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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CIA 였는데 1951 년 부터 1982 년까지 미국 중앙정보국 해외공작원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온갖 추악한 비밀공작을 수행했다. 1973 년에는 CIA 한국 총책임자로 부임하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도날드 그레그다.
1989 년 그가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했을때 한국의 진보진영은 그의 대사 부임을 극력 반대했었다. 그의 어두운 전력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 이미 저강도 전쟁 전문가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가뜩이나 반미분위기가 상승일로에 있는데다가 여소야대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인물을 신임 대사로 지명한 부시 (아버지) 정권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는 한국 진보진영의 극력 반대에 부딪히기에 앞서, 미국 상원의 대사 인준 청문회에서부터 인준이 늦어지는 바람에 부임이 8 개월이나 늦어졌다. 이란-콘트라 사건에 그가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이란 콘트라 사건이란 레이건 정권 당시 적성국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팔아 확보한 비밀자금으로 니카라과 반군 게릴라 집단인 콘트라를 지원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니카라과의 좌파정권인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불법해외공작이었다.
그는 1983 년 3 월 17 일, 부통령 안보보좌관 신분으로 쿠바 출신의 미국 CIA 공작원 Félix Ismael Rodríguez Mendigutia 를 만나 중남미 좌파 정권 전복을 위한 지하 게릴라 전쟁전략과 관련된 다섯쪽짜리 작전문서를 전달받고 협의하는 한편, 1985 년에는 그를 부시(아버지) 당시 부통령에게 소개해 해외 불법공작을 미국 정부의 공식활동으로 전개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지휘한 CIA 비밀 공작원 Rodriguez는 1967 년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를 체포하고 심문하고 사살한 장본인이다. 한마디로 그는 1982 년 부통령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기까지 반평생 31 년 간을 음지에서 비밀공작과 저강도전쟁으로 잔뼈가 굵은 정보통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한반도 전문가라는 점이다. 미국인들 중 그만큼 한반도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별로 없다. 특히 CIA 한국 총책임자와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그가 보유하고 있는 ‘한반도 사정’에 대한 정보는 군사전략과 관련된 매우 핵심적인 판단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남북관계에 의미있게 진전된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대체로 세 차례다.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이 세 대통령의 임기가 그 시기에 해당된다. 이 중 첫 단추에 해당하는 노태우 정권 시기의 북방정책과 대북협상의 막후에 있었던 인물이 바로 당시 주한 미국대사 도날드 그레그다. 그가 어느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 대통령이 세 명이 있는데 박정희-노태우-김대중이 바로 그들이다” 라고 말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는 말은 안 했지만 그 기자회견에서 아마 이런 소리를 덧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천하의 돌대가리같은 X들이 두 명 있는데 바로 김X삼과 이X박이다”
그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일종의 ‘미국의 양심선언’을 대신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두 번 째다. 그는 2010 년 8 월 31 일 New York Times 에 Testing North Korean Waters’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이때도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를 맞아 격침된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견해를 완곡하게 밝혔었다. 그때도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언급했지만,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그런 일(합조단이 발표한 가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상식 군사상식으로는 가능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는 것이다.
그는 사건의 진상을 뻔히 알고 있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일부 잘못된 견해에 휘둘려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너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못내 한심한 모양이지만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또한 한탄스러운 표정이다. 그는 1973 년 김대중 납치 사건과 관련해 CIA 서울지부장이었던 자신에게 최초 정보를 제공한 김재권 (본명 김기완) 전 주일공사 (현 주한미국대사 성김의 아버지)를 모른다고 할 정도로 정보맨 행동수칙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가 기고문이나 기자회견에서 자꾸 러시아 조사단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새삼스럽게 러시아 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소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러시아 조사단의 보고서가 작성되기 휠씬 전부터 그레그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이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아울러 이 사건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가 버린 오바마 정부에 공개 경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천안함 미스테리는 이명박 정권의 임기가 종료되자마자 진상규명을 위한 전면 재조사가 시작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사건이다. 천안함 사건 전면 재조사는 ‘도둑놈 가족 수사’ 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중요한 과제다.
올해 84 세의 제3세계 반미세력 분쇄공작의 귀재는 ‘천안함 사건 처리’와 관련된 잘못된 정책결정으로 말미암아 멀지 않은 장래에 자기 조국의 도덕성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직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보맨으로서 무려 60 년 연륜과 고급정보에 근거한 직감이니만큼 신뢰할만하다.
개인적으로 천안함 미스테리에 대한 양심선언은 대한민국 정부나 군 관계자 중에서 먼저 나와주었으면 했는데 전직 주한미국대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씁쓸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 희생자들의 영혼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게 되기 바란다.
2012. 1.15 sar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