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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그냥>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4791 작성일 2011-11-20 22:34 조회수 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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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그리고 백만학도 여러분! 전대협이 드디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노래 때문에 새 창을 열었습니다. NL –PD 논쟁은 1985 년 본격화한 사회구성체논쟁에서 촉발됐습니다. PD 계열은 남한의 사회 기본모순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고 주적을 남한내의 군사정권과 독점재벌로 정의한데 반해 NL 계열은 남한의 기본모순을 국가자주권의 부재로 보고 미국을 주적으로 선포합니다. 논쟁은 PD 계열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항해서 반봉건식민지론을 전개한 NL 계열의 승리로 귀착됐지요. 여기서 승리라는 개념은 이론적 정당성이 확인되었다기보다는 조직대결에서 승리했다는 말 입니다.

NL 계열은 1986 년경부터 전국 학생운동조직을 거의 모두 장악하고 이듬해인 1987 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출범시킵니다. 지금 나오는 이 노래가 이 단체의 주제가입니다. 초대 의장이 아마 이인영 씨였고, 그 다음 해 의장이 임종석 씨였을 겁니다. 1987 년 NL 은 전두환 정권을 박살내면서 그 조직 위상을 확고하게 굳힌데 이어 이듬해 반전반핵-남북학생회담 추진 그리고 1989 년 평양 청년학생축전 투쟁을 전개하지요.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당시 사정은 달랐습니다. 지금처럼 시민운동 노동운동이 광범위하게 조직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가장 막강한 전투부대를 확보하고 있는 학생조직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야전군이었지요.

NL-PD 논쟁 내용의 디테일들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암튼 1986 년 NL 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학계-문화-예술계 등에서는1987 년 대선에서 비판적 지지계열로 그 계보와 인맥을 형성하게 됩니다. 당시 (1986 년) 장세동이 지휘하던 국가안전기획부는 NL 이 사구체 논쟁에서 승리하고 공개조직을 대부분 장악했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이념총공세의 첫 작품을 하나 만듭니다. 기억나시나요? 1986 년 10 월 30 일 건대사태......

1989 년 시민운동 (당시에는 재야라고 불림) 총연합조직인 전민련 본부에는 왕년의 PD 계열과 NL 계열의 이론가들이 모두 집합했지만 더 이상 사구체를 둘러싼 이론갈등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정당 (party) 등 제도권 진입을 위한 노선이 갈라지게 되는데 87 당시 비판적 지지입장 (DJ에 대한)을 가졌던 NL 계열은 평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을 발판으로 삼아 상당수가 제도권으로 진입합니다.

NL 이고 PD 고 기릴 것 없이, 당시 주역들은 지금도 정당-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각계각층에 넓게 퍼져 있지요. 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세대처럼 광범위한 연대를 오랜 세월 지속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관용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집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래집단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가장 위대한 세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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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1986 년 당시 학생운동의 NL 지도부를 주사파가 장악하게 된 배경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남들 열라 박 터지게 싸울 때 골방에 처 박혀서 강철서신인가 뭔가 하는 줄기찬 편지질을 했던 작자인데 이 사람은 25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골방에 처 박혀서 ‘극우반동서신’을 날려대고 있지요. 1995 년 어느 날 하루아침에 주사에서 극우로 180 도 전향한 경우인데 후세 심리학자들의 연구대상 중 하나인 듯……

'NL 지도부를 주사가 장악했다고 했을 때 장악이라는 의미는 당시 SM 지도부가 주사이론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86~89까지 분위기상 하나의 경향성으로 자리잡았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게시판에서 종북 타령하고 있는 분들, 불만 있으면 이 작자한테 가서 따지시구요.

참고로 저는 사구체 논쟁이 본격화 되기 전인 1985 년 졸업을 했기 때문에 NL 과는 관계가 없지만 이후 전국단위단체본부에서 문익환 목사와 김근태 씨 라인에 있었기에 굳이 출신 계보를 따지자면 NL 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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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평화  |  2011-11-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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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군대갔다 오니 사구체 논쟁이 한창이더군요.
NL과 PD가 박터지게 싸우는 것을 보면서 현장으로 고고 씽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밑에 그냥 님의 분석 틀에 의하면 저는 PD 쪽에 가깝군요.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당시 \' 인민노련\' 의 열렬 지지자였고요^^

군대 다녀와서 \"무엇을 할것인가\" 등등의
레닌의 팜플렛으로 골방에 숨어 세미나할 때 \'강철\' 은 한마디로 전설이었죠.

세월이 지나니 김문수같은 작자가 나오는가 싶더니
강철역시..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학생때 극좌의 선두에서
혁명대오를 흐트리는 사람처단운운 하다가
지금은 극우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정녕 연구대상..

clipboard  |  2011-11-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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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우 양극단의 본질은 기회주의니까요. 노선의 문제가 아닌 품성의 문제이지요. 1989 년 제가 중국천안문사태에 대해 전민련 기관지에 비판적인 칼럼을 쓴 일이 있는데, 어떤 인간이 나타나 &lt;제가 NL 부르좌라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편을 들고 있다&gt;고 나발을 불었습니다. 탱크로 3000 명을 깔아뭉갰더라도 중국 군부가 잘 했다는 거지요. 그러던 작자가 지금은 한나라당에 가 있습니다.

당시 주사 좌극단에서 수령론을 나불대던 인간들이 조갑제닷컴에서 원고료로 연명하고 있는 것 좀 보세요. 그들이 전향을 했다고요? 단언하건데 세상이 바뀌면 그 작자들은 나치에서 주사까지 모조리 섭렵할 인간들 입니다.

박정희도 아마 남로당 시절 좌편향 극단주의자였을 게 틀림없습니다.

philby  |  2011-11-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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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이야기 나오니까 또 열 받는데 그자가 5.3때만 해도 혼자 선명한 척 했거든요. 그때 서노련 의장인가 했을 때인데 5.3때도 인노련 하고도 같이 뭘 하기로 했었고, 아마 장기표씨지요, 장기표씨 랑도 같이 움직이자 하고는 독불장군 노릇해서 판 깨고. 5.3때만 해도 제각각이었지만 김문수란 자는 혼자 선명한 척 하더니 이젠 너무 멀리 나갔는데 이건 품성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조도 없고 이념도 없고 김정일이 밀고 내려오면 장군님 만세 부를 기회주의자 입니다. \"생각을 달리 하니 세상이 편해지더라\"... 연구대상이 아니라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마인드를 가진 자들 입니다.

clipboard  |  2011-11-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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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민통련 의장을 하던 이재오도 비슷합니다. 진보진영은 87 국면에서 국본을 지휘하던 민통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1989 년 1 월 22 일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총 연합체인 전민련을 출범시킵니다. 사상최초로 전 노선이 한데 뭉친 사건이었어요. 문목사나 백기완 씨 등 어르신들은 모두 고문으로 추대되어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 공동의장단이 구성돼 상층부는 집단지도체제로 전환되었지만 본부의 실무조직은 김근태-장기표-이부영 체제로 운영됩니다. 사무처는 장기표씨가 장악했고, 정책기획실은 김근태 씨가, 편집기획실은 이태복 씨가 들어왔는데 이재오는 평통위원인가 하는 직함을 받긴 했지만 사실상 밀려난거나 다름 없었지요. 바로 이때 전민련에서 밀려난 사건이 그가 변절의 길을 택한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대체로 지금 한나라당에 가 있는 변절자들은 사실상 여러 가지 이유로 조직에서 밀려났거나 스스로 불만을 품고 나간 사람들 입니다. 그자들이 지금 무슨 이유를 들려붙여 변명을 한다 해도 그 역사를 바로 그 현장에서 지켜 본 사람들까지 속이지는 못 하겠지요.

토마  |  2011-11-2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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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그냥님의 얘기부터 이어진 이얘기들 재밌는데요? 더 듣고 싶어집니다.

김영환은 이재오/김문수 하고는 좀 더 다른 류인거 같이 느꼈었는데... 만나본적이 없으니 어떤 \"분\"들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궁금.

clipboard  |  2011-11-2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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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은 공개단체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언더라 본 적이 없고 김문수 역시 본 적 없으니 어떤 인간인지는 잘 모릅니다. 이재오는 압니다. 보스 기질 명예욕 상당하고 월권도 다반사입니다. 한 예로 서울 민통련 의장시절이나 조평통 시절 본부 편집기획실에 나타나 자기 활동에 대한 기사비중에 대해 압력을 넣거나 불만을 떠뜨린 적도 있고요. 전민련 출범 기자회견 때는 방송기자에게 부문별 지분을 이야기하면서 \"(노동계가) 별 것도 아니지만 선심써서 큰 지분 줘 버린 거거든요\"라며 경박한 표현을 하는 바람에 노동-농민 부문에서 본부로 항의가 들어오는 등 말썽을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딱히 지적할 결점이 따로 있다기 보다는 한마디로 격이 좀 떨어지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lipboard  |  2011-11-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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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방금 기억이 났는데 임종석은 1988 년이 아니라 1989 년에 전대협 의장을 했습니다. 1989 년이 노태우로서는 최악의 해 였는데, 이 해 전민련이 출범하고 황석영 문익환 임수경이 차례로 방북하는가하면, 육사 졸업식장에서 육사교장 (민병돈) 이 인사도 안 하고 쌩까는 바람에 개망신을 당하는 등, 그에게는 가지가지로 괴로운 해 였지요. 그 때 얻은 화병으로 비교적 일찍 저렇게 몸이 가는 바람에 오늘내일 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친구 전두환은 아직도 쌩쌩한데 밀이죠. 문병가실 분들은 서울대 병원 가셔서 노태우를 찾으면 안되고 최만득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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