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마다,
자하(紫霞)처럼 퍼지는 안개비
눈(眼) 내려, 윤곽은
곡선을 그리고
저녁이 깔리는
깊은 요람(搖籃)에
묵향을 닮아가는,
붓소리
문득, 가 닿는
오래된 시간의 그리움
이승의 꽃잎,
스스로 스러지는
꼭 다문 붉은 입술
신비한 꿈속의
짙은 입맞춤
가슴 시린 경계(境界) 하나,
퍼질러 앉는다
<詩作 Memo>
가을은
뉘엿한 산 그림자를 따라
저물어가는데,
山房의 침묵 속에
차마 벗어 버리지 못한 한 그리움은
저 홀로 심장의 중심부까지
달맞이꽃이 되어 서리처럼 피어나고
귓가에 아직도 들리는 음성은
산능선을 따라 낙엽처럼 구르는,
외로운 바람 소리일까
곱게 땋은 추억이사
한 점 달빛으로
화선지畵宣紙 위에 올려 놓고,
내가 살던 이승의 못다한 사연일랑은
지긋이 깨무는 입술에
붉은 노을로 걸어 놓고,
멈추지 않는 과묵寡默한 고요만
방 안에 가득하여
이윽고 차안此岸도 피안彼岸도 사라지고
다만, 깊이 괴고 괴는 마음 하나
너울대는 촛불빛에 그림처럼 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