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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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nia : 오랜만입니다 : ) 한 분 씩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sarnia :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기 보다는 감추어져 왔던 사실이 드러났다고나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지난 1600 년 동안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수행했던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해서 완전히 잘못알고 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3 : 언급하신 두 사람 중 우선 궁금한 사람은 사실 바울인데요. 이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어왔던 겁니까?
sarnia : 바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총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래야 이해가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예수의 사망 이후 형성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Gnosticism (나스티시즘 = 영지주의) 전통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라는 압도적인 심증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외경 뿐 아니라 정경으로 채택된 3 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만 읽어보아도 그 전통의 편린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4 복음서에 나타난 영지주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만으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그 초기 전통이, 나그함마디문서 등 나중에 추가로 발견된 문서 덕분에 더욱 분명하게 재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그런 심증을 얻게 된 것 입니다.
여담이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만일 성서분석을 기존 수사팀에 맡겼다면 그런 포착은 불가능했을 것 입니다. 훈련된 요원들로 따로 구성한 SIU (특별수사팀), 즉 ‘Gnosticism Task Force Unit” 이 수사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이런 수사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CE 4 세기 경에 로마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완전히 교권을 장악한 문자주의자들의 일방적인 거짓말만 믿고 ‘나스틱’ 전통이 나중에 생겨난 이단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거지요. 문자주의자들은 개인의 영적 깨달음을 강조한 나스틱 사상이 중앙집중권력구조에 개뿔도 도음이 안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나머지 엉뚱한 ‘매개 사상 즉 -교권을 통해서만 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을 제작해 낸 것 입니다. 문자주의자들, 그러니까 이 자칭 정통주의자들이야말로 거대한 이단일지도 모른다는 ‘매우’ 강력한’ 심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불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깨달음의 ‘영적 지혜’를 설파하고 있었다는 방증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문장은 굳이 외경을 언급할 것도 없이 4 복음서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장 신약 초반에 등장하는 마태복음 13 장만 읽어보아도 예수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감을 척 잡을 수가 있지요. 기자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태복음 13 장은 저 유명한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입니다. 그 장 11 절에서 예수는 이런 말을 하지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마치 사람 봐 가면서 차별해서 이야기하겠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은 나중에 발견된 The Gospel of Thomas 제 9 절에 나와있는 ‘씨뿌리는 비유’를 비교해서 읽고나면 비로소 그 의미가 명확해 집니다.
예수는 어려운 주제를 이야기할 때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할 때는 주로 비유로 말하는 대신, 근본적인 물음에 해답을 구하는 소수의 영적 엘리트들에게는 따로 이야기하기도 했다는 것이 나그함마디 문서 등을 통해 밝혀졌지요. 마태복음에서도 같은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의 행적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만을 보았을 때는 예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뭔 소리인지 긴가만가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들을 준비가 된자 와 그렇지 않은 자 에 대한 비유”라는둥 대충 통밥으로 주워섬긴 주먹구구식 해석을 해 왔는데, The Gospel of Thomas 같이 ‘높은 수준의 자아’로 그 ‘들을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고급강의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그 의미 (구체적으로 예를들어 마태복음 13 장 11 절의 의미) 가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전체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영적 부활’의 전기를 맞은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자칭 정통주의자 입장에서 보자면 한마디로 그들 스스로 ‘딱 걸린 것’ 이지요.
기자 3 : 이제 바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시죠.
sarnia : 테스크포스팀은 바울의 정체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두 사람을 동시에 소환해 대질심문을 벌였습니다. 정통주의의 초기 교부인 이레네우스와 나스틱 전통의 대표적인 인물 발렌티누스 입니다.
바울은 정통주의와 나스틱 전통 두 교파 모두로부터 모두 귀빈대우를 받고 있는 특이한 인물인데다가 신약 27 편 중 7 편이 그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을만큼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디모데전서나 디도서 등 나머지 6 편은 후대에 가필되었거나 날조된 문서라는 학설이 유력하지만 어쨌든 그것들도 바울과 관련된 문서들입니다. 그것들까지 치면 열 세 편, 신약성서의 거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발렌티누스는 바울의 제자인 Theodas를 사부로 모시면서 그에게 나스틱 전통을 계승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일단 그의 진술에 따라 테스크포스팀은 그의 편지 일곱편에 대한 정밀분석에 착수 했습니다. 후대에 재해석된 그의 기독론에 관계없이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일관되게 ‘육적 수준의 그리스도인’과 ‘영적 수준의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비유를 줄기차게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직 높은 수준의 자아로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실망감의 노골적인 표출이 편지 내용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입니다. 대표적인 부분은 히브리서 5 장 11 절부터 6 장 전체에 면면히 이어지는 질책입니다.
바울이 나스틱 사상의 영향아래 있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나타내주는 문장은 갈라디아서에 나와 있습니다. 한국어 성경의 어정쩡하고도 추상적인 해석때문에 그 확실한 의미가 평신도들에게 가리워져 있는 구절이 이 편지에 있는데 바로 갈라디아서 3 장 19 절 부터 20 절 입니다.
What purpose then does the law serve? It was added because of transgressions, till the Seed should come to whom the promise was made: and it was appointed through angels by the hand of a mediator. Now a mediator does not mediate for one only, but God is one.
만일 전통 신앙을 가지고 있는 평신도들이 그 확실한 의미를 알면 까무러치거나 놀라자빠질만한 이 구절은 바울의 폭탄선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혁명적인 발언입니다.
기자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 보십시요.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율법을 준 여호와 를 가리켜 mediator 라고 했습니다. The Mediator 도 아니고 일반명사를 사용하여 a mediator 라고 호칭했습니다. 한국어 성경에는 평신도들이 일부러 못 알아듣게 하느라고 그랬는지 ‘중보’라는 애매하고 어려운 단어로 해석을 해 놓았는데 그냥 ‘중재자’나 ‘전달자’ 정도로 해석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요즘말로 사랑의 꽃다발처럼 율법을 배달해 주는 퀵서비스라고 하면 좀 과한 해석일까요?
암튼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A mediator는 여러가지일 수 있는데 God 는 하나다”
그렇다면 과연 바울이 생각하는 (여호와가 아닌) God 는 누구 (또는 무엇) 일까요?
바울의 제자의 제자인 영지주의자 발렌티누스와 함께 소환되어온 문자주의자 교부 이레니우스의 주장은 별로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니스틱 전통을 가르켜 ‘높은 수준의 자아가 추구하는 영적 깨달음’ 이라는 말을 절대 사용하지 않고 ‘비밀지식을 자기들끼리 전수하는 밀교’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영지주의를 한 이단종파로 끌어내리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구원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도들에 의해 성서 (신구약 66 권으로 편성된 정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복음전파를 위탁받은 정통주의 교회의 전승과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는 일체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지요.
아, 근데…… 미안합니다. 바울 이야기도 아직 안 끝났는데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낼 틈도 없이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네요. 다음 기회에 다시 합시다.
기자 4: 잠깐만요! 한 가지 개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sarnia 님은 나스틱 전통과 문자주의 전통 중 개인적으로 어느 쪽을 지지하십니까?
sarnia : 저는 개인적으로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냥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을 뿐 입니다. 그려려면 가능한 한 공정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수사본부의 사명은 사실을 밝혀내는데 있지, 어느 쪽을 지지하거나 무엇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런 건 논객이나 판사가 할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