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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진 씨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주세요 |
작성자 강현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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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번호 491 |
작성일 2008-06-06 16:12 |
조회수 1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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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든 바로든 역사란 용기와 비판의식을 겸비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져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처음 하는 얘긴데 나는 ‘묵묵히 자기 맡은 일만 충실히 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은 별로 믿지 않는 편입니다. 상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사람들, 흩어져 있는 에너지와 상호교감을 조직하고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 그리고 일단 지금까지 정리한 생각을 과감한 공개발언과 행동을 통해 검증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새 세상을 열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한국 사회를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끔은 배가 산으로 올라 갈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역동성이 지난 20 년 간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일단 이세진 씨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품성의 바탕은 싹수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세진 씨에게 무엇인가를 설득해서 생각을 바꾸라고 권고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세진 씨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그 분의 ‘과감한 행동’에 대한 동정표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털어 놓고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습니다.
나는 “우리도 용서 못했던 조승희를 용서한 나라, 그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라는 글이 적힌 팻말을 처음 봤을 때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조승희가 누구지’ 했던 것입니다. 약 1 초 뒤에야 그 조승희가 버지니아텍 총기난사사건의 주역 그 조승희 라는 것을 떠 올리고 실소와 함께, 잠시 이세진 씨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착잡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국을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도록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이세진 씨가 아직 그 나라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긴 ‘단군이래 가장 열린 정부’로 평가 받는 당시 노무현 정부조차도 뚱딴지같이 사과사절을 미국에 보내겠다고 했을 정도니 한국에서만 줄곧 살아온 대학생 이세진 씨가 다민족 이민국가 미국사회를 한국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거 한가지만 보더라도 그 분이 ‘미국에 대한 짝사랑과 고마움’으로 일반상식을 뒤 엎을 정도의 새 사상으로 엮어내기에는 그 인식의 토대가 아직 지나치게 소박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 입니다. 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 용기는 가상하고 문제제기를 할 줄 아는 품성의 바탕은 훌륭합니다.
그는 또 이렇게 묻습니다. “김정일이 핵을 쏘고 300 만이 굶어 죽을 때는 왜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까?” 이거 참 난감한 질문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은 대답할 가치 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질문 자체가 ‘주권회복과 시민권력 운동으로서의 촛불문화제와 전혀 관계없는 ‘범주의 오류’ 일 뿐 아니라 극우의 이념공세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이세진 씨 뒤에 극우 배후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이세진 씨의 뒤에 배후가 있느냐 없느냐 따위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유치한 발상은 한 적도 없습니다. 만일 ‘촛불들’ 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촛불을 끈 뒤 보따리를 싸 가지고 뉴라이트인지 뭔지 하는 데로 이사를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냥 그 분이 그 분 주장을 할 땐 그 분 입장으로 살짝 건너가서 들어주고, 자기 이야기 할 때가 되면 잽싸게 되돌아와 자기 소감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다만 이세진 씨에게는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문제를 북한 당국의 탓으로만 돌리는 신념이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학도로서 과연 타당하고 객관성 있는 자세인가부터 다시 돌아보기를 희망합니다. 제 2 의 6 월 항쟁이 진행되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엉뚱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 합시다. 내가 보건대 예나 지금이나 북한 당국이 가장 바랬던 건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것. 그래서 국가의 안전을 보장 받고 치명적인 금융제재에서 벗어나 인민들의 생활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적어도 핵실험 전까지 북한의 대화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하며 위협과 모욕으로 그들을 좌절과 공포로 몰고 갔습니다. 엄청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작정을 하고 죽이려고 달려드는데도, 그 위세에 눌려 주변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말려주는 나라가 없을 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구책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 탈북자가 쓴 이야기 책 한 권 읽고 이해하고 분노하기에는 한반도 현대사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합니다.
인식의 오류와 편견과 감성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세진 씨가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은 적어도 세상을 사는 태도와 용기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본받을 점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장점이 있으면 칭찬해 주고 들어주고 이야기 해 주는 여유조차 없으면서 우리가 ‘소통부재의 이명박 정권집단’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혼자 떨면서 팻말을 들고 서 있는 한 청년에게 욕설을 퍼 붓고 지나간 분들의 행동은 비난 받아 마땅합니다. 거기다 그런 분들이 낫살이나 먹었다면 좀 한심한 느낌까지 보태지고요.
불통과 독선, 거짓말’을 3 대 국정지표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권 집단과 우리는 모든 면에서 달라야 합니다. 그 자들은 시민들을 공격하기 위해 자기들이 부수고 뜯어놓은 경복궁 기왓장들을 모아 놓고 ‘폭력시위대가 문화재를 훼손했다’고 덮어씌울 증거자료로 활용하는 인간들입니다. 한마디로 인간말종이나 꾸며낼 수 있는 참담한 거짓말이지요. 참담한 거짓말 하니까 또 하나 생각나는데 어제 백분토론에 나와 “맥도날드가 내장과 곱창이 섞인 월령 30 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사용한다는 모두 난생 처음 듣는 쌩구라를 푼 임 모씨 덕분에 뉴라이트가 맥도날드에 의해 고소까지 당하게 생겼군요. 거 참…… 여러 가지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세진 씨의 말대로라면 아마 앞으로도 며칠간 ‘홀로시위’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의 신변안전은 물론이고, 발언권과 시위의 자유를 보장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촛불행진을 하다가 이세진 씨를 보거든 아무 말 도 하지 마세요. 그냥 웃음띤 얼굴로 눈인사하고 지나가세요. 정 무슨 말이 한마디 하고 싶거든 따뜻한 격려의 인사말만 한 마디 하세요.
‘이세진 씨, 힘 내세요. 당신이 혼자는 아니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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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7 05:54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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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우익, 진보보수의 대립으로 한쪽의 승리가 다른 한쪽의 말살을 의미하는 투쟁이 아니라...사회주의 자본주의 대립속에서, 케인즈 고전학파의 논쟁속에서도....공공재등의 사회적 인프라의 가치와 Social Welfare의 후생경제학 등의 개념, 그리고 복지를 접목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간 이들을 부럽게 만들 수는 없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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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7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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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중 촛불을 버리고, 뉴라이트로 가라는 등의 표현은 ...미래 국민의 뜻과 건강을 정책의 최우선적 과제로 삼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역사적 의의가 있는 촛불집회의 순수함을 왜곡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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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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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예를 위해, 미국이 무비자 입국의 전제조건으로 우리에 요구하고 관철시킨 것을 볼까요? 상대국민 프라이버시침해등의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자정보 기재 여권요구라는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위험관리적 측면에서 봤을 때 무비자로 증대되어질 수 있는 위험을 (한국정부에서 원하니...들어주기는 해야 겠는데...그냥 들어주자니....자신들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적절한 위험이 절대 관리가 안됩니다. 그래서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갖고 나온 것이지요)즉, 어떠한 정책으로 모양은 달리해도...자신들이 생각하는 기본적 안전, 국민들의 안전, 위험적 측면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본적 수준은 유지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리수를 띄워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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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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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위험관리적 측면에서 분명 자신의 국민의 안전을 정책적 우선순위에 놨다는 것이고, 그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2MB정권은 미국행 선물 보따리 속에 가시적 성과를 담아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소위, 성과주의와 빨리빨리의 전형적 폐단입니다. 과연, 우리 스스로 님께서 이야기 한 단군이래 가장 열린정부나 민주뿌리 국민의 정부는 이것으로 부터 자유로울까요? 캐나다에 있으니깐 NAFTA를 보지요.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생겨나옵니다. 캐나다나 미국의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법정 소송을...하지만, 이것은 FTA이후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럼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 우리는 이 협약으로 야기될 위험에 대해 우리는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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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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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국민의 뜻을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 가장 큰 장애물인 군부독재타도는 절대절명의 명제였습니다. 그때랑 지금이랑 전략적 목표는 같습니다. 국민의 뜻을 세우는 것 ,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황은 다릅니다. 국민의 뜻을 세우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그것은 어느 한쪽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각 자의 장점을 아우러 우리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번 고국의 젊은 10대들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안전을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 이들은 언제든 이시대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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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6-0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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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견을 보니 아직, 2MB정권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는 단기적 성과에 목을 매달고 있음을 보니 안타까운 것은 분명합니다. 이젠,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서 벗어나 우리의 주제가 정치와는 무관하게 오히려 정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참된 시스템에 맞춰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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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 2008-06-0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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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트님 답글 감사합니다. 큰 틀에서 동의하는 마당에 사소한 이견을 첨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사상과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포섭하고, 그들을 하나로 통합해 나가는 하나의 제도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절차\'입니다. 이 \'절차\'는 상호존중의 토대 위에서 대화와 타협, 경쟁과 승복, 그리고 재도전의 기회보장을 통하여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통합해 나가는 정치기술입니다”
언젠가 노무현 씨가 한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 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989 년 동의대 사태가 일어났을 때 당시 전민련 편집기획실 간사 자격으로 대책위에 참석하러 가서 만나 본 이 분(당시 부산 동구-지역구-국회의원)에게 받은 인상은 ‘똑똑은 한 데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것 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자기 말인지 누가 해 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흠잡을 데 없는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20 년 세월은 이렇게 사람도 한 나라의 문화와 시스템도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던 사람들을 조금씩 다른 의견에 귀를 열게 했고, ‘당파적 신념과 주체’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기회주의적 회색사상’으로 일갈하던 사람들이 다원주의와 상호존중을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social welfare 와 복지 인프라는 경제성장이라는 물질적 토대와 아울러 관용과 민주주의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개념’이 그 사회의 문화적 전제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인데 지난 20 년 간 한국은 문화혁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 한 ‘개념변화’의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87. 6 월 항쟁 이후 집적되기 시작한 사회전반적인 민주주의 의식과 소득재분배 개념, 소수를 보호하는 관용의 공감대 확산이 그것입니다. 지난 10 년 간의 자유주의 정권은 한국 국민 특유의 역동성과 결합해 문화인프라가 시스템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데 조금 기여한 게 사실입니다.
그 길목에서 반동을 만나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구요. 진보와 보수라고 하셨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 안 합니다. 그저 변한 것과 정체해 있는 것 사이의 과도기적 마찰 정도로 봅니다. 정체해 있는 마인드는 비단 이명박 정권이나 아직까지 자신이 극우임을 또는 회색분자가 아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집단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인드 안에도 그 잔재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쓴 목적은 그런 나 안에 있는 옛모습의 잔재를 씻어내려는 작은 노력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을 보면 코뚜레를 꿴 채 앞으로 가지 않으려고 궁둥이를 뒤로 빼고 네 발로 버티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멍청한 소를 연상하게 합니다. 끄는 힘이 너무 강해 굽에 마찰을 일으키며 조금씩 앞으로 끌려가고는 있는 형국인데, 참 점입가경입니다. 문제는 그가 소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입니다.
본문에서 제가 오해의 소지를 남길만 한 표현들을 했나 봅니다. 다 제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죄송하다는 것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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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 2008-06-08 00:16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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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좀 퍼갑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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