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 <처녀귀신 빙하>에 다녀왔습니다. 처녀귀신 빙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좀 더 많이 알려진 <아사바스카 빙하> 이야기부터 할까요? 이 두 빙하는 <재스퍼 국립공원> 안에 약 한 시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므로 같이 둘러볼 수 있는 곳 입니다. 주말부터 30 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처녀귀신 빙하>를 목표로 로드트립을 다녀왔습니다. 아사바스카 빙하는 돌아오는 길에 그저 잠깐 들렀습니다.
아사바스카 빙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행자가 빙하등반장비 없이 평상복 차림으로 설상차 (snow mobile)을 타고 오를 수 있는 곳 입니다. 대표적인 에코투어리즘에 해당하는 이 한 시간 삼십 분짜리 설상차 투어에 참가해 보신 분도 많을 것 입니다. 설상차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지요. ……대한민국에서 오신 손님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은 지금 콜롬비아 아이스필드에서 출발하는 여섯 개의 빙하 중의 하나인 아사바스카 빙하 위를 오르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는 북미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분수령인데, 이 거대한 빙원에서 뻗어 나온 세 개의 빙하에서는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북극해로 각각 흘러 들어가는 세 개의 강이 출발합니다. 그 중 우리가 오르고 있는 아사바스카 빙하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아시바스카 강을 이루며 Great Slave Lake에서 출발한 매캔지 강과 합류한 뒤 북극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 곳은 위험한 곳일까요? 네, 아주 위험한 곳 입니다. 실은 트레일 종착지점의 경고라인을 뛰어넘어 크레바스를 보기 위해 저 곳까지 갔지요. 우하하~ 그렇다고 접근금지구역은 아닙니다. <위험하다>는 경고만 하고 있을 뿐 입니다. Wiki에서 Grand Canyon 을 검색해 보면 거기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1870 년대 이래 그곳에서 사망한 600 여 명 중 비행기와 헬기 사고로 사망한 242 명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많은 사고 사망자가 포토그래퍼들인 것 같아요. 여기서 포토그래퍼란 전문 사진작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카메라를 가지고 간 일반 여행자들도 포함합니다. 쉽게 말해 좋은 사진 찍으려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 참 많다~ 이런 이야기지요. 좋은 화각을 확보할 수 있는 <충분히 가까운 거리>란 때때로 골로 갈 수 있는 <충분히 가까운 거리>와 그 지점이 교차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빙하 곳곳에 산재해 있는 크레바스를 Deadly Cracks 라고 부릅니다. 다리가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수 십 미터 얼음 틈 사이로 떨어지는 수가 있지요. <누가 빙하 속에 빠졌다가 세월이 지난 뒤에 발견됐는데 하나도 부패하지 않고 마치 산 사람처럼 깨끗했다더라>, 이런 동화 같은 전설도 있는데, 글쎄요. 빙하의 압력과 이동에 의한 분쇄작용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바위들로 이루어진 빙하잔재들을 보면 그런 동화 같은 말이 쑥 들어갈 것 같습니다.
그럼 <처녀귀신 빙하>에 가 볼까요? 대형버스가 들어갈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패키지 관광객이 들어오지 않는 에디스 카벨의 <처녀귀신 빙하>, 호젓하고도 음산한 그 곳으로 가 보겠습니다. 재스퍼 파크랏지 로비 앞 정원에서 바라보이는 저 산이 마운틴 에디스카벨 (Mt. Edith Cavell)입니다. Edith Cavell은 원래 사람 이름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인 간호사였는데 독일점령하에 있던 벨기에에서 연합군 포로들이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아 독일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Edith_Cavell <처녀귀신 빙하>는 바로 그 비운의 간호사 이름이 붙여진 에디스 카벨 산에 있습니다. 레이크 루이즈에서 재스퍼까지 이어지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는 93 번 국도인데 재스퍼와 아사바스카 폭포 사이에는 이 93 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93A 국도가 있습니다. 에디스 카벨을 가려면 이 93A 국도를 타야 합니다. 오래 전 처음 갈 때는 14 km에 달하는 진입로가 워낙 험해서 혹시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깔끔쌈박하게 새로 포장했군요. 그래도 노폭이 협소하고 굴곡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기다려 주세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니만큼 우선 재스퍼 타운에서 식사먼저 하고요.
이제야 고백하는 말이지만 사실 <처녀귀신 빙하>라는 명칭은 없습니다. Angel Glacier, 즉 <천사의 빙하>가 저 현수빙하의 공식명칭입니다. 근데 먼 옛날 Canadian First Nation (캐나다 원주민)들은 저 현수빙하를 이고 있는 이 산 자체를 White Ghost (하얀 소복을 입고 있는 귀신)이라고 불렀답니다. 2003 년 여름, 저 현수빙하를 처음 보았을 때 sarnia가 느낀 첫 인상은 천사의 이미지도 아니었고 귀신의 이미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닥터 렉터>에게 무참히 살해당해 내장이 꺼내진 채 철창에 매달려 있던 테네시 주 멤피스의 감호경찰관 <보일>의 이미지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The Silence of the lambs>를 보신 분들은 기억이 나실 것 입니다.
주차장에서 호수까지는 약 800 미터의 트레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엔젤 빙하 아래 얼음굴은 카벨 빙하라고 합니다. 카벨 빙하에 가려면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빙하잔재를 통과해야 합니다. 조심해야겠지요. 반팔차림으로 나섰다가 기온이 좀 애매해서 도로 차로 돌아와 가지고 온 재킷을 집어 들었습니다. 올라가는 중에 더워져서 웃통까지 벗어 부쳤다가 선블럭을 안 바른 사실을 깨닫고는 셔츠는 다시 입었다가 카벨 동굴 앞에 이르러서는 살벌한 칼바람이 쌩쌩 부는 바람에 다시 재킷까지 껴 입는 등, 생쑈를 하면서 천신만고끝에 저 얼음동굴 앞에 이르렀습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대는 얼음동굴 입구의 체감온도는 영하 5 도 정도 될 것 같군요. 추위보다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음산한 기운이 기분을 참 묘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동굴 안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쩐지 엄청난 음기를 받거나 빙의라도 되는 바람에 집에 와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게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다만 저 도마뱀 모양의 빙하는 20 년 전이나 10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같은 모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기해요. 약 6 천 만년 전 저 도마뱀을 닮은 큰 공룡이 저 산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했던 것 일까요.
연도별 표지판은 그 해에 빙하 종점이 있었던 지점을 의미합니다. 1982 년 당시에 아사바스카 빙하는 저 지점까지 흘러나와 있었다는 말이지요. 1992 년도 표지판은 저 곳으로부터 약 70 m 후퇴한 지점에 있었고요. 지금의 끝 지점은 1992 년도 표지판으로부터 약 170 보 후퇴한 지점에 있었습니다. (제가 걸음으로 세어봤어요)
로드트립을 하는 날 아침식사는 언제나 변함이 없군요 : ) 2011.08.20 13:45 (MST) sarnia (clip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