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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ipboard (sarnia) 수사본부장 입니다 : )
sarnia 수사관: 오해를 막기 위해 먼저 밝혀 둘 것이 있습니다. 이번 수사의 주제는 ‘기독교 세계점령사건’ 입니다. 따라서 sarnia 수사본부의 수사과제는 1 세기 경부터 4 세기까지 발생한 기독교와 관련된 사건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증명같은 것은 본 수사관의 업무가 아닙니다. 본 수사관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수사대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왜냐? sarnia 는 수사관이지 점쟁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아무리 어려운 철학 사상도 학습과 토론을 반복하다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칸트의 윤리학에 나오는 정언명령 (Categorical Imperative) 이나 가언명령 (Hypothetical Imperative) 같은 개념들도 칸트철학에 대한 반복적인 학습과 토론을 통해 “아, 그렇구나” 하는 납득을 하게되고 나아가 왜 칸트가 공리주의에 대립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것 이지요.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칸트의 철학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역시 어려웠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를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웠으니까요. 삼위일체는 영어로 Trinity 라고 하는데 라틴어 Trinitas에서 온 말 입니다. 성부인 하나님과 성자인 예수와 Holy Spirit 이라고 하는 성령이 각각 동등한 본질과 위격으로 존재하며, 신의 본성이 내재되어 있는 각각의 개념이되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유일실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 이론입니다. 근데 이론이라고 하기에는 좀 민망한 것이, 방금 본수사관이 위에서 표현한 세 줄짜리 문장이 그 이론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편적인 사고력과 윤리감각을 가진 본 수사관이 열 번을 반복해서 생각하고 숙고해도 그 이론이 주장하는 바를 이해조차 할 수 없다면, 그 이유란 단지 그 이론이 어렵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이론 자체가 엉터리이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 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가 어떻게 거의 모든 기독교 신학의 핵심적인 정통이론으로 등장할 수 있었는지 그 내막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로마 황제 콘스탄틴 1 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는 바람에 수사본부로 압송 중 일단 석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그 작자가 그대로 줄행랑을 놓는 통에 ‘제 1 차 공의회’ 수사가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영장발부 전에 체포한 근거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3 년 이상 유기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판사의 영장이 발부되기 전이라도 24 시간동안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다”는 현행 형법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법원의 엳장기각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첫번째 참고인은 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입니다.
참고인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우선 참고인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열리기 전인 AD 378 년에 사망했으므로 삼위일체를 투표로 가결시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삼위일체론의 근거를 성립시킨 대표적인 이론가임과 동시에 삼위일체론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성부-성자 동일본질론을 주장한 사람이기 때문에 sarnia 수사본부에 소환했습니다. 참고인이 AD 325 년 니케아에서 이런 주장을 주도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과 동급이라는 신성론(神性論)을 바탕으로 이를 주교단 회의에서 투표로 결정해 기독교의 핵심사상으로 선포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육군병장도 아니고 어째서 하나님과 동급인지 말이 많은 것도 따지고보면 참고인의 역할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의 신성론에 대해서는 제 1 차 공의회 주모자인 황제 콘스탄틴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만 질문하겠습니다. 참고인은 삼위일체 사상을 역시 참고인이 만들기도 한 27 권의 신약성서를 바탕으로 해서 수립한 것 입니까?
아타나시우스: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약성서에는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견강부회로 삼위일체론을 지지할 수 있는 몇 가지 성서 구절이 있을 뿐 입니다. 신약성서에는 오히려 예수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구절들이 훨씬 많습니다. 저는 고문서를 현대의 각국 언어로 정확히 번역할 수 있는 훈련된 번역가가 정말 필요하다고 보는데, 오늘날 기독교의 문제는 번역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엉터리 번역때문에 엉뚱한 교리가 나오고 그 엉터리 번역에서 비롯된 엉뚱한 교리를 전 세계 수 억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무비판적으로 믿고 따르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초기 기독교 주교의 한 사람으로서 통렬한 반성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삼위일체론의 근거 중 하나로 인용되고 있는 요한복음 1 장 1 절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구절에는 “말씀 (Word = logos) 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라는 말이 나오는데, with(함께) 로 멋대로 번역된 본래의 그리스어 의미는 “향하다” 는 의미입니다. 즉 ‘누구를 향해서 교류한다’는 의미와 ‘그 안에 함께 있다’는 의미는 다른 말이지요. 삼위일체와는 관계없는 표현입니다.
기왕에 요한복음 1 정 1 절과 관련된 성서번역 이야기가 나왔으니 허락하신다면 좀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KJV 성서번역도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라고 번역한 한국의 공동번역이 더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공동번역 역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번역을 할 바에는 차라리 번역이라고 하지 말고 오늘날의 의미에 밎게 새로 고쳐 다시 쓴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sarnia 수사관 : 아, 다른 참고인으로 참석하신 루돌프 불트만 교수가 손을 번쩍 드셨네요. 네 불트만 참고인 말씀하세요.
불트만: 저는 한국의 공동번역이 ‘한 처음 (태초)’라고 한 말에서.. 태초란 시간 계열의 첫 고리가 아니고, 시간에 선행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Word 는 물질세계에 속한 개념이 아니고요. 따라서 이 성서문장은 이 세계와 시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참고인은 공동번역의 자의적인 번역을 비판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한복음이라는 문서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영지주의적 성격 역시 파악하셔서 그 번역이 단지 자의적 번역만이 아니라는 것도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타나시우스: 이봐요, 불트만 참고인, 당신은 번역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잘못되어 있어요. 성실한 번역이란 우선……
sarnia 수사관: 자, 자, 두 분 참고인! 그만 하세요. 이야기가 자꾸 삼천포로 빠지려고 합니다. 오늘은 성서 번역 문제를 따지는 게 주 목적이 아니고요. 삼위일체 성립과정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 첫날 입니다. 저 역시 수사관의 시각에서 정리하자면 요한복음 1 장 1 절같은 구절의 어느 한쪽 문장만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예를들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문장과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 문장은 우선 양립할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문장이 한 문장으로 구성된 요한복음 1 장 1 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같은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0 장 30 절의 “나(예수)와 아버지(하나님)은 하나” 라는 예수의 말과 14 장 28 절의 “아버지(하나님)은 나(예수)보다 크다”라는 말 이 그것입니다. 이 두 문장 역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지만 같은 요한복음에 쓰여 있지요. 이 모순된 두 말에서 최대공약수를 바탕으로 재해석하면 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나 예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하나님과 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요. 이건 어디서 주어들은 말이 아니고 두 분 말씀 듣다보니 갑자기 확 떠오른 깨달음인데, 신약의 전문가이신 두 분 혹시 이의 있으신가요?
아타나시우스 + 불트만: (동시에 복창하며) 이의 없습니다!
sarnia 수사관: 좋습니다. 수사서두에 성서번역 이야기가 좀 길었는데, 우선 삼위일체의 당위성을 적어도 성서에서 찾는것은 견강부회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두 분의 좋은 진술 고맙습니다. 문제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인간과 하나님의 특성공유를 강조한 일부 성서 기록들을 하나님=예수=성령이라는 등식으로 유추해석해서 삼위일체라는 개념을 창조해 낸 동기가 과연 무엇인가하는 점 입니다. 단순한 성서해석상의 오류인지, 아니면 해석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정치적 목적의 종교이데올로기를 심화시키기 위해 이런 이상한 사상을 제작한 것인지를 판명하는 것이 삼위일체 사건 수사의 촛점이 될 것 입니다. 전자라면 공소유지가 어렵겠지만, 후자로 혐의가 판명될 경우에는 공소유지에 문제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피의자들은 종교에 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전원 기소될 것 입니다.
아타니시우스 참고인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삼위일체가 신약성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참고인도 고백했는데, 그렇다면 참고인은 당시 왜 이같은 사상을 주장하신 겁니까?
아타나시우스: 저는 평생동안 이집트와 리비아 지역에서 아리우스 주의자들과 이론투쟁을 벌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삼위일체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즉 삼위일체론이 제가 가장 먼저 수립한 기독교 신론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도 모르게 기독교보다 더 오래된 고대 종교의 신론 개념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삼위일체론이 폴라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제가 곰곰 생각해 보니 적어도 제 경험에서는 제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집트 사람들로부터 그 개념을 빌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위일체론은 결국 고대 이집트와 힌두교 등 고대 오리엔트 종교에서 빌려온 신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지역을 불문하고 고대종교에서 절대자와 육체를 가진 인간 하나를 신인으로 승격시켜 숭배하는 사상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떯게 보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면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이라는 한계를 지닌 인간의 보편적 사고에서 나온 비슷한 종교형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 입니다. 부활이나 동정녀 탄생, 인격을 가진 신의 아들이 행한 기적 이야기, 심지어는 십자가 죽음같은 것들도 기독교의 예수의 경우가 제일 막내일 정도로 이미 오래 전에 세계 곳곳에서……
sarnia 수사관: 아, 잠깐만요. 참고인, 부활절이나 동정녀 탄생같은 것은 ‘1 차 공의회’ 사건의 수사대상입니다. 지금은 삼위일체 에 관한 이야기만 진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술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아타나시우스: 예, 어쨌든 놀라운 사실은 어떻게 1600 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이때 갑자기 모니터링 방청실에 앉아서 수사광경을 지켜보던 웬 남자가 조사실 안으로 뛰어들어와 참고인 아타나시우스의 멱살을 잡으며……)
“야, 아타나시우스, 이 배교자 개자식아. 니가 이제와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sarnia 수사관: (두 사람을 간신히 떼어 놓으며) 뭡니까? 당신 누구예요?
침입자: 예, 나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합니다. 어거스틴이라고도 하고요. 고백록을 저술했고, 기독교 4 대교부 중 한 사람 입니다. 우선 갑자기 이 방에 뛰어든 거 미안하고요. 그란데 저 아타나시우스라는 작자가 갑자기 실성을 했는지 자기가 삼위일체를 만들어 놓고서는 이제와서 양심선언 흉내를 내며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아시다시피 저 자는 삼위일체를 수립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손으로 신약 27 권을 골라내서 편집한 장본인입니다. 근데 이제와서 지가 무슨 황장엽이라고 혼자서 저렇게 딴소리를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군요. 저 인간이 무슨 기독교가 이집트의 고대종교를 배꼈다는 둥, 플라톤 사상을 베꼈다는 둥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 입니다.
sarnia 수사관: 어거스틴 선생! 진정하시고요. 근데 그 반대라니요? 예수의 츨생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플라톤은 적어도 400 여 년 앞선 사람인데 어떻게 플라톤이 기독교 사상과 교리를 베낄 수가 있나요? 이집트 고대종교가 기독교를 베꼈다는 건 더 말이 안되는데……
어커스틴: 저명하신 유세비우스 주교의 연대기에 의하면 플라톤이 이집트 여행을 하던 중에 예레미아 선지자가 이집트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플라톤이 예레미아의 예언서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즉 예레미아 선지자를 통해 그가 예언한 예수의 사상을 미리 배운 것이지요.
아타나시우스: 이 사람이 어디서 난테없이 나타나서 흰소리를 늘어놓고 있는거야? 이 봐요. 어거스틴! 당신이 인용한 유세비우스 주교의 연대기인가 뭔가는 날조된 문서라는 게 일찌감치 밝혀졌어요. 게다가 예레미아는 플라톤보다 200 년 먼저 살다 간 사람인데 무슨 플라톤이 이집트 여행할 때 예레미아가 거기 살았다는 거야? 그리고 예레미아는 예수에 대한 어떤 예언도 한 적이 없어요. 망신스러운 이야기지만 마태복음에서 예레미아의 예언을 인용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지요.
마치 예수탄생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때문에 온 도시가 통곡으로 뒤덮인 것이 ‘라마에서 통곡하는 소리’를 이야기한 예레미아 예언의 성취인 양 써 놓았는데 이 기록자는 물론이요 나까지 저승에서 예레미아 선생한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당했어요. 자기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라마의 포로집결지에 모인 청년들과 그 청년들의 어머니들을 비유해서 이야기한 것인데 수 백년 후에 실제로 일어났는지도 확실치 않은 예루살렘 유아학살에 비유당한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예레미아 선생은 우리를 모두 정신병자로 몰아부치며 펄펄뛰시는 바람에 아주 곤욕을 치루었어요. 뭘 좀 자세히 알고 말씀하세요.
sarnia 수사관: 자, 됐습니다. 두 분 모두 진정히시고요. 오늘은 삼위일체에 대해 그 가결과정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오늘 조사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조사일정이 잡히면 수사의 주제에 따라 관련 참고인들에게 소환장이 우송될 예정입니다. 아타나시우스 님과 불트만 님, 두 분은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어커스틴 님에게는 경고합니다. 앞으로 다시 한 번 이런 식으로 조사실에 난입하시면 공무집행방해혐의로 입건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냥 귀가하세요.
조사실 관례대로 참고인들께는 설렁탕을 시켜 드릴테니 한그릇씩 들고 가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