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필비님이 올린 글을 보고 좀 자세히 알아 보았습니다. 캐나다 정부가 가끔 훌륭한 일을 할 때가 있는데, 김경환 씨 망명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오늘은 캐나다 정부의 인도적인 결정을 뒤늦게나마 지지하는 의미에서 국가를 배경에 넣었습니다.
입대를 앞 둔 대한민국 국적의 성소수자 한 명이 캐나다 난민심사위원회 (Immigration and Refugee Board of Canada) 로부터 난민자격을 인정 받고 영주권을 취득한 사건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어제 나온 뉴스이긴 하지만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대서특필되고 있으니까요.
먼저 이 사건이 일어난 게 지금으로부터 2 년 전인 2009 년 9 월인데 이제야 알려지게 된 이유가 좀 궁금했습니다. IRB of Canada 사이트부터 검색해보았어요. 난민신청요건에 대한 기준은 공개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난민신청자의 신상보호차원에서 그런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본인이 스스로 판결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외부인은 알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인의 캐나다 망명 사례는 남편으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 당해온 여성 한 분 이외에는 없습니다. IRB에서 공개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지요.
김경환 씨의 망명 신청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캐나다 이민국 난민심사위원회가 조목조목 적시한 내용은 통계자료와 구체적인 학대 및 처벌 사례를 근거로 하고 있어 할 말을 잊게 만들지만 거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건 다 아는 이야기같고......
딴 이야기나 좀 더 해 볼까요?
왜 캐나다가 내전국가나 독재국가도 아니고 같은 OECD 가입국인 대한민국의 병역의무자의 망명을 받아들였을까 하는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과는 확연히 다른 이 나라의 성소수자 문화를 먼저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 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습니다. 지난 2005 년 하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동성결혼 합법안을 통과시켰지요.
결혼이란 인격과 인격의 특별한 관계를 사회가 공인해 주고 축하하는 제도이지 반드시 자녀의 생산을 전제로 해야 허락 받을 수 있는 타율적 강제를 수반하는 제도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결혼의 사회적 개념에 대한 재정립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그러니까 2005 년 여론조사 통계를 보니까 전체 유권자의 약 60 퍼센트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고 있고 79 퍼센트는 동성간의 결합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동성결혼 합법화를 가장 반대했던 그룹은 한국계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캘거리에 있는 모 대형(?)교회에서는 반대 서명운동도 벌였습니다. (그 교회 이름을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Celebrating Our Diverse Sexual and Gender Identities
동성애자들의 축제에 참가한 비동성애자 (표현이 이상한가요?) 단체의 축하 현수막입니다. Sexual 과 Geder를 구분해 놓은 것이 특이하지요?
Sexual 은 자연적으로 부여 받은 性을 Gender 는 사회적으로 결정된 性을 의미하겠지요.
캐나다에서는 해마다 6 월부터 7 월 사이에 열리는 축제가 있습니다. GAY & LESBIAN PRIDE FESTIVAL이 그것입니다. 토론토, 밴쿠버, 몬트리올, 캘거리, 오타와, 에드먼턴, 위니펙 등 대도시에서는 물론이고 전국 22 개 도시에서 거리행진을 비롯한 각종 전시회 와 공연 등 대규모 문화행사로 진행됩니다.
이 행사에는 시장과 시 경찰국장이 참석하는 시청에서의 정식 축하행사를 비롯해서 결혼식도 종종 열립니다. 여기에서 열리는 결혼식이란 물론 동성결혼식이겠죠^^ 이 행사에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가족 동반으로 대거 참여합니다. 사실 이성애자가 수적으로는 월등히 많이 참여합니다. 저는 5 년 전쯤 당시 아들 아이와 유학 와 있는 조카 딸아이를 데리고 행사장에 가 본 적이 있어요.
암튼 성소수자에 대한 정서와 문화가 이토록 다르니 신청자 김경환 씨가 호소한 내용과 IRB 측에서 나름 조사했을 한국 군부대내에서의 동성애자의 위상과 현실에 대한 자료를 접하고 그를 난민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 입니다.
성소수자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열악한 처지에 있는지는 이 사건이 밝혀진 후 국방부에서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성명에서부터 잘 설명해 줍니다.
’동성애 행위는 군기문란이라 처벌대상이고 동성애 성향 자체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발표했는데, 이 말이 자기들 딴에는 합리적인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성명을 발표한 사람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한심한 발언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수령님의 은덕으로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있다’ 는 소리에 필적할만한 놀라운 발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차라리 군형법 제 92 조에서는 그냥 넓게 성추행이 범죄이며 친고에 의해서 처벌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던데, 그럼 군 형법에 나온대로 동성에 의한 것이든 이성에 의한 것이든 성추행은 범죄다 그냥 이야기하면 좋았을 것을, 동성애 행위를 강조하는 바람에 그런 이상한 발언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지요. 이 군간부의 발언은 은연 중 동성애 행위와 성추행을 동일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아울러,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색낼 이야기가 아니고 당연한 소리지요.
암튼......
국가의 법률이나 관습과 개인의 천부적 기본인권이 충돌할 때는 개인의 기본인권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원칙 같습니다. IRB 는 이 원칙을 준수한 것이니만큼 저는 IRB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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