는 무엇이든/ 무욕의 강으로/ 흘려보내고/ 무 소유의 백기/ 상수내기에 펄럭이며/ 자유하는 겨울나무 (“겨울나무” 중에서). 3. 떠남 삶의 여백은 떠남이다. 떠나지 않고서는 과거를 돌아볼 수 없고, 현재를 느끼지 못하며, 미래를 경험하지 못한다. 운계의 삶의 전환점은 바로 이민자로서의 삶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지천명의 나이에 모든 것을 털고 이국만리로 떠나 온 삶의 전환점은 어떻했을까? 그것은 모든 것의 상실임과 동시에 새로운 얻음이다. 이러한 이민의 삶에서 그의 시는 진정으로 실존적 무게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 나타나는 모든 회상은 이민자로서의 타지에 사는 삶의 배경이 늘 겹칠(overlap)수 밖에 없다. 떠내려 간다/ 흐르는 냇물에/ 몸을 맡긴 가랑잎 하나/ 기약없는 유랑의 길/ 서럽기만 하련만 (“가을 애가 (哀歌)” 중에서) 시는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바로 삶을 사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는 시를 살(live by) 수 있을 때 진실한 것이다. 시라는 것은 “진실”의 동의어다. 바다에 몸을 담그기 전에는 진실은 경험되지 않는다. 이것이 삶이다. 삶은 떠남이며, 방랑이며, 아픔을 품는 것이다. 허공을 딛고 섰는/ 양 다리 사이로/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빈그림자 드리울 뿐 (“황혼 들녘” 중에서) 4. 돌아옴 떠남은 모든 인간이 지고 가야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나그네로 떠나고자 하는 열망, 이것은 초월에의 희구다. 초월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처절함이다. 그리고 홀로있슴의영원함. 창은 열려 있어도/ 바람은 없어라/ 무리는 떼 지어도/ 대화없어라/ 이국땅 회색 하늘/ 홀로 걷는 그림자 (“고 (孤)” 중에서) 외로움은 늘 새로운 만남을 표상한다. 빔, 여백, 떠남, 초월의 어우름은 새로운 만남을 예상한다. 이 만남은 기억의 연쇄(chain of memory)로서 오기도 하고, 존재에로(to be)의 부름으로 오기도 하고, 때론 우연히 우리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기도 하다. 잊으려/ 몸부림으로/ 깃을 털어도/ 잊어지기는 커녕/ 그리움/ 눈꽃으로 쏟아져 내리고 (“잊으려 해도” 중에서) 결국 삶에서 떠남은 다시 돌아옴이다. 그 귀착지가 어디가 되었건 떠나는 이는 쉬어야 한다. 그것이 그리움이든 회상이든 우리의 마지막 귀착지는 돌아옴의 은유로 끝을 맺는다. 흘러가는 세월의 강에/ 버렸더니만/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안고/ 회귀하는 연어되어/ 그리움의 지느러미 /피를 흘리며/ 고인 눈물/ 가르고 있네 (“회귀 (回歸)” 중에서) 시가 아닌 후기 (後記) 시가 70여편이 넘는 시집을 이렇게 짧은 글에 다 담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계의 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그는 떠나온 고향과 어머니와 산사 (山寺)를 그리워하고, 이민자로서 외로워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구도에 몸부림치며, 인간으로서 너무나 인간적이라 가슴앓이를 한다. 그의 시는 늘 비움을 지향하면서도 삶의 피가 뚝뚝 흐르는 장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그의 시 한편 한편에는 여러 음성이 들어 있다. 독자들은 삶의 중첩성이 배어 있는 그의 시를 통해서 삶의 진실의 깊은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시 “공(空)허(虛)무(無)”를 통해서 우리가 절절히 느끼듯, 그의 시 곳곳에 삶의 구도자의 탄식을 듣는다: “그렇고 말고/ 허로(虛老)에/ 마음이라도/ 비울 수 있다면/ 오죽이랴!”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같다. 시인 자신을 째찍질하듯, 시인 스스로 만든 자기 시에 대한 자기 성찰과 그 비평적 거리는 바로 “비움”에 있을 것이라고…. <참고> 박충선 시집 [빈 지게에 향기를 지고], 서울: 온북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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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1-07-07 20:3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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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는 게 없어서 뭐든지 잘 하는 사람 보면 부러운데, 특히 시인들 참 부러운 사람들입니다. 詩語 한 단어 한 단어가 어찌 그리 사람 마음을 후벼 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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