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꿈편에 보내주신,
두루말이 서한(書翰)을
펼치니이다
꽃내음만 그윽한
글자 한 자 없는 백지이지만,
향기 두른 꽃마다의 거울인지요
그 안에서
반가사유(半跏思惟)의
미소 같은 그대가
나를 바라봅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그 모습이 흐릿해지면
오래 전 어느 세기(世紀)에
홀로 영(嶺) 마루 넘던,
내 영혼의 아득한 옷자락만
꿈처럼 넘실댑니다
다만 지금은
서로 보이지 않을 뿐이라
오늘도 말씀하시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그대의 따뜻한 체온에
이 차가운 몸을 녹이고 싶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중천(中天)의 하얀 그리움이
손톱 안에 반달로 깃들듯
그렇게
곧 오시겠다 말씀하지만,
혼자서 깨어날 길 없는
오랜 외로움만
한 줌의 재가 되어,
백지보다 더 하얗게
쌓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