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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세부>의 비극적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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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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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4401 |
작성일 2011-08-07 13:42 |
조회수 1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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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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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sarnia 어린이는 <페르디난드 마젤란>을 훌륭한 탐험가인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대단한 모험심을 가진 탐험가였는지 몰라도,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죽음을 부르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작자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스페인의 필리핀 점령과 식민통치는 1565 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521 년 마젤란이 세부(Cebu)섬에 도착한지 44 년 만의 일입니다. 그 시대 스페인은 불패무적의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유럽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마젤란은 원래 포르투갈인이었다가 스페인인이 된 사람입니다.
만일 제가 당시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 세였다면 이 절세의 항해전문가에게 후추가루나 구해 오라고 시키기 위해 그 많은 돈을 지원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를 왕실 밀실로 불러들여 회유 겸 설득을 하지 않았을까요? 새로 스페인 국민이 된 기념으로 아시아로 가는 새 항로 (The Spice Route)를 찾아내서 국왕과 교회에 충성을 보이라고 말이지요.
어쨌든 그는 스페인 국왕의 명령과 지원에 따라 자의반 타의반 식민지 개척의 새 항로를 발굴하기 위한 탐험항해에 나섭니다. 이 탐험항해에는 5 개 범선에 분승한 270 명의 선원이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출신도 다양해서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은 물론이고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 이태리인 그리스인 벨기에인 (Flemish) 등 유럽 전체를 망라하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탐험가 뒤에는 염불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새로운 점령지에서 얻게 될 약탈 전리품이나 노리는 날강도 같은 자들이 개떼처럼 따라붙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마젤란을 따라 나선 선원들 상당수가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 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언제든지 탐험대에서 해적떼로 돌변할 수 있는 소지가 농후한 집단이었습니다.
탐험가와 선교사, 잡다한 해적패거리들이 뒤섞인 이 다국적 다문화 혼성부대 범선 다섯 척은 스페인 국왕깃발을 펄럭이며 스페인 Seville 항을 출발했습니다.
이들은 스페인을 출발하여 대서양을 건넌 뒤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을 돌아 북서쪽으로 항로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대담무쌍하게도 태평양을 대각선으로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젤란이 이 항로를 선택한 것은 1492 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서인도제도가 아시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젤란은 이미 대서양의 거친 바다에서 범선 두 척을 풍랑에 잃은 채 세 척으로 줄어든 선단을 이끌고 무려 4 개월에 걸친 기나 긴 태평양 횡단 항해 끝에 필리핀 세부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세부섬에 도착할 무렵에는 마젤란 조차 예상치 못한 장기간 항해로 선원들 전부가 기아와 질병에 기진맥진해 있었습니다. 세부섬에 상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이미 탐험대의 기상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탐험대라기 보다는 상거지떼에 가까웠습니다.
다 죽어가는 거지꼴을 하고 섬에 내린 그들은 힘없는 목소리로 <여기가 스페인 국왕 폐하의 새 영토로다>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런 그들을 섬의 주민들은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나머지 그들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암튼 세부섬의 주민들은 이 기진맥진해 있는 <손님>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세부섬 주민들이 그들에게 베푼 따뜻한 보살핌이 세부섬과 필리핀 군도의 불행을 넘어 전 아시아의 비극으로 확대된 채 은혜가 원수가 되어 돌아오리라고는 누구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유럽에서 온 침략자 선발대가 상륙한 아시아의 첫 도착지, 이 세부섬이 오늘날 세계적인 휴양지가 된 그 세부섬입니다.
이 날 세부섬에서 일어난 사건이 향후 무려 400 년에 걸친 유럽의 아시아 약탈무역과 식민지 점령을 알리는 비극의 신호탄이 된 것 입니다.
스페인은 현지 주민들과의 상거래나 무역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1562 년 이후 필리핀에 파견된 스페인 관리들은 대부분 선교사 아니면 교회기구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이 필리핀 주민에게 강요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기독교- 스페인은 구교라고 부르는 로만카톨릭->로의 강제개종이었고, 또 하나는 과도한 공출, 즉 세금의 징수였습니다.
이들은 필리핀 주민들의 교육이나 생황개선 같은 것에는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무자비한 공출로 그들의 노동력과 생산물, 자원을 한도 끝도 없이 약탈해 갔습니다.
스페인에서 파견된 관리들은 필리핀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개종을 거부하면 무자비하게 학살했습니다. 필리핀의 정신적 리더들에게는 테러리즘을 동원해 그들의 영향력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세부섬에는 섬 중앙 동쪽 해안에 세부 시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부 시티 건너편에는 막탄이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이 섬과 세부 본 섬은 다리 두 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젤란은 세부섬 건너편에 있는 이 막탄섬 부족과 전투을 벌이던 중 독화살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막탄섬 부족은 난데없이 나타나서 섬을 점령하려고 하는 그들과 맞서 싸워 결국 그들의 리더인 마젤란을 사살한 것 입니다.
마젤란을 사살한 이 막탄 부족의 부족장 이름은 라푸라푸입니다. 라푸라푸는 세부 지역뿐 아니라 필리핀 전체에서 영웅적인 추장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 막탄섬에는 그의 동상과 전적비가 있다고 합니다.
구글맵을 확대해서 이 섬을 찬찬히 살펴보면, 다국적 호텔체인이 운영하는 한 줌도 안 되는 대형 리조트들과 특급호텔들이 주변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는 대규모 빈민굴-판자촌에 포위된, 아슬아슬한 형국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부와 빈곤 사이를 <공권력 저지선>이 위태롭게 가르고 있는 세부섬의 슬픈 역사는 490 년 전 마젤란이 이끄는 탐험대 겸 해적단이 이 섬에 상륙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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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로,
딱 7 주, 49 일 남았습니다.
저는 이 49 일 동안 세부 출신 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환전해 줄 사람>은 찾았으니, 세부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줄 친구와 현지에서 같이 다녀 줄 친구, 이렇게 두 사람만 더 찾으면 됩니다.
2011. 08.07 13:30 (MST) sarnia (clip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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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역사가 있었군요....
오늘 한가지 배웠습니다.
남미에서도 엄청난 학살이 있었지요.....
어쩌면 북미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 우리가 그 점령자들과 함깨 살고 있다는 것이
어쩌면 죄인 같은 느낌을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
여행 잘 다녀 오십시오.
아바의 노래 또한 무척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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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진게 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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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저도 마젤란이 괌을 거쳐 필리핀에 도착한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구체적인 지명이 제가 가 볼 세부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전투끝에 죽은 장소가 현재 리조트들이 집결해 있는 막탄섬이라는 건 어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레이크사이드 님도 고국방문할 때 add-on 티켓을 사서 동남아-일본-중국을 돌아보세요. 추가비용 별로 없습니다. 따로 가면 시간들고 비용도 비싸므로 한국 갈 때 가면 여러모로 이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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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
| 2011-08-07 16:47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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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두 몇분전까지... 마젤란이 탐험가라고 알고 있었는데요. ^^
생각해 보면 16세기의 스페인 \"탐험가\"들은 탐욕에 물든 겁없는 그래서 일확천금과 한탕을 노리는 부류들인것이 틀림없는거 같습니다. (16세기-17세기의 네덜란드 \"탐험가\"들도 마찬가지구요.) 필리핀에서 일어난 일들도 같은시기 엘도라도를 찾아 헤맨 Spanish Conquistadors과 비슷한거 같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50살 이상 살지 못했다는거 같은데요. 오늘의 속담--\"탐욕과 겁없음이 만나면 수명을 단축시킨다\"
올해도 좋은 여행되시기를 바랍니다. 재밌는 필리핀 친구분들 많이 만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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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젤란은 직업도 아주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탐험가에 선교사에...... 그 시대에 탐험가와 선교사와 군인과 해적 사이에는 업무구분도 아주 모호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국이시군요. 먹을 거 많은 나라에 계시니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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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1-08-07 23:4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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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항해가, 탐험가 라는 사람들이 대개 해적 내지는 준해적이었지요. 콜롬버스가 항해 할 때 스페인 여왕이 범죄자들을 사면해주는 조건으로 선원모집 했다는 것에서 알수 있습니다.
콜롬버스가 원주민 상대로 얼마나 못된 짓 했는가는 잘 알려진 사실이고 바스쿠 다 가마도 인도, 아랍인 상대로 못된 짓 참 많이 했는데 그 뿌리에서 나온 마젤란도 마찬가지군요.
하여튼 좋은 여행 하시고... 내년에는 유럽 가서 파리 뻬르 라 세즈 공동묘지 가서 꾜문 전사들도 만나 보시고, 물랑 루즈 가서 로트렉도 만나 보세요. 몽마르뜨의 집시 와 흑인들은 만나지 마시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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