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지난해말 기준으로 14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전체인구의 3%에 해당하는 셈이다.
지난 2005년 조사 때 53만 여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6년 사이에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아직까지 국가 경계가 무너지고 글로벌화가 무르익었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지금 추세라면 그런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새로운 변화에는 그에 따른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적 소양이 필요하다.
수 천년간 단일민족의 명맥을 유지해 온 한국인들에게 피부 색깔과 언어가 다른 외국인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존재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일과 사랑을 찾아 한국에 온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과한국인 모습은 어떨까.
그들 역시 호기심과 두려움 속에서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특히 피부색이 까만 유색 인종이 한국인들의 지나친 호기심과 경계심 때문에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뉴스1이 국내 거주 외국인 온라인 커뮤니티 `BSSK(Brothas & Sistas of South Korea)` 회원들을 만났다.
BSSK는 영어학원 강사, 대학 강사, 유학생 등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주축이 된 온라인상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약 2000명에 가까운 국내 외국인이 회원으로 등록해 있고 회원 대부분이 유색 인종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노골적 신체접촉과 성희롱
17일 홍대 부근에서 만난BSSK 회원 13명은피부색이 까만 흑인들이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흑인에 대한 한국인 호기심이 너무 지나치다고 입을 모았다.
머리카락과 피부색, 체취, 체형 등을 무척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이 격식을 차린 완곡한 표현이란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하나 카마우(24·여)씨는 지하철에서 겪은 황당한 일을 들려주었다.
한 중년의 남자가 불편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무릎에 올려놓은 그녀 가방을 뒤졌다고 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세계역사를 가르쳤다는 알렉시스 화이트(26·여)씨도 역시 지하철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은 한국 남성이 느닺없이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더니 “오, 몸집 좋은 미국여자(Big American Woman)”라고 하더라는 것. 그녀는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키 190cm가 넘는 아브라함 오예오우(29·남)씨는 흑인을 바라보는 한국인 행동이 정형화 돼 있다고 말했다.
만지거나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도망치거나 한다는 것. 가끔씩은 “어머”, “헉”, “악” 같은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고 했다.
오예오우씨는 마트에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는 어느 날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자신을 본 어린 남자아이가 막 도망치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목격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그는 “내가 백인이었다면 (그 아이가) 도망쳤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대학원생라타샤 심즈(27·여)씨는 한국의 공공연한 인종차별이 놀랍다고 밝혔다.
학업을 하면서 파트타임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영어강사 일자리에 이력서를 보냈더니 흑인이라서 고용하지 못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심즈씨는 “미국의 경우 이력서에 사진을 첨부하는 조건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며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용하지 않겠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흑인에 대한 편견, “TV 등 매체 때문”
대부분 한국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이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어디서 오셨냐,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이다.
초등학교 영어교사인라이언 토마스(27·여)씨는 첫 수업에서 자신이 미국에서 왔고 흑인계 미국인이라고 설명했는데도 믿지 못하겠다는 아이들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캐런 마이로드(27.여)씨 역시 미국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도 아이들은 “선생님은 아프리카에요.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우긴다며검은 피부색의 사람은 모두 아프리카인으로 착각하는 어린 한국 학생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고 말했다.
유색 인종, 특히 흑인에 대한 한국인 편견이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토마스씨는 자신 동료가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그의 동료는 한국인 여자 친구에게 흑인 친구를 소개해 주고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식사가 끝나고 흑인 친구가 돌아가자 한국인 여자 친구는 남자 친구에게 “흑인치고는 사람이 착하다”고 말하더라는 것.
“왜 그렇게 말을 하냐”고 반문했더니 한국인 여자 친구는 “내가 흑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뮤직비디오와 TV에서 본 게 전부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토마스씨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TV 등 영상매체에서 그려지는 흑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예오우씨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과 나이지리아 조별 경기 때가 기억난다고 했다.
당시 한국의 유명 맥주 회사가 광고에서 나이지리아인들을 부시먼처럼 묘사했다면서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나로서는 그 광고를 보고 화가 났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뉴욕 출신인 화이트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선생님, 랩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한국 학생 물음에 “랩을 듣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자신을 랩의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 지을까 봐 두려워서였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병사들의 분별없는 행동과 말에서 원인을 찾기도 했다.
토마스씨는 “안타깝게도 어린 미군 병사들의 개념없는 행동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들의 불량스런 태도를 본 많은 한국인들이 모든 미국인이 그럴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르치거나 vs. 무시하거나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이들 대응이 궁금했다.
대학에서 동양언어학을 전공했다는 마이로드씨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속히 성장했을지는 몰라도 다문화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생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한국인들은 아직도 흑인을 보면 신기해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만지고 냄새를 맡고 하는 것 아니겠냐”면서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른이 나의 몸을 함부로 더듬는 행위는 무례한 짓”이라고 말했다.
토마스씨는 “수업시간에 머리카락 꼬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내 머리카락은 꼬면 고정되지만 너희 머리카락은 바로 풀린다고 차이점을 알려주었더니 금방 이해하더라”면서 “어떤 경우든 남의 몸을 만지는 일은 옳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예오우씨도 “무엇보다도 매체에서 접하는 흑인들이 전부가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심즈씨는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모든 한국사람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주문을 건다”면서 “누가 나에게 상담을 해오더라도 ‘안타깝지만 있는 일이다’고 알려주며애써 무시한다”고 전했다.
이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BSSK는 이런 이유 때문에 꼭 필요했다.
한국생활 경험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면서 그들은 온라인에서, 때로는 오프라인에서 소통을 꾀한다.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비하하고자 하는 모임이 아니라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을 더 이해하고 알아간다고 했다.
심즈씨는 자신을 ‘문화외교관’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는 미국을 알리고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생활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그런 민간외교관이 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