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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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트남-캄보디아 방문 계획을 공식 발표했었다. 그러면서 프놈펜과 씨엠리업에 가서 킬링필드 현장과 중세유적군도 함께 둘러보고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일단 캄보디아를 순방 대상국에서 제외한다. 올 가을 sarnia 의 아시아 순방일정은 총 20 일 정도다. 그 중 반드시 한국에 붙어있어야 하는 열흘을 제외하면 진짜 휴가로 쓸 수 있는 기간은 나머지 열흘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아주 잘못된 계획을 짜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놈펜은 몰라도 씨엠리업 인근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중세 유적군은 하룻만에 둘러보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크메르 종교유적에 특별한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게 아닌 지금으로선 그런 식의 여행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기왕에 갈 요량이면 관심과 흥미를 제대로 만들어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그냥 베트남에만 머문다. 호텔이고 투어고 아무것도 미리 예약하지 않는다. 호치민을 출발지로 해서 오픈버스 편으로 후에 (Hue) 까지 차례로 이동한다. 북위 17 도선 이북은 내년으로 미룬다.
호 아저씨… 뭐 올해는 못 뵙겠지만 기왕 말나왔으니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 호 아저씨 자신은 비록 통일을 못보고 1969 년 타계했지만, 체 아저씨와 함께 인류사에 있어서 반제항쟁분야의 모범적인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인물임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뭔가 수상쩍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근세 이후 아시아 국가가 서구와 싸워 이긴 전쟁 두 개를 꼽으며 그 중 하나가 1905 년의 일-러 전쟁이고 다른 하나가 베트남-미국 전쟁이라고 슬그머니 뭉뚱그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결코 이 두 전쟁을 같은 반열에 올려 같이 놀게 할 수는 없다. 일-러전쟁은 제국주의 국가간의 전쟁이었던 반면 베트남-미국 전쟁은 식민지 독립-해방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감격스런 순간이 있었다면 1975 년 4 월 30 일 오전 11 시 해방군이 연도에 몰려나온 사이공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질서정연하게 진주해 들어와 제국주의 폭력지배의 두 상징인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과 대통령궁이었던 독립궁 (지금의 통일궁)을 차례로 접수한 그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맹목적인 아시아우월주의자가 아닌 담에야 어떻게 감히 이 전쟁을 일-러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따위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전쟁을 같은 반열에 올린다면 일-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토 히로부미를 호 아저씨와 동급 대우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 덕분에 조선이 러시아 식민지 안되고 일본과 내선일체되어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골빈생각이 그 틈새를 비집고 출몰하게 된다.
암튼……
북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호치민 시티 부근에 있는 혁명3 대 사적지 중 가장 가 보고 싶은 곳 딱 한 군데만 선택해 방문하려고 한다. 이미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Can Gio 라는 곳이다. 한글로는 ‘껀저’라고 써 있는데 현지어로는 뭐라고 발음하는지 모르겠다. 맹글로브 나무가 들어차 있는 열대정글안에 복잡한 수로가 미로처럼 갈라져 있는 천혜의 요새다. 2000 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태보호구역이기도 하다.
파충류의 천국으로 알려졌던 약 4 천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대자연은 1962년 부터 약 10 년에 걸쳐 미국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엄청난 양의 포탄과 네이팜탄에 의해 물리적으로 파괴되었고, 나중에는 ‘Agent Orange’라고 불리우는 맹독성 고엽제에 의해 거의 절망적인 수준으로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사이공에서 약 60 km 떨어진 이 지역에 베트남민족해방전선 (National Liberation Front)의 수중유격대 사령부가 바로 이 열대림 안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미국군의 청소작전대상이 되었다.
참, 어느 안내문에 ‘월맹군의 유격부대'라고 표기되어 있던데 월맹군은 븍베트남 정부 예하의 정규군을 말한다. 껀저 지구를 배경으로 활동을 벌인 유격대는 북베트남 정규군이 아니고 남베트남의 자생적 무장항쟁조직인 NLF –Viet Cong- 예하 부대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추측한다"고 말한 이유는 sarnia 가 아직 믿을만한 자료를 발견해서 그 게릴라부대가 어느 부대 소속인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sarnia가 틀렸다면 그 여행안내문 작성하신 분께 정말 미안하다.
어쨌든 그렇게 초토화되었던 껀저의 맹글로브 열대림은 통일 이듬해인 1976 년 부터 베트남 인민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독일 등 해외 환경단체들의 도음을 받아가며 복원작업을 벌인 끝에 4 년 만에 60 퍼센트 가량의 면적을 복원했고, 1986 년에는 약 7 만 5 천 헥타아르에 달하는 맹글로브 열대림이 죽음의 고엽제 오염으로부터 되살아났다.
에코투어와 역사투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껀저 투어는 의외로 Sinh Tourist 의 투어목록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이 투어를 저렴하게 단체투어로 운영하고 있는 여행사를 딱 한 곳 발견했는데, 베트남 여행사가 아니라 의외로 한국 여행사인 ‘리멤버 투어’ 라는 곳이다. 베트남 여행사를 따돌리고 훌륭한 코스를 먼저 개발하신 그 한국 여행사에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맨날 하는 똑같은 소리지만, 대한민국은 1965 년 부터 파리강화조약으로 전쟁이 기술적으로 종료된 1973 년까지 연인원 32 만 명이 이 나라 전쟁에 참전해서 5 천 99 명이 전사하고 11 만 2320 명이 부상당했으며, 15 만 9132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4 명은 어찌된 일인지 실종된 후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느 분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사실 전쟁은 그 자체가 미친 짓이다. 전쟁이 있는 곳에 전쟁범죄가 안 일어날 수 없다.
sarnia 가 배트남 전쟁 이야기를 할때마다 대한민국을 언급하는 이유는 "I know what we did in Vietnam~~" 하고 딴지-불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sarnia 는 대한민국 출신이다. 더구나 4 촌 이내의 가족-친지 중 두 명이나, 그것도 모두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전쟁 이야기를 직접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기에는 나와 그들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내가 성인이 되고 그들이 늙은 (?) 담에는 그 전쟁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전쟁은 ...... 그 무슨 동기나 명분이나 정치적인 흑막을 놓고 따지기 전에 그 자체로 비극이고 슬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딴 거 다 떠나 호치민 시티 북쪽 1 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우선 내 사촌형들이 가서 목숨을 걸고 무엇인가를 한 그 곳의 자취를 찾아보고 싶다.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고 해서 무슨 청룡부대나 백마부대,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주둔지 따위를 둘러 보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참전용사가 아니니 그런 장소에 무슨 추억거리가 있을 턱도 없거니와, 가벼운 마음으로 전쟁사적지 유람을 하기에는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너무 마음이 무거워 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 부터 10 여 년 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 (National Achieves & Records Administration)가 기밀이 해제되었다며 공개한 문서와 사진들이 고스란히 보도된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전체 분량이 554 페이지에 달한다는 이 문서들은 놀랍게도 사이공 주재 주월미국군사령부 감찰부의 대령급 장교 두 명이 각각 한국군 해병대의 세 차례에 걸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비밀조사보고서를 작성해서 자기들 사령부의 참모장에게 제출한 것이었는데, 그 세부적인 내용을 여기에다 나열하지는 않겠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일어난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이란 곳은 다낭에서 가까운 것 같은데, 대한민국 출신이라면 죽기전에 꼭 한 번은 방문해 사죄의 예를 올려야 할 마을이다.
아래 사진들은 NARA가 공개한 사진 중 일부다. 가슴이 도려내어진 채 아직도 숨을 할딱거리고 있는 저 베트남 여성의 모습이 10 여 년 전 대한민국을 깊은 충격과 죄책감에 몰아 넣었다.
주월 한국군에 의해 도륙당한 베트남 가족, 그리고 어린 아이 (사진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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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면……중간중간 므이네의 어촌마을과 더 북쪽 ‘이쁘게 낡은 도시 호이안’ 같은 곳에서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여유도 마련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