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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 동기들은 월남 참전에 막차를 탔다. 완전 막차는 아니지만 거의 막차였다. 73년에 철수 했으니까. 나도 월남 파병 지원하려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월남 파병 지원하려는 걸 알고 과장에게 불려가 허벌나게 쪼인트 맞고 나왔다.
“야 미친 새끼야, 월남은 뭐 빨러 가려는 거야?” 과장은 대대장에게 저 새끼 절대 못 보낸다고 방방 뛰고 나왔다. 사실 나는 군대생활을 완전 날날이로 했는데 우리 과장은 나를 유능한 병사로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월남은 지원하려는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 째, 부산에서 월남까지 배 타고 간다는 게 그 때 아니면 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M-16을 실컷 원 없이 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개인화기가 칼빈이었는데 구닥다리 칼빈 만지다 어쩌다 M-16을 쏘아 보았더니 “아, 세상에 이렇게 좋은 총이 있었구나” 싶었다. 내 경험으로 M-16에 비하면 칼빈은 총도 아니었다.
세 번째 이유는 몸 성히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만 된다면 전쟁에서 느끼는 낭만이란 체험해보기 어려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치열하게 맞부딪치며 교차하는 현장에서 느끼는 낭만, 월남 가도 왠지 몸 성히 살아 돌아올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은 것은 고등학교 때 T.V. 연속극에 나온 원로배우 김승호씨의 대사 때문이었다. “야 임마, 월남 간다고 다 죽는 줄 아냐?”
과장은 쪼인트 깐 게 미안한지 부대 앞 식당에 가서 밥 사주면서 월남은 왜 가려 하냐고 회유를 시작했다. 게다가 과장은 집에까지 연락을 해서는 집에서도 “월남은 가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해서 결국 월남의 꿈은 허무하게 깨졌다.
나는 월남을 못 갔다 왔지만 친구들이 귀국할 때 마중 나가본 적은 있다. 월남 병력들은 오음리에서 실전훈련을 하고 파병되는데 훈련 끝나면 춘천까지 나와서 열차를 탄다. 돌아 올 때는 부산에서 내려 환영식 마치고 기차로 올라 오는데 용산역이던가 서울역이던가 에서 몸 성히 살아 돌아온 동기들과 만났다. 그 때 기억이 나는데 동기들이 술 마시고 춤 추면서 김추자 노래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를 부르던 게 생각난다. 몸 성히 돌아왔는데 새까마면 어떻가?
월남전 하면 사람들은 월남특수를 생각한다. 미국으로 받은 10억불이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어 그 돈의 일부가 고속도로 만드는데 쓰이고 우리가 보리고개 넘는데 역할을 했으니 박정희의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결단력은 놀랍기만 하고 박정희는 보리고개를 해결한 유능한 지도자였다고.
10억불이 경제발전에 쓰여진 건 사실인데 남의 불행(전쟁)을 기화로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박정희가 월남에 파병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강요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파병하겠다고 한 것이다.
박정희가 케네디에게 자발적으로 월남전 지원을 한 것은 미국이 박정희의 과거전력을 문제 삼아 혹시 공산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신식민지적 지배를 받는 나라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는 미국의 눈도장을 받는 것이 정치적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 박정희 경우는 좌익전력까지 있어 미국의 눈도장이 더욱 절박하게 필요했다.
“미국이 너무 많은 부담을 혼자 지고 있어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게 자발적 파병의 변이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월남파병은 미국의 용병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인건비, 주둔비, 장비를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덤핑으로 받았다.
한국군 사단장 월급이 354불인데 태국군 소위가 389불, 필리핀군 소위가 442불 받았다. 더구나 한국군은 전투부대가 참전했는데 태국이나 필리핀, 호주 등은 지원부대 위주로 참전했다. “정말 저렴하게 봉사 하셨습니다.”
한국군 한 명 일년 유지비가 5,000불, 미군 한 명 일년 유지비가 13,000불인데 차액이 8,000불이다. 한국군 파병이 연인원 30만명이니 그 돈이 24억불, 미국은 앉아서 24억 벌었다.
연 30만명이 파병되면서 전사 5,000명 부상 10,000명, 고엽제 피해자 20,000명이 생겼다. 월남 안 갔으면 죽지도 않고 부상도 안 당하고 고엽제가 뭔지도 모를 청년들이 그런 피해를 입었다.
그 당시 외무장관 이동원이 “이왕 참전하는 거 미국으로부터 받아낼 만큼 받아내자”고 했으나 박정희는 “미국이 우리 우방인데 너무 야박하게 하면 안 된다.”고 했으니 박정희는 한국 대통령인지 미국의 한국 주지사인지 모를 일이다.
파병자체의 정당성, 도덕성은 그만두더라도 외국에 파병을 하면 생명 보호와 정당한 처우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 책무인데 내나라 청년을 사지에 보내면서 핏값도 덤핑을 한 대통령이 제대로 된 유능한 대통령인가?
저렴하게 봉사하겠다는 박정희 제안에 미국은 흡족했고 그 후 3선 개헌, 유신헌법 개정 할 때 미국은 군소리 없이 승인했다. 전 주한 미국대사 포터는 프레이져 청문회에서 박동선이나 중앙정보부의 “의심스러운 한국인들의 행동”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것은 한국의 월남전 참전을 고려한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적당히 넘기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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