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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장돌뱅이의 일기(2)
작성자 자유를 꿈꾸며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4499 작성일 2011-09-12 10:04 조회수 1816
항상 바람은 불었다.
세거나 약하거나
벌판에게 있어 바람은 운명 같은 것.

때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고 하지만
보이는 것조차 벅차다.

오늘은  
약한 바람도 힘에 겹다.

갈대가 흔들리는 건 바람 때문이지만
흔들리는 몸은 바람이 아니라 마음 때문.

마음에 있어서 바람도 운명 같은 것.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불어 온 바람에 휘청거리는 건
늘 나였다.

벌판은 그런 나에게
바람으로 바람을 막는
바람막이가 되어
지탱해 주고 있다.


0           0
 
민들레 영토  |  2011-09-12 12:57    지역 Calgary     
0     0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벌판(특히 우리는 낯선 이민지를)을
헤매는 장돌뱅이가 아닐까요?

여느 사물이 지니지 않은 마음이라는 무형의 무게를 안고
약강(弱强)의 바람의 너울을 잘 타고 넘기는
육의 축,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운명같은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바람막이 축을 잘 쌓고 있는
화자의 내면을 바라봅니다.

시를 통하여 단단함을 빕니다.

자유를 꿈꾸며  |  2011-09-12 18:30    지역 Calgary     
0     0    

아이디와 댓글에서, 벌판에서 맡았던 내음새가 그윽하게 풍겨 나옵니다.
약한 바람이 살짝 불었나 봅니다.
멋도 모르면서 바람따라 까불던 시절에 읽었던 이해님님의 시집 이름처럼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 시에 이런 구절이 있지요.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민들레 영토님의 댓글에서 나오는 향이 땅에서 하늘에서 차오르기를 희망한다면 좀 지나친가요?

감사합니다.

민들레 영토  |  2011-09-13 00:06    지역 Calgary     
0     0    

이해인님의 시집 < 민들레의 영토 > 76년도판을
이민 가방에 넣고 왔지요.
세로행 글씨의 시집입니다.
그때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이별 선물이었요.


이곳, 우리가 사는 알버타 땅,
봄이면 언덕마다 노란꽃 머리들어
다투어 봄노래 잠시 부른 후
어느새 흰 머리털 바람에 날려
다시 뿌리 내릴 곳을 찾아 주저없이 착지하는
민들레의 영토 같다는 생각으로 아이디를 놓았습니다.

별로 꽃으로의 사랑과 대접을 받지도 못하며
때로는 뿌리째 후벼파고 극약처방의 멸족의 시도를 이겨내는
질긴 집념의 생명력으로 못된 서구정신의 땅따먹기의 성질은
섞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합니다만,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해에게 준 마음 후희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민들레의 연가\" 중에서 일부분을 올려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3 04:21    지역 Calgary     
0     0    

\"You must live until you die.\"라는 말이 있더군요.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라! 살아있어도 그냥 살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제대로 살아라는 뜻이겠죠. 벌판과 바람은 삶의 현실성, 그것을 정직하고 진솔하게 수용하는 \"용기. 벌판-바람-나\"가 일관된 은유적 씨퀀스를 만들어 주니까 의미가 더 깊이 새겨지는군요. 이런 은유적 씨퀀스를 만들기가 참 힘들 것같은데...역시 잘 읽었습니다.

자유를 꿈꾸며  |  2011-09-13 22:07    지역 Calgary     
0     0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사랑아프리카님의 댓글엔 깊이가 있습니다.
그 깊이는 인간에 대한 사랑일겁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또한 엿볼 수 있구요.

차를 타고 달리다 길 가에 잠시 주차하고 벌판을 바라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답다,멋있다도 물론 나올 수 있는 형용사지만
참 넓다가 입 밖으로 나오더군요.
나란 존재가 그 위에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참 넓습니다.
그 곳엔 작은 바람이 모여 갑자기 소나기도 오게하고
강하게 내리 쬐는 햇빛을 통해 무지개도 나오게 하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눈을 이름모를 길가의 풀에 고정시키면
하늘거리며 쓰러졌다 일어나고 또 쓰러졌다 일어나고...

바람은 그 풀잎을 아름답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바람은 운명으로 들어오는거죠.

제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요절한 친구 김광석이 있습니다.
\"부치지않는 편지\"란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죠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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