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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골수 좌파 이 동호의 고해 성사
작성자 민초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4506 작성일 2011-09-13 06:06 조회수 2176
주 : 제 메일에 들어온 글을 퍼 왔습니다. 밑에 퍼온 글 곽씨 글과 같이
      이 글을 여기에 퍼 옮김은 이 창에는 흑백 논리로 자기의 주장은
      옳고 남의 의견은 무조건 옳지 못하다는 평과 매도와 모함성의 댓
      글이 오르기에 안타까움을 느낌니다.
    
      인생사는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사람 이런 사람도 있어 같이
      모여 살아가는 것을 각인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밑의 곽씨에 관한 글도 저의 생각과 의견이 아닐 수도 있건만
      좀더 시야를 넓혀 생각하는 것도 이창을 방문하는 애국 애족에
      불타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하여 퍼 왔는데 마치 제가 이글을
      발표한냥 아름답지 못한 댓글들이 판을 치더군요.

      분명히 말하지만 이 민초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또한 어느
      누구를 찬양하거나 좋아 하지도 않습니다. 분명한것은 300만
      이상의 동포를 굶겨 죽이고 3대 세습의 김씨 왕조는 싫어 합니다.
      그러면서도 핵을 만들어 남한을 위협함을 더욱 싫어 합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창에 이름을 밝히지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남의 인격을 살해하는 즐거움 속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이름도 모르는 그분들에게 이 퍼온글이 또 하나의 즐거움으로
      저의 인격 모욕에 기쁨을 찾을려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부탁하건데 모든것을 단면적으로 보고 판단하거나 흑백 논리를
      적용하여  쉽게 판단하고 결론 지으면 아름다운 사회로 발전치
      못하리라는 생각을 명심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 하답니다.

      첨언을 한다면 저는 이창에 퍼온 글이던 남의 글에 댓글을 달던
      한번도 남의 인격에 인신 공격이나 인격에 모욕을 주는 말은 남기
      지 않았슴을 밝힙니다.
      잘낫다는 사람들 얼마나 못 났으면 자기의 인적 사항도 밝히지
      않고 남의 글에 댓글을 달면서 남의 인격에 모욕을 주는 글로 즐거
      움을 찾을려 하는지 참 불쌍하고 한심한 인격의 소유자들이 있슴에
      슬픔을 느낌니다. 저는 언제나 쉬운 언어의 글과 댓글로 만인이 이  
       해하고 내일을 위한 자기 성찰로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답니다. 민초

골수좌파(386,NL계열)

  이동호(李東湖47세) 의 고해성사.          
                      
         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에 머리를 조아리며
아래의 칼럼을 쓴 이동호씨는 前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냈으며,
얼마전까지도 박정희 타도를 부르짖던 골수좌파(386,NL계열)의
선봉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잘못된 신념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반성하며,
그토록 비난했던 박정희 대통령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회원동지 여러분,
이동호씨의 감동적인 고백을 꼼꼼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전에 머리를 조아리며

written by. 이동호





몇 일전 「민족문제연구소」 등
세칭 진보단체와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제시대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 명단 속에 돌아가신 박정희 대통령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들의 명단 속에 당연히 포함되리라는 것은 사전에 충분히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들이 이 시점에 굳이 과거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그와 같은 일을 벌이는 이유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간사

그러나 막상 공개적으로 돌아가신 분의 휘자가 함부로 폄하되는 현실을 접하면서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죄스러운 맘을 금할 길 없다.
수천 년을 지속되어왔던 숙명과도 같았던 절대적 가난을 우리운명 속에서 지우고자 평생을 노력 하신 그 분이셨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막상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이토록 수모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죄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젊은 시절의 오판
제가 그분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이다.
물론 그 전에도 중·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분으로 배워서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그 분에 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 선배들과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그분은 이제까지 내가 알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군 장교출신이라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대학에서 만난 그분은 독재의 화신이었다.

일제의 앞잡이었던 그는 미국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민중을 수탈하고,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는 독재자의 전형이었다.


그가 이룩한 산업혁명은 정부의 선전과는 달리 우리민족의 자주적인 발전을 왜곡시키고
미국과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수탈을 원활하게 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였고 미국의 식민지적 지배의 선봉에 선 사람이 다름 아닌 그였다. 그가 이룩한 대한민국은 점점 외국의 노예로 가는 길이었다.
종국에는 외국자본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최악의 나락으로 빠져갈 기가 막힌 현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제 36년의 노예생활도 부족해서 이제는 서양 사람의 노예에서 영원히 헤어 나올 길이없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노예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였다.

혁명 밖에는 다른 수단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나의 사회주의자로서의 길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길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민중의 수탈자였고
한줌도 안 되는 민족과 민중의 배반자들이었다.
반면 사회주의에는 민족낙원의 길이 보장되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의해서 강제적 지배나 억압이 없고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갖는 모두가 꿈꾸는 이상사회였다.

공산주의는 민중을 억압하는 사상

북한의 김일성을 알게 된 것도 그 시기였다. 북한의 김일성은 절세의 애국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조국 독립의 꿈을 안고 만주로 건너가
평생을 조국 광복을 위해서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영웅이었다.
이미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해서
조선 공산당의 효시가 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북한에 사회주의 조국을 건설한 것이다.
남쪽의 식민지 나라와 북쪽 자주의 나라 더 이상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단지 억울한 것은 6·25민족해방전쟁이 미제국주의자들의 개입으로 좌절된 일이었다.
남쪽에서도 민중이 주인 되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절호의 기회가 좌절된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그 후로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나에게 이데올르기는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가끔씩 사회주의에 대한 다른 증거가 제시되고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 요소가 눈에 띄어도 이는 나의 철저하지 못한 혁명의지 때문이었다.
나의 사회주의와 북한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였다.
소련이 무너지고 연이어서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졌다.
그것도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낙원에 살던 사람들에 의해서다.
영원한 사회주의의 낙원이고 고향인 소련과 사회주의 나라는
우리가 꿈꾸었던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
반대자들에 대한 피의 숙청이 진행되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가장 억압받는 인류 최악의 사회였다.
소수의 지배자들의 천국이었다.
민중이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이 가장 억압받는 그런 곳이었다.
이제 까지 내가 믿었던 사상은 의심받기 시작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틀렸단 말인가.
근본부터 흔들렸다. 그러나 도피처가 있었다.
북한은 소련과 동구권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재했다.
소련과 동구권의 물질중심주의적 철학의 실패이지 인간을 중시하는 주체철학의 실패는 아닐 거야. 당시의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도 오래 가지 못했다.
연이어 탈북자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그래도 버텼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죄를 짓고
그 사회에 살수 없어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위해서
자신들의 고향을 저주하는 거라고. 그런 나의 생각이 결정타를 맞았다.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황장엽 선생이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온 것이다.

  중국의 고도성장,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 혁명 벤치 마킹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졌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아니 북한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악의 나라’였다.
300만을 굶주려 죽이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그 토록 소리 높여 외치던 인류의 낙원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경애하는 어버이 수령은 어디가고 최악의 독재자가 그 자리에 있단 말인가.
자신의 백성이 그토록 굶주려 죽어 가는데
호화로운 궁전에 앉아 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후안무치가 그 자리에 있단 말인가.
나는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에 놀아난 지적 저능아였다.
거짓을 사실로 알고 있었고 이를 소리 높여 외쳤던 판단 능력이 상실된 문제아였다.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야 했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확신했던 사실을 확인 해야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다시 만난 것은 그 때였다.
그분에 대한 것을 다시 보아야만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난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그분이 이룩한 산업혁명을 다시 보았다.
분명히 사회주의를 동경하던 당시 책들과 선배들의 판단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수탈에 망해 있어야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분이 이룩한 터전위에 대한민국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세계10대 무역국으로 진입해 있었다.
모든 제3세계나라들의 선망의 대상이 대한민국이었다.
제3세계나라가 산업혁명을 이루는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가 대한민국의 산업혁명이었다.
오랜 기간 우리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이
오히려 우리를 배우고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근대화의 기수 등소평이 가장 본받고자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혁명이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오늘 중국의 고도의 경제성장의 배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혁명 전략의 벤치마킹이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우리 민족에게 '하면 된다'는
                                    불굴의 의지 심어줘

베트남을 취재차 방문했던 후배가
그곳에서 만난 기자와의 대화 가운데 들었다는 한마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현재의 엄청난 격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대한민국은 박정희 같은 지도자를 가졌고
베트남은 그런 지도자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그 후배 또한 얼마간 사회주의에 물들었던 전력이 있었다.
그는 타국에서 만난 외국사람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스스로 자부심이 느꼈다고 나에게 고백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겼던 우리민족에게
‘하면 된다’ 는 불굴의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세간의 비난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묵묵히 역사가 그에게 부여한 시대적 사명을 안고 그의 길을 간 선구자였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일구는데 무엇 하나 기여한 적이 없는 이들이
과거사 청산이라는 거짓명분으로 돌아가신 대통령을 헐뜯고 있다.
그들은 답해야 한다.
당신들이 그토록 찬양하던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고
당신들이 꿈꾸던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당신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대한민국을 전복하여 최악의 독재자에게
오늘의 대한민국을 헌납하려 했던 당신들의 죄악을 먼저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 인간의 도리이다.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벗고.....
자신이 이 사회에 끼쳤던 죄악을 참회하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위대한 대통령을 헐뜯는 당신들을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날 그분을 모욕했던 죄인이기에 오늘의 현실이 더욱 견디기 어렵다.
그분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 그분에 대한 과오를 씻는 길이라고 확신하기에 그분의 영전 앞에 머리를 조아릴 용기라도 갖는 것 같다.(konas)

  이동호 (李東湖 47)
       (前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現 한반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북한민주화포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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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moramas  |  2011-09-13 07: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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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좌파들이 무어라 비하하던지 상관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보릿고개와 가난을 물리친 한민족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라고 저는 항상 믿고 있읍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3 07:5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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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님, 안녕하세요. 글의 내용보다는 글쓴이 자체를 공격하면 참 속상합니다. 또 본인은 노출이 되었는데 공격자는 누구인지는 모르는 치고 빠지는 사람이라서 치고 빠지면 더 속상합니다. 이른바 우파든 좌파든 치고 빠지기 보다는 자기 글에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동안 민초님의 글이나 퍼오신 글을 보면서 민초님은 김구선생과 같은 우파적 민족주의자라기 보다는 아주 아주 오른쪽에 자리잡고 계신 분, 즉 극우주의자라고 판단되고 또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령, 근본주의자들 중에 근본주의라는 범주에 넣으면 화를 내기도 하는데 본인이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는 것과 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근본주의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보구요.

그 동안 훌륭한 시를 통해서 깊은 소양을 보여 주셨는데, 이제 민초님이 이데올로그가 되신 느낌이 드는군요. 이것이 새삼스런 것은 아닙니다. 민초님의 시나 펌글, 그리고 다른 대사회적 발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며 또 일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thought and action)은 상당히 일관된 경향이 있습니다. 평소엔 서정적인 시를 발표한 사람을 보고 \"아, 이 분은 정치적 이념주의자가 아니라 순수시인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직 시를 통해서 이 사람의 이념이 행동으로 분출되지 않은 탓이겠죠. 그러다가 어느 계기, 즉 박정희 관련문제나 다른 정치적 이슈가 나왔을 때, 참을 수 없어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 (take action)고 보고 글이나 행동으로 나오는데 이 때 그 사람의 이념적 본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이런 맥락에서 민초님께서 이 게시판에서 그간에 보여주신 모습은 중도적 민족주의는 전혀 없고 극우주의적 이념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갈등관계로 몰아가는 주체는 누가 극단적인 이념적 양분을 나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이념적 양분의 주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민초님이 이 게시판에서 어떤 위치에 계시는지는 여러분들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토마  |  2011-09-13 08:0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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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님께:

저두 민초님의 댓글을 꾸준이 달았던거 같은데,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제가 흑백논리로 자기편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사람으로 보시는것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는 민초님의 글을 다시 둘러 보아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저는 곽노현사건이 터져나올때 당연히 수사해야 된다고 느낀 사람이고, 잘못한 사람은 감옥에 가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단지 사건이 공론화되며 제가 읽은 바에 의하면 사건의 실체가 제가 첨에 생각한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고 (제 덧글을 다시가서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 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실체가 더 밝혀지기를 원한다고 썼었죠. 아직도 그런 상태입니다.) 그렇기 땜에 교육감에 대한 인격모독/인격살해에 동참하는 것이 사려깊지 안은 감정적 글이라고 썼습니다. 민초님은 이런 반응에 대해 그 피의자를 “똥개”라고 비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흑백논리에 바탕을 하고 있고, 누가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되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재판에 계류중의 사태에 대한 피의자에 대해 – 특히 그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 사태에 대해 인격모독에 참여한 민초님의 글에 코멘트한것을 “자기편만을 감싸는”사람으로 싸잡하서 비난하셔서는 안될것입니다.

퍼온글에 대한 코멘트도 했는데, 그 원작자는 김일성의 지시로 보내진 “남파 소년소녀”가 우리나라 재판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현실해리상태를 보이는 분입니다. 이런 현실해리상태를 보이는 분들이 쓴글을 퍼오시는건 민초님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코멘트를 하면서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스타일의 댓글을 달았고, 그런점에서는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특히 민초님의 글에는 지금처럼 좀 더 정형적인 댓글로서 반박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초님께서 어떤 분들로부터 이멜을 받으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실제로 정상적인 보수 또는 우익집단에서 나온 글이 아니라, 황당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극우*진영의 글들입니다. 이럴진대, 민초님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라고 하시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좌 또는 우의 입장을 견지하는건 매우 정상적인 또는 유용한 자기 표현입니다.

저는 사회문화적으로는 매우 매우 liberal하며,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left입니다. 그레서 저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두 당연히 북한을 포함한 다른 여러 전체주의적 국가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저의 정치적 입장은 저의 정체성에 중요하며, 그러므로 저는 언제나 저를 자유와 민주주의에 궁극적 가치를 두는 사회주의자라고 거리낌없이 얘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입장을 견지합니다. 저는 그 입장들이 건전하고 이성적이기를 바랄뿐입니다.

첨 밝힌대로 제 “casual”한 덧글이 무례하게 느껴지셨다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이 덧글처럼 더 formal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고 여유로운 가을 맞아히시길 바랍니다.
– 토마올림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3 08:1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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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이뤄진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현재의 한국의 산업화의 연속성내지 필연성을 주장하는 논거나 박정희 군사 쿠데타와 군사 독재, 이 과정에서 이뤄진 근대화론을 주장하면서 그의 경제적 공헌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같은 논리 선상에 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3 08:5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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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동호같은 사람이 전형적인 사람입니다. 남한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사람이 나오는 것이 한심한 것이죠.

그 이유가 있습니다. 실은 이런 사람이 생산되는 곳은 민주화가 된 곳이 아닌 전체주의나 독재국가에서 많이 나옵니다. 박정희-전두환에 이르는 극악무도한 군사독제 치하에서 대항적 이념과 실천을 찾다가 주사파같은 한심한 조직도 나오는 법이죠.

좀 길게 설명해야 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주사파 출신이 다시 극우 이데올로그가 되는 것은 이데올로그로서 기댈 곳이 거기밖에 없기 땜입니다. 즉 자기를 받아줄 곳을 찾아 갈 곳이 그런 곳밖에 없기 땜입니다. 아직도 한국은 반공주의, 극우이념이 주를 이루게 하는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이동호같은 이가 그런 곳에 의지하여 먹고 살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사상적 토론과 비평이 자유로운 민주적인 곳은 주사파같은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이 적습니다. 민주사회는 특정 이념이 사람을 구속하고 억압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민주적 사회에도 이런 극단적인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가령,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그런 경우죠. 이런 기독교 근본주의가 생산되는 것은 신학교나 교회가 성서비판을 불허하고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토론, 자유로운 비평이 있는 곳에 주사파도 사라지고, 근본주의도 사라지고 합리적 이성과 관용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동호같은 주사파가 나올 가능성은 전체주의적인 국가에서 높으며, 그가 배신 때리고 (apostasy) 또는 개과천선(conversion)하여 극우 이데올로그가 된 것은 한국이 여전히 분단국가이기 때문입니다.

lakeside  |  2011-09-13 19:41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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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정희 시대에 성인으로 살아 본 사람들이
그와 그의 업적이나 과오에 대해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억압되고 많은 네약을 받았지만
이제 여러 정권들을 다 경험하고
지금 판단하는 것이 가장 옳바르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10.26 사건이 났으니 저도 사실 박정권의 초기 부터 다 안다고 볼 수는 없지요.
10월 유신은 그의 업적에 큰 흠집을 낸 것이 맞지만
우리 역사에 그와 같은 강력하고 나라의 부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지도자는 많지 않다고 봅니다.
그가 만든 강력한 기초 위에서 거꾸로 나라 말아 먹지 않으면 다행이죠.
물론 지금 박정희가 살아나 똑 같이 정치를 한다면 국민들이 순응하지 않겠죠.
그만큼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까요.
우리 역사에 그런 사람 한명만 더 있다면
이제는 미국도 넘어 세계 최강, 최고의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3 22:19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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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사람이라면, 후대 사람보다 특정한 역사를 더 생생하게 체험했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lakeside님의 주장대로라면, 위의 펌글의 주인공인 이동호님도 위의 주장을 할 자격이 별로 없죠. 이 분이 언제 위의 글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47세인 점, 386세대라는 것으로보아 1960년 이후 태어난 젊은이죠. 이 게시판의 필비님이나 클립보드님보다 어린사람이죠.

설령, 그 시대에 살았다 하더라도 지식이나 여론을 조작하는 지배계급에 속했느냐(elite), 그 통제를 받는 대중 (masses)에 속했느냐에 따라 경험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로 돌아가면, 여기에서 일제 강점기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꽤나 있다고 하더라도 1935년 이전에 성인이었을 사람은 여기 게시판 방문객은 아마도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료, 시각, 개념을 갖고 어느 역사적 사건이나 사태를 보고 서술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기원만 해도, 미국, 구소련, 중국의 기밀문서 해제의 양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911 테러리즘만 해도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어느 역사적 사건이나 자료를 해석하기 위해서 역사학자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고학, 사회학, 종교학, 법학, 법의학에 종사하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장 답사는 필수적이기도 하구요. 박정희와 그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원자료이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보다 앞으로 백년 또는 몇백년 이후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우리보다 더 박정희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의 독재와 철권통치하에서 배우고 자란 세대는 그 이후 세대보다 박정희 향수를 더 깊이 느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일제강점기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도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았건 그렇지 않건 새로운 자료를 접하지 않으면 그 경험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lakeside  |  2011-09-14 21:1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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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 세월을 겪으신 어르신들
민초님이나 파모라마스님의 경험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경험도 해 보지 못하고 남들...
그 중에서도 옳바르지 않은 판단을 하는 사람들만 따라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일제 시대가 더 좋다고 합니까?
저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4 21:4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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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keside님, 경험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동의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대나 사건을 연구할 때, 자서전이나 인터뷰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분이 민초님이나 파모라마스님만 아니겠죠. 저의 부모님, 삼촌, 고모도 있습니다. 어린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적 자료들은 raw materials이며, 분석하고 비교하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 완결된 것일 수 없습니다. .

일제강점기의 경우는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일기문이나 자서전, 신문자료, 선교사들의 자료, 성명서, 소설, 그외 수많은 아카이브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자료를 열람하는 것은 전문가만의 영역만이 아니라 관심있는 사람이 더 깊이 알 수도 있습니다. 사료로 문제가 많겠지만, 클립보드님이 언급하신 적이 있는 [김형욱 회고록]도 그 예가 될 것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증언, 다른 자료들을 비교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굳이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자서전을 제대로 쓴다면 이런 접근은 기본입니다. 사람의 경험은 지엽적이며, 제한적이며, 편견이 내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또 망각을 동반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현실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널리스트들의 르뽀를 읽거나 신문기사를 참고하거나 통계자료를 읽고, 또 사회학자들의 양적 질적 연구 등등을 참조해야, 한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꼭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는 누구나 가져야 할 소양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lakeside님께서 \"어느 누가 일제 시대가 더 좋다고 합니까? 저는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셨는데 한 인물만 예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한승조]
인터넷 찾아 보세여?

감사합니다.

lakeside  |  2011-09-14 22:1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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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봤습니다. 방금....
별 정신 나간 사람도 다 있군요......
금칙어 아닌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한승조라는 인간이 있다는 거 하나 배웠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9-15 08:15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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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라는 인물이 특이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캐나다 출신 선교사이면서 역사가이도 한 James Gale이나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 교수이자 선교사였던 James Earnest Fisher의 글을 보면, 당시 조선인 젊은이들이 전통문화를 잃고 서구문화나 일본문화에 경도되어 가는 모습을 우려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조선의 독립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흥미있는 내용입니다. (그나마 피셔는 상당히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고 게일은 신학적으로는 보수적이었지만 한국문화와 한국어에 누구보다도 해박한 사람이었기에 이런 우려를 할 수 있었습니다. 게일은 한글 사전까지 펴낸 사람이었습니다.) 1935년 이후 내선일체를 강화하기 시작한 일제의 자신감은 식민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선인들이 점점 일본화되어 가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박정희\"가 일제의 군대의 주구가 된 것은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일제의 군관이 된 것은 그가 친일한 사람 중에서 출중했던 탓이겠죠. 이렇게 나라를 잃으면 당연히 지배문화로 흡수할 가능성은 많은 법이죠. 비쟌틴이라는 기독교 문명의 꽃이었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의 점령으로 \"이스탄불\"이 되고, 성 소피아 성당이 이슬람 사원으로 변한 것은 문화란 쎈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담이지만, 캐나다에서 한국에 대해서 토론하고 감정의 골을 세우는 것은 이민 일세대의 몫이고 2-3세대로 지나가면 한국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문화는 익숙한 사람들의 것이니까요. 위키리키스의 자료 공개로 이명박이 뼈속까지 (to the core) 친일/친미라고 한 것은 우리를 씁쓸하게 하는 이유가 이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사카 출신에 기독교인이 그런 성향을 갖는 것은 소이연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학위마치고 한국가서 정계나 교육계에 진출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미국의 문화와 교육체계를 전수하는 것이 새롭지 않듯이요. 박정희 시대에 \"시월유신\" 노래를 부르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대한뉴스를 들었던 사람들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도 이런 문화적 동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우리 문화는 이런 다양한 문화적 지층의 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지층들이 중첩되기도 하고, 다시 재형성되기도 하고, 때론 단층으로 유지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장준하와 함석헌이 박정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나 박정희의 통치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 박종홍 모두 그 시대의 자녀들입니다. lakesise님과 제가 정치나 문화적 이념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서로 의견을 같이하는 면도 많겠지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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