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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 도올 김용옥 |
작성자 jasonlife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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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4602 |
작성일 2011-10-14 23:47 |
조회수 1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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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10-16 00:5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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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마우스를 동영상에 대고 오른쪽 마우스를 클릭해서 쏘스코드 복사를 해서 가져오면 동영상을 퍼올 수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전쟁이 누가 먼저 일으켰느냐에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도올 선생의 강의도 종북주의로 보일 것입니다.
알버타 저널에 누가 중국학자글 퍼와서 커밍스의 수정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제가 아는 한 커밍스만큼 한국현대사를 거시적으로 또 미시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같습니다. 요즘 몇분과 커밍스의 Korea\'s Place in the Sun을 읽고 있는데 한귀절 귀절을 읽을 때마다 가슴아픈 내용들이 많습니다. 어느 나라고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진정한 민족주의자들과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사회주의자들이고, 친일반민족주의자들은 박정희를 위시한 가짜들이 남한 현대사를 좌지우지 했습니다.
도올선생이 강의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중국이 모택동에 의해 또는 장개석에 의해 미리 통일되었더라면 남북한의 분단이 없었을 것이고 한국 전쟁도 없었을 것입니다. 커밍스는 더 나아갑니다. 설령 한국이 사회주의국가가 되었더라도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고, 베트남 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동서 냉전은 더 빨리 종식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대신에 한국은 진정한 민족주의자들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중국과 같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지요. 그랬다면 한국의 경제력은 현재 남한의 정도는 아니라도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잠룡으로 부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좀 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미국이 남한의 구세주나 되는 것처럼 무조건 친미를 부르짖고, 또 이번에 명박산성 성주께서 오바마에게 다 퍼주는 것은 마땅하다고 하는 인터넷 댓글들을 골수극우들이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소련, 미국의 classified 자료를 입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한의 반공주의에서 벗어날 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자료입수와 해석의 여지를 무한히 여전히 남겨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막연히 \"~카더라\"라는 진술 대신에 한국 현대사 이해를 위해서는 우리같은 아마츄어들은 2차자료라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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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칸컵
| 2011-10-16 01:32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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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님, \'아마츄어\'라뇨? 지나친 말씀입니다. 지금 아프리카님의 이런 댓글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열에 하나 아니면 둘.... 따라서
아프리카님의 댓글은 벽에 대고 얘기하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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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10-16 05:40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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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올 선생 강의 말미를 보면서, 기회주의자 박정희가 남로당에 들어간 것은 그의 행님 영향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친일기회주의적 이력을 사회주의적 민족주의로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그가 남로당에 들어갈 개연성이 달리 안보이니까요.
허참, 박정희가 보릿고개 넘겨줫다고 친일전력이야 큰 문제꺼리가 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 것같아요. 그러니 지만원이나 한승조같은 사람이 나오겠죠. 유투브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댓글 보니까 친박(박근혜 말고 박정희) 논리와 비슷한 말들을 하는군요. 그러니까 일본이 한국을 집어 삼키긴 했지만, 그것 땜에 절호의 일본모방 기회를 갖지 않았느냐고요. 저는 커밍스 책을 보면서 남한은 독립운동을 통해 형성된 민족주의가 친일파들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를 구제하기 위해 식민지 근대화론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왜 신민지 근대화론이 맹위를 떨치는가 했더니 바로 \"박정희 만주군 소위\"를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글위키피디아에 보니 박정희에 대해 이런 말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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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wikipedia.org/wiki/%EB%B0%95%EC%A0%95%ED%9D%AC
일본 육군사관학교 편입학 시절 (1942 ~ 1944)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직후, 헌병 소조 시절의 박정희[40], 이때의 계급은 일본 헌병 소조(상사), 보직은 견습사관이었다. 그해 8월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된다. 졸업 후 5개월 정도 현장 실습을 마친 박정희는 1942년 10월, 일본 육군사관학교 57기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1944년 4월 박정희는 300명 가운데 3등의 성적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 57기를 졸업한다. 그리고 견습사관 과정을 거쳐 1944년 7월 열하성(熱河省) 주둔 만주군 보병 제8사단에 배속되었다. 12월 23일 정식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였다.[41]이때 함께 근무했던 신현준, 이주일, 방원철 등은 훗날 5·16 군사 정변의 동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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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516군사쿠데타는 친일파들의 쿠데타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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