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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수사관이 된 심정으로......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4986 작성일 2011-12-23 19:12 조회수 3073

 

12 월 한달 내내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는군요. 오늘도 내일도 영상 7 도.  

Turning Point 를 며칠 지나서 그런지 해도 약간 길어진 느낌이구요. 봄이 바짝 다가오는 듯 하기도 합니다.

착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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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몇 권 빌려 왔습니다. 당분간은 이 책들을 읽으며 여가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따라서 이 게시판에는 자주 나타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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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취미가 아닌지라 학교 다닐때도 도서관에 코빼기를 비춘적이 드문데, 한 번 재미를 붙인 건 또 끝장을 보는 집착도 있습니다^^  

어쨌든 오랜 만에 도서관에 방문해서 책을 빌린 기념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책들 외에 Cities of God 의 저자 로드니 스탁의 'Triumph of Christianity' (기독교가 세상을 접수하다) 와 Thorore Jennings 의 "The Man Jesus loved' (예수의 보이프랜드) 를 따로 주문했습니다. 요 두 개는 Public Library 가 소장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300 Km 떨어진 캘거리 대학교의 협조를 받아 공수해 준다고 했습니다.

영어 책 보다는 한국어 책을 읽고 싶지만, 아쉽게도 소개한 네 권 중 세 권은 한국어로 번역이 안 된 것들 입니다. 이런 경우 할 수 없이 원서를 가지고 낑낑댈 수 밖에 없지요.

모국어가 아닌 원서를 읽을 때 발생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개념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책 읽는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에 중도에 독서를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을때는 일종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독서모임을 구성하는 것이 좋기는 합니다.

암튼 이번에도 도중에 집어치울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의미에서 여기에다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하고 시작합니다. (게시판을 이런 목적으로 이용하는 거 실례인가요?) 암튼 혼자 읽더라도 저자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자세를 견지하려고 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네 권 중 세 권은 기독교의 초기 형성과정을 다룬 책들 입니다. 유대교의 보잘 것 없는 sect (종파)에 불과했던 초기 기독교가 도대체 무슨 운수가 대통했길래 오늘날에 와서 전 세계 인구의 40 퍼센트를 아우르는 거대종교로 대박성장을 한 것인가, 이거야 말로 미스테리한 주제가 아닐 수 없지요.

디아스포라 (해외교포)를 대표하는 바울이 그의 특기인 '극강구라빨'을 무기로 예수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히브리 국내파를 제압, 격파하고 빠른 속도로 조직을 접수해 나가는 과정 역시 흥미진진한 역사이고요.

전공과 종교를 떠나 기독교 문화에 둘러싸여 있는 사회에 사는 sarnia 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싶은 주제이고,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 쯤은 읽어볼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독교를 예수가 만든 종교로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이 만든 종교입니다. 원래 예수는 종교적 캐리그마에 관심이 별로 없던 사람이었지요. 뭐. 예수란 사람이 실재했었는지 여부도 학자들마다 딴 소리를 할 만큼 알리바이 (존재증거)가 불충분하긴 하지만 어쨌든......  

바울이라는 사람은 조직과 이론 투쟁에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난 사람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는 그가 쓴 편지인 로마서 1 장 1 절에서 부터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사도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선언을 하고 들어갑니다. 사실 이 말은 예수를 3 년 동안이나 따라다닌 제자들 입장에서는 기절초풍을 할만큼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소리일 것 입니다.

로마서와 함께 바울이 직접 쓴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하는 갈라디아서에서도 제 1 장 부터 자신을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 정의합니다. 1 장 17 절에서는 자기가 예수와 직접 만났던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예수와 함께 했던 사도들의 권위를 격하시키기 위해서였을 것 입니다.

바울은 신약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그 많은 편지 어디에서도 역사적 예수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만난 적이 없는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이 대목이야말로 바울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결정적으로 밀리고 꿀리는 부분이었을 것 입니다. 뭐 이건 순전히 제 추측이지만 말이죠.

마지막 책 'The Man Jesus Loved' 는 네 복음서의 성서학적 분석을 통해 예수가 게이 (동성애자) 였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책 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Theodore Jennings 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가 게이였느냐 아니냐 여부 가 아니라 동성애란 기독교적 윤리로도 재단받을 이유가 없는 인류의 자연스런 성정체성 또는 성적성향의 하나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는 것 입니다.

이 책은 올해 '예수가 사랑한 남자' 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어 한국 서점에서도 구입할 수 가 있습니다. 에드먼튼 서점에서는 이 책 가격이 45 불인데, 한국 서점에서는 (번역본이) 1 만 6 천 원 (14 불) 이군요. ㅎㅎ

예수가 게이였다는 압도적인 심증을 바탕으로 이 놀라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제닝스는 시카고대학 Theology Seminary 에서 성서학을 강의하는 교수입니다.

평신도든 교역자든 교회 다니는 분들이 제닝스 교수와 같은 용기와 상상력을 가지시면 어떨까요? ^^

교류와 친교의 현장에서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와 봉사자로서의 미소를 잃지 말되,

성경같은 고대문서를 읽을 때는 crime scene investigation 에 임하는 수사관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 참 멋지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초기 기독교 형성사가 범죄현장이라는 말이 아니고, 그만큼 긴장된 자세로 면밀하고도 철저하게 조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종교에 자기 영혼을 건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한 자세일 것 같은데...... 

한 예로 그 수사대상에는 요한복음 20 장 27 절 같은 문장도 포함됩니다. 예수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고야 믿겠다는 토마에게 예수가 면박을 주었다는 대목은 아무래도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나고 합리적이었던 인물로 추정되는 토마를 경계한 헬라파 유대인들이 나중에 가져다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정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Cities of God 의 저자 Rodney Stark 이 이 책에서 한 말이 참 인상적 입니다.

Reality acually occurs. The historian's task is to discover as acurately as possible what took place. The search for truth (discovering truth 가 아니라) and the advance of human knowledge are inseperable: comprehension and civilization are one.

그럼 당분간 안녕히들 계셔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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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2-2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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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잘 안다신다고 핀잔드릴려고 했는데, 클립보드님은 예수"님"을 참 좋아하시는 것같아요. 신학자 Paul Tillich는 의심은 불신앙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의 존재론적 탐구를 하게 한다 하였고, 안병무 선생은 성서는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질문없는 신앙이 바른 신앙일 수 있겠습니까?

제가 Rodney Stark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캐나다에 와서 부터입니다. 저의 싸부께서 만난 첫날 중고책방에서 이 아저씨의 [Sociology]를 소개해서 사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사회학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책은 당시 Six Edition이었습니다. 현재 2006년에 나온 Tenth Edition이 최종판인 것같습니다. 나이가 70이 훨 넘었는데도 이분은 전혀 정력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 책이 개론서이긴 하지만 다른 개론서에 비해 지루하지 않고 정말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탁은 UC 버클리 출신이라고 하던데, 당시 사회학의 거장 Charles Glock의 제자로서 스탁과 함께 동료들이 대거 배출되었다더군요. 그
이후 글록의 제자들이 종교 사회학계를 주름잡게 되었다죠. 스탁은 그의 동료 John Lofland와 함게 최초의 미국의 기지인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통일교의 문선명목사의 파송으로 1950년대 말 미국 최초로 통일교 선교사로 온 김영운씨의 통일교 그룹을 참여관찰자로서 연구한 사람이었습니다. (김영운 교수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조직신학 교수였는데, 이화여대생들이 갑자기 학교에 안나와 당시 김활란 총장의 요청으로 통일교를 방문하여 알아 보러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통일교 교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었죠. 김영운 교수는 토론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스웨던 보그를 연구했습니다. 문선명 목사도 스웨덴보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자료는 별로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그의 이름은 스웨덴보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웨덴보그는 저명한 과학자였다가 헷가닥해서 신비주의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쨌든 스탁과 로플란드 두 사람이 공동논문을 냈는데, 당시에 챨스 글록의 박탈이론 (deprivation theory)에 경도되어 있어서 그렇게 연구를 했는데 10여년이 지날 무렵 하늘의 계시를 받았던지 박탈이론을 점검하다가 이 이론을 버리고 social network이론으로 선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탁의 어느 책를 보든 이 이론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로플란드 자신도 이 통일교 연구 결과물인 [Doomsday Cult: A Study of Conversion, Proselytization, and maintenance of Faith] (1966)를 냈는데 초기 통일교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사실 신종교 학계에서 통일교를 모르면 발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위에 언급한 스탁의 conversion의 social bond 또는 social network이론이 확립하게 한 단쳅니다. 그리고 박동선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도 반통일교 운동이 무지하게 일어났었는데, 이 통일교 땜시로 anti-cult movments 에 대한 이론적 확립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도 반이단운동가들이 통일교 비판으로 밥벌이 제공도 받았습니다. 통일교 본부에 가보면 그 동안 문선명 목사 설교와 강연을 모아 책으로 된것이 300권 정도 됩니다. 조선왕저실록은 아니겠지만 나중에 통일교 연구가들이 있다면 엄청힘들겠죠.

각설하고, 스탁의 많은 책 중에서도 William Sims Bainbridge와 공저한 [The Future of Religion: Secularization, Revival, and Cult Formation]와 [A Theory of Religion]은 앞으로 교회, 종파, 신종교 이론에서 이 책을 넘가할 책이 안나올 것같은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Roger Fink와 공저한 [Acts of Faith:Expalining the Human Side of Religion]은 위의 두 책이 무르익어 재정리한 것처럼 완숙미나 넘치는군요.

물론 [The Rise of Christianity]을 오래 전 썼었지만 왜 최근에 기독교와 관련된 책을 쏟아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해마다 한권이 나오는데, 쓰기는 커녕 읽고 따라가기도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옛날엔 완전히 불가지론자(Agnostic)였다고 하는데 최근에 와서 헷가닥해서 그런지 불가지론자라 아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저는 그 분과 어느 모임에서 20분정도 만나서 이야기 한적이 있는데 말끗마다 불쉿이라는 말을 자주 써더군요.

스탁은 이른바 자유주의적 신학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타입니다. 철저히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신학적 진술보다는 현상 자체에 관심을 가진 분입니다. 그러다보니 급성장하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좋아하기도 합니다. 몰몬교회에서도 스탁한테 통계자료 다 줬다더군요. 그 결과물이 바로 [The Rise of Mormonism]입니다. 앞으로 프로젝션 해보면 40년 후면 미국의 장로교단을 몰몬교가 넘가하게 되면, 90년후면 어쩌면 불교보다 수가 더 많아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엔 스탁의 영향을 받고 스탁의 연구 성격과 거의 비슷하게 하고 있는 사람이 알버타의 작은 도시에 있는 레쓰브리지 대학의 Reginald Bibby라는 분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종교 지형을 알기 위해서는 비비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캐나다의 종교 통계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비비가 하고 있습니다. 비비는 이탈리아 계인데 자그마한 사람입니다. 캘거리에도 가끔 대중강연을 합니다. 비비도 보수교회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종교 통계는 아무래도 숫자가 올라가는 종교 집단이 좋아하니까요. 비비의 대표적인 책은 [Restless Gods] (바쁜 신들)입니다. 최근에 나온 책은 [Beyond the Gods & Back]가 있습니다. 사회학자는 아니지만 역사학자로는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 Philip Jenkins가 있습니다. 그의 책 [Hidden Gospels: How the Search for Jesus Lost Its Way] 재밌고, 미국의 신종교 역사서인 [Mystics and Messiahs: Cults and New Relgions in American History]가 무척 재밌습니다. 유럽에서의 최근 종교부흥에 대한 책인 [God's Continent: Christianity, Islam, and Europe's Religious Crisis]도 주목할 만합니다. 제가 젠킨스를 알게 된 것은 한참 카톨릭 사제들의 pedophilia에 대한 것으로 한국의 제 친구와 논쟁을 할 때, 미국의 어느 기사에 젠킨스를 인터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유명하게 한 책 [Pedophiles and Priests] 때문이었죠. 이 책을 아는 사람에게 빌려줬는데 차마 돌려달라는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클립보드님과 지난 번 대화하면서 역사적 예수 문제를 더 개관을 하고 싶어서 저도 책 몇 권 더 abebooks.com으로 주문했습니다. 관련된 책만 열거하면
Saint Saul: A Skeleton Key to the Historical Jesus
Christianity and Evolution
The Oriental Religions in Roman Paganism.
THE TWILIGHT OF CHRISTIANITY
입니다.

동성애 부분은 앞으로 시간나는대로 정리하면 책으로도 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에 언급하신 예수가 게이였다는 주장은 바트 어만이 대중 강연에서도 언급하더군요. 어만은 여기에 동의하지는 않고 슈바이쩌를 따라서 예수를 묵시론자로 보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주절주절 길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2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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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에 안쓰고 이 댓글 박스에 써서 올렸더니 시간 경과가 된 탓인지 위의 글이 제가 올리지 않은 글로 나오는군요. 즉 X 아이콘이 사라져서 위의 글을 삭제해서 주정해 올릴 수가 없습니다. 오타가 많은데 이해해 주세요. 원래 저는 으나 어도 잘 구분 못합니다.

스탁은 원래 기자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어는 평이하고 명쾌합니다. 제가 글쓰기에 가장 모델로 삼고 싶은 분입니다. 그는 자신의 [The Triumph of Christianity]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Finally, I have continued to write for the general reader, based on my belief that if I can't say it in plain English, it must be because I don't understand what I am writing about" (pp. 2-3).

영문학자들이 글을 제일 어렵게 쓰고 있는 것 같더군요. Stanley Eugene Fish 라는 영문학 이론가가 있는데 그의 "interpretive communities"라는 개념을 이해해 보려고 몇 년전 도서관에서 빌려 봤는데 난해하더군요. 철학책은 더하죠. 여기 Grade 12의 Language Arts 시험문제에 나오는 시를 이해할 정도면 엄청난 독해실력일 겁니다. 한국의 고 3 국어도 그렇겠죠? 책 읽다가 모르면 건너 뛰면 됩니다. 번역은 건너 뛸 수가 없어서 뽀록이 나죠.

clipboard  |  2011-12-2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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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작별인사라 댓글이 안 달릴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님이 댓글을 주셨네요. 뭐, 작별인사를 하도 많이 해서 이제 양치기 소년처럼 되어 버렸지만 말이죠.

예수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예수가 로마 이후 기독교에게 그 이름만 도둑맞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수가 없어서 말이죠. 예전부터 초기 교회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제 전공도 아닌 부분을 따로 시간내서 책 구하고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아 미루고 있다가 이제부터 그 주제에 대해 취재 겸 수사’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따라서 신학적 입장이 개입된 글보다는 현상에 집중한 자료가 더 유용할 수 있을 것 같군요. Criminology 를 공부할 때도 스탁이란 사람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wiki에서 rise of Christianity 에 대한 내용을 축약해 놓은 정보가 전부이지요.

A New History of Early Christianity 는 로드니 스탁 책 옆에 있길래 서문만 읽어보고 집어왔어요. 저자는 Charles Freeman 인데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더군요. 사회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인 셈입니다. 스탁은 사회학자니까 현상과 통계를 중요시하는 게 당연할텐데, 역사학자는 비숫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제미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뭐 이제 시작했지만) 두 책을 이 책 먼저 읽고 저 책 나중에 읽고 하는 게 아니라 이거 봤다 저거 봤다 같이 읽고 있어요.

예수가 게이였는가? 이 문제는 언뜻보면 보수 기독교인들에겐 망발처럼 들릴 수 있지만 별로 놀라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게이였으면 어떻고 아니었으면 어떻겠어요. 예수라는 사람이 실제 존재했다고 하다라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 아니 보수 기독교인이 알고 있는 예수와는 영 딴판인 사람일 수도 있는데요.

제가 처음 듣기로는 예수가 게이라는 주장을 한 사람이 Cambridge St Mary 성당에서 시무하는 교구장 Montefiore 였는데, 이 사람이 영국 옥스퍼드에서 한 어느 연설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고 하지요.그 외에는 아는 바 없습니다. Jennings교수는 주장을 했다기 보다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행적을 분석해서 어떤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고대사회에서 벌어진 동성애 현상과 예수가 이를 나쁘게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독교에 퍼져 있는 동성애 혐오증을 비판하고자 한 것 같고요. 제닝스는 2003 년에 이 책을 (The Man Jesus Loved)를 썼는데 한국에는 올해 번역 출판됐습니다. 교보에서 이 책 본 것 같은데 왜 안 사가지고 왔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가요. 저자는 한국에 와서 강연도 다닌 모양입니다. 실제 교회(제가 알고 있기로는 명동 향린교회)에서도 강연을 했고요. 이 사람은 시카고대에서 성서학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흠, 노래가 마음에 들어 올렸는데, 제 글 제목이 맘에 안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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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수사 결과만으로도 바울이 승리할 수 밖에 없었던 물질적 정황증거가 속속 드러나는데, 지중해안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대도시들과 그 대도시들에 들어서 있는 디아스포라 시나고그들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군요.

희한하게도 당시 팔레스타인 안에서 히브리어를 사용하며 사는 유대인보다 지중해안 대도시들에 나가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쪽수가 몇 배나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히브리어가 아닌 헬라어를 사용했던 모양이지요? 당시 통계에 의하면 로마제국 인구의 10~15 %가 유대인이었고 그 유대인 인구의 90% 가 팔레스타인이 아닌 지중해 대도시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중해안 도시들에 넓게 퍼져 있던 디아스포라 시나고그에는 유대인 뿐 아니라 현지 외국인 (이방인이라고 배척하던) 들도 모두 끌어들였는데 여기에는 헬라어를 아는 로마인들 (당시 로마인의 주 언어는 라틴어) 이 기웃거리기 시작하는군요. 이 사람들이야 말로 아주 중요한 파워그룹인데...... 흠, 이제보니 바울의 주 선교대상은 이방인이 아니라 우선 엄청난 쪽수를 자랑하는 헬라어 사용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던 모양이군요. 거기에 헬라어를 사용하는 교육받은 로마인들 즉 기독권 파워집단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가 지배계급으로 변천하는 맹아가 벌써부터 포착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과연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예측하고 이방선교활동을 기획 한 것일까요? 글쎄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수사를 더 진행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럼, 충성! /0

philby  |  2011-12-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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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어떻게 세계적 종교가 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헬라어 라는 공통된 언어, 헬라어가 지금으로 치면 영어에 해당되지 않을까... 헬라어가 세계적 언어가 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의 토목기술,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도로, 그 도로가 식민지의 공물 현물세 수송로였겠지만 기독교가 전파되는 부수적 효과도 있었을듯 합니다.

바울도 여러가지로 능력(?)있는 사람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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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여러가지 면에서 예수의 다른 제자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재죠. 헬라어 능통하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쪽수 많죠. 거기다 극강구라까지...... 한마디로 게임은 일치감치 끝난거나 다름 없었던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기독교의 세계점령 사건'의 가장 중요한 참고인으로 바울을 소환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같습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언뜻 왠지 영어를 잘 못 할 것 같은 대한민국 한기총 소속 목사들의 장래가 몹시 염려되기도 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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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교육 수준은 상위 10-15% 에 속했고, 매우 정교한 글을 썼으며, 당시의 수사학 공부를 한 것으로 보이며, 당시의 상황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최상의 엘리트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상당할 정도의 고등교육을 받은 것은 분명하죠. 강구라라는 표현은 지나친 표현이구요. 흔히들 바울의 선교 여행이 이방인 개종이 중심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울은 이미 확립된 가정 교회 등에 가서 조직을 강화시켜 주고, 교회 설립에 도움을 주는 facilitator 였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장은 바울의 신학적 빼어남도 있었지만, 오히려 교회가 다른 종교조직에 비해서 사회봉사에 앞장서고 교인성원간의 돌봄이 다른 조직을 넘가했으며, 또 유대민족이라는 한정된 민족적 신앙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조직에 대한 commitment가 엄청 컸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것이 바로 로드니 스탁의 [The Rise of Christianity]였습니다. 이른바 Paganism의 demise는 기독교 박해 때문에 그랬다고 하지만 사실 이교는 조직에 대한 종교적 commitment가 거의 없었습니다. 뒤르깽의 사회학적 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이교도들(Pagans)은 회중의 자발적 참여의 단계라고 하는 church 형의 조직을 갖춘 것이 아니라 client 중심의 느슨한 조직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국가적 지원을 받고도 기독교의 조직력에 훨 밀린 것이죠. 영지주의도 그런 경우죠. 영지주의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이 현재의 New Age Movements입니다. 이것은 조직상으로는 지리멸렬합니다. 이것은 cultural fads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직 또는 집단력을 갖춘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죠.

기독교는 콘스탄틴이 공인한 시점에는 이미 전체 인구의 30-40 %를 차지한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공인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기독교인의 인구가 성장했었습니다. 그런 내용을 담은 것이 스탁의 [The Triumph of Christianity]죠. 기독교가 신종교 (new religion) 단계 때부터 성장의 속도와 대비되는 것이 몰몬교의 성장입니다. 그것을 다룬 책이 스탁의 [The Rise of Mormonims]입니다.

한국 불교의 근대화는 자체 개혁도 있었지만 기독교의 교회 조직에 엄청 영향을 받았습니다. 원불교는 더 하구요. 부활절, 성탄절, 장례식, 결혼식에나 참여하는 현재 서양인 교회와는 달랐다는 것이죠. 클립보드님 같은 분이 교인되면 교회 발전이 거의 안되겠죠.^^

바울 당시 그리이스어, 즉 헬라어가 lingua franca 였습니다. 알렉산더의 장군이었던 프톨레미 1세 (Ptolemy I)가 프톨레미 왕조를 만들었고, 그의 아들 프톨레미 2세가 285 B.C에 왕위 계승을 하였는데 그는 배움을 장려한 위대한 통치자였습니다. 이 왕조의 수도인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큰 도서관으로 유명하여 지중해 지역의 배움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무렴 흩어진 유대인들(the Jews of the Diaspora)은 그리이스를 사용했으며 많은 그리이스 문화를 흡수한합니다. 알렉산더 사후 왕국이 세개로 쪼개지는데, 그중 셀류시드 왕조(the Seleucids)는 시리아와 페르시아를 지배합니다. 유다지방은 거의 이 셀류시드왕조의 지배를 받습니다. 마카베오 반란도 이 왕조를 대항한 것이었습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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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탁의 또 다른 재밌는 해석은 로마 제국에서 이교 (Paganism)가 주로 농촌이나 시골에 많이 퍼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pagan"이라는 단어가 라틴어 "paganus"로서 "rustic" (시골스러운), "country person"(시골뜨기)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스탁의 책 제목 "Cities of God"에서 바울의 기독교가 처음부터 도시의 종교였다는 것입니다. 강남 기독교 보시죠. 한국의 근대화는 기독교의 근대화와 맞물립니다.

스탁은 교회형과 고객중심형으로 나누는데, 그가 여러군데서 말해서 다 기억은 할 수 없고 그의 책 [One True God: Historical Consequence of Monotheism), p. 44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디어를 뒤르깽의 [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에서 가져왔습니다. 저한테 이책의 별도 copy가 하나 더 있는데 필요하면 그냥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책 pp. 39-44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스탁도 위대하고 뒤리깽도 위대합니다. 저는 이 내용보고 눈이 번쩍 뜨였었습니다. 한국의 무속은 전형적인 clienteles에 기반한 종교입니다. 한국 불교도 여전히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스님이 장례식을 집례하거나 초파일이 되면 시주공양하는 불교인들은 조직력이 기독교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불교 조직인 봉은사의 주지 명진스님을 쫓아낸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그 졸개들은 멍충이들인 셈이죠.

뒤르깽은 또 이야기합니다. "There is no church of magic." 그는 주술과 종교 (magic and religion)을 구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The magician has a clientile, not a Church,and his clients may have no mutual relations, and may even be unknown to one another. Indeed, the relations they have with him are generally accidental and transient, analogous to those of a sick man with his doctor." 굉장한 사회학적 진술 아닙니까? 고객형의 종교에 대해서 뒤리깽의 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there are no durable ties that make them of a single moral body." 그래서 제가 일전에 도킨스나 무신론자가 아무리 신은 없다고 떠들어봐야 종교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한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나마 되킨스가 강연다니면서 어느 정도 결집을 했지만 개인화된 무신론자가 결집될 확률이 적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의 결집을 더 강화시켜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정교는 맑스의 무신론을 이겼고, 중국의 문화 혁명의 경험은 기독교의 내적 결십을 더 강화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위에서 클립보드님 교회 잘 안다니신다는 것을 지적한 것은 신학적 진술이 아니라 사회학적 진술이었습니다. 좋은 성탄절 되십시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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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비님 가족과 저녁식사 하고 방금 들어 오는 길인데 글을 남겨 주셨군요.

제가 2 년 전 쯤에는 바울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즉, 사도바울은 지식인답게 사고가 논리적이고 당시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는 것.그 증거로 이방인과의 식사자리에서 편견을 노출한 베드로에게 심한 말로 면박을 줄 만큼 그의 진보적인 입장에 대한 스스로의 신념도 확고했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이방 선교를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그답게, 다양한 문화를 상대로 선교활동을 벌이다 보니 타 문화를 배려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을 이야기 하기도 했지요.

심지어는 위서 논쟁이 일고 있는 디모테오 전서(2: 9-15) 까지 인용하며 거기에 나타나 있는 그의 여성비하 발언이 증오범죄 수준이라는 느낌도 있는 반면에 당시 시대의 여성관에 비추어 보면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듯’이라는 표현 역시 나름의 고대판 feminist 운동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구요. 이어지는 ‘여자는 가르치지 말며, 잠잠할 것이며 어쩌구 하는 말은 술렁대는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보수주의자들의 불편한 심기를 위무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에서 나온 ‘여성비하’ 발언이 아닐까 나름 상상한 적도 있지요. 꿈보다 해몽일지 모르고 그게 위서라면 다 부질없는 상상에 그치겠지만 제가 바울을 미워하기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스에서 그들의 신들을 하나님에 비유하면서 선교한 바울의 지혜를 생각하면 그가 현명하고도 유연하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후대의 기독교인들이 사도바울의 이런 장점은 하나도 본받지 않고 교리와 관련된 그의 나쁜 점만 그것도 확대해서 취한 것이 오늘 기독교의 비극을 가져오게 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히기도 했고,. 바울이 오늘 선교활동을 했다면 “스님들도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라든가 “ 석가는 불교를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다녔을 까요? 라고 질문한 걸로 봐서 그때 아마 한국의 보수 교회 목사들의 타종교 비하발언이 있었고 그들의 타종교 비하발언을 비판하기 위해 바울의 열린 자세를 인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사람을 놓고 상황과 주목대상의 컨텍스트에 따라 이렇게 평가의 의미가 각각 달라질 수 있다는 거 새삼 신기합니다.

AD313 즈음해서 로마전역의 기독교 인구 중 황실을 포함한 상층부의 비중이나 역할도 중요하고요. 아래 스탁이 언급한 헬라파 유대인외에 대도시 중상류층에 어떤 ethnic group 이라는 명시는 없어도 중상류층 로마시민들이 기독교 운동의 중심세력에 대거 포함되는 것 같군요. 스탁은 기독교 운동이 하층부로부터의 운동이라는 재래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 같구요.

Stark argues that, contrary to popular belief, Christianity was a movement not of the lower classes and the oppressed, but of the upper and middle classes in the cities and of Hellenized Jews. Stark also discusses the exponential nature of the growth of religion, and why hence the speed of Christianity is not as miraculous as might be thought.

그나저나 나는 지금 사도바울 이라는 인물 개인이 어떤 사람이었을까부터 궁금합니다. 회심의 동기가 무엇인지, 사흘만에 회심한다는 게 가능한지? 심지어 그 사람이 로마 시민이 맞는지…… 사도행전 22 장 28 절과 29 절에서는 그가 로마 시민권자라고 진술했지만, 같은 사도행전 21 장 39 절에서는 자기가 현재의 터키 지방인 타르소스 시민이라고 엇갈린 말을 했거든요. 당시 로마가 이중국적을 인정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게 맞는 것 인지? 경우에 따라 로마인 행세를 하기도 하고 비로마인 행세를 하기도 한 것 인지? 그가 로마군에 체포되었을 때 자신을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라고 했는데 이는 로마 시민으로 위장해 법적인 보호를 구하려고 지어낸 말은 아닌지? 등등 이제는 별게 다 궁금해 집니다. 나타난 현상도 중요하지만 개인 동기가 납득이 되는 게 먼저이니까요. 결과론적 모랄 리즈닝만으로는 부족한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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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정이 안되어서 따로 인사를 드립니다.

성의있는 댓글과 답변 고맙습니다. 성탄절이군요. 즐겁고 의미있는 성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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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딴 이야기인데,

작년엔가 크리스마스 이야기하니까 12 월 25 일이 예수 생일 아니라고 시비거는 분이 있던데, 여기 그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이 세상에 호적 잘못된 사람이 비단 예수 선생님 뿐은 아니니까 그냥 넘어 갑시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2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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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동시에 글이 올라갔군요. 디모데서는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바울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 져있습니다. 이것도 스탁이야긴데 (저는 거의 스탁 신도 수준이죠?), conversion theory에서 바울처럼 급격하게 개종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이야기를 역시 드라마틱하게 써서 그렇지 그는 몇 년간 기독교인과 교류하면서 서서히 기독교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점진적 개종). 바울이 행전엔 서쪽으로만 갔었는데 본인은 오히려 동쪽으로 갔다는 말도 나오지 않습니까? "바울이 동쪽을 간 까닭은?" 글쎄요. 제 생각에 바울이 자기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도 싶습니다. 사실 처음엔 동쪽 기독교가 더 활발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마니교나 네스토리우스 교가 중국에까지 진출한 걸보면, 우리는 지나치게 서구 기독교에만 한정된 지식을 갖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Philip Jenkins의 [The Lost Christianities] 같은 책도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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