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
<4 월 15 일에 떠 오르는 계급과 죽음이라는 화두>
2012 년 4 월 15 일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날이다. 우선 이 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김일성의 탄신 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따라서 한반도 동포들은 백 년 전 이 날, 즉1912 년 4 월 15 일을 김일성 주석의 탄신일로 먼저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같은 날 좀 더 유명한 사건 한 가지가 함께 일어났다.
신생아 김일성이 세상에 태어나 강보 안에서 첫울음을 떠뜨리고 있던 바로 그 날, 지구 반대편 캐나다 뉴펀들랜드 동북쪽 680 킬로미터 해상에서는 사상초유의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이 날 새벽 2 시 20 분,대서양 차가운 바다속에 머리를 처 박은 채 40 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던4 만 6 천 톤급 올림픽 클래스 증기여객선이 두 쪽으로 갈라지더니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 증기여객선의 이름은 RMS Titanic이다. 바다 속으로 사라지기 2 시간40 분 전인 4 월 14 일 밤11 시 40 분, RMS Titanic은 북대서양의 밤바다를 시속 22.5 노트로 항해하다가 빙산과 충돌했다. 빙산과 충돌한 날인 4 월 14 일은 일요일이었는데,이 날 하루에만도 이 배의 통신사는 무려 여섯차례에 걸친 빙산 경고를 받았다.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이 경고를 무시했다.
선장이 빙산경고를 무시하고 미친듯이 빠른 속도로 배가 전진하도록 명령한 이유는 황당했다. 이 배에 승객으로 탑승한 이 배의 소유회사 와잇스타라인 사의 사장 부루스 이즈메이가 선장에게 그렇게 하도록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었다.사장 이즈메이는 선장 에드원드에게 타이타닉이 4 월 17 일 화요일에 뉴욕항구에 도착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이 배는 마지막 경유지였던 아일랜드 퀸즈타운항 떠나 먼바다로 들어설 무렵, 선장이 일등항해사 윌리엄 머독에게 “Take her to sea Mr. Murdock! Let’s stretch her legs” (전속력으로 항해하게!)라는 유명한 명령을 내린 이래 속도를 줄인 적이 없었다.
필자는 이 해난사고를 다룬 할리우드 블락버스터 ‘타이타닉’을 1997 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개봉하자마자 관람했었다. 캘거리에 있는 Famous Players라는 극장에서였다.영화를 보고나서 한참 후,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할 기회가 있어서 이 영화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에서는 그때까지 이 영화가 개봉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맞이하여 그야말로 초죽음 상태에 돌입했었다. 이 영화를 곧바로 수입할 여력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주인공 디카프리오의 한국관련 부적절 발언이 당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게 이 영화수입이 늦어진 이유는 아니었다.
필자는 애당초 잭과 로즈의 러브스토리 같은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어서빨리 배가 빙산에 충돌하는 순간이 오기만을 지루하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를 보고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감상문을 쓴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이런 말을 했었다.
우선 감독이 배 안에 존재하는 여러 계층공간들을 서로 전혀 다른 세계처럼 묘사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고백을 했다. 일등실 전용다이닝룸의 우아한 드레스 차림의 귀부인들에게 익숙해 진 필자의 시선에 갑자기 등장하는 배 맨 밑바닥 기관실에서 석탄을 화로에 집어넣는 승선노동자들의 모습이 아주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실제로 벤허의 ‘노젓는 노예’를 연상시키는 승선노동자들의 모습은 ‘저기도 타이타닉인가’ 하는 순간적인 착오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배안에 상존해왔던 계급귀천의 차이는 베가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첨예화된다. 사실 주인공 잭의 죽음도 깊게 들여다보면 단순한 비련의 묘사가 아니라, 도저히 결합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계급간의 비극적 결말을 의미하고 있다. 다만 로즈가 먼저 계급의 족쇄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함으로써 나중에 일어날 그 비극을 순전한 슬픔만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여지를 마련한다는 것 뿐이다.
기억하는가? 이 영화에는 두 번에 걸친 중요한 반전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내내 갈등을 겪다가 잭에게 돌아온 로즈가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날아가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위선적이고 비윤리적인 부르조아의 표상인 그의 약혼자에게 침을 뱉는 장면이다. 이 통쾌한 해방의 순간들은 그로부터 84 년 후인 1996 년 어느 날 밤 101 세가 된 로즈 할머니의 어떤 행동으로 완결된다. 타이타닉 탐사선 위에서 로즈할머니는 ‘사랑의 정표’가 아닌 ‘신분의 상징’ 인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Heart of the Ocean)를 바닷속에 집어 던진다. 왜 그 비싼 목걸이를 집어 던졌는지 그 이유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타이타닉의 계급분단’과 관련해서는 타이타닉의 결코 정의롭지 않은 사망자 통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해난사고 탈출 매뉴얼이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어린이와 여성을 우선적으로 구조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므로 어린이승객과 여성승객 사망율과 구조율만을 다시 검색해 봤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이 배에는 109 명의 어린이들이 탑승했었다. 이 중 1 등실과2 등실의 어린이 승객은 30 명이었는데 이 중 1 명만 사망하고 나머지 29 명이 구조됐다. 반면3 등실 어린이 승객은 79 명 중 무려 52 명이 ‘돌아올 수 없는 어린 넋’이 됐다.66 퍼센트의 사망율을 기록한 것이다. 여성승객들의 클래스별 구조율 차이는 어떨까 알아봤더니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1 등실 여성승객들은 144 명 중140 명이 구조돼 97 퍼센트의 구조율을 기록한 반면 3 등 실 여성승객은 165 명 중 89 명이 사망해 46퍼센트만이 살아서 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가 무었일까?
두 말할 것도 없이 타이타닉의 항해지휘부가 의도적으로 3 등실에서 갑판으로 통하는 철문을 잠궈버림으로써 3 등실 승객들의 탈출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즉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구명정의 승선인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른바 ‘the better half’ 를 안전하게 탈출시키기위해 나머지를 고의적으로 희생시킨 ‘계급살인’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The better half’ 라는 사악한 표현은 영화에 나온 대사에서 빌려온 말이다. 로즈는 그 상황에서 철딱서니없는 농담을 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제말 입 좀 닥치라”고 화를 내며 이런 말을 덧붙인다.
“The water is freezing and there aren't enough boats... not enough by half. Half of the people on this ship are going to die.” (엄마, 바닷물은 말할 수 없이 차갑고 구명정은 모자라요. 이 배에 탄 사람들 중 절반이 오늘밤 죽게되요!)
그러자 옆에 있던 로즈의 약혼자가 내뱉은 말이 “Not the better half.”다.
여기서 한 가지 상기할 사실이 있다. 이 배의 승객들 거의 전부는 유람선 크루즈 여행자들이 아니라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대서양을 건너던 이민자들이었다.
‘계급’이라는 화두와는 별도로,영화를 보고나서 한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끈질긴’ 화두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화두였다.
배가 빙산에 층돌해서 침몰하게까지 걸린 시간은 두 시간 사십분이었다. 죽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그 긴 시간 동안 배 안의 사람들이 보여 준 다양한 모습들이 떠 오른 것이다.과연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 보았다. 필자는1997년 겨울 작성한 감상문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기 위해 먼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인물들에 대해 메모했었다.
그 인물들 중 대표적인 사람들은 그 배의 오키스트라였다. 그 배의 오키스트라는 배가 빙산에 충돌한 지 40 분 쯤 후부터 선수가 물에 잠겨 배의 기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밝고 경쾌한 음악을 연주했다.
마지막 구명정이 내려진 직후인 새벽 2 시 10 분,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30도 각도로 기울어진 배의 각 층 갑판위에서 1 천 5 백 여명의 잔류 승객과 승무원들이 필사적으로 배 후미쪽으로 몰려들며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이루고 있을 때, 이 배의 오키스트라는 그 유명한 타이타닉의 마지막 곡 ‘Nearer My God to Thee’를 조용히 연주했다.
이 절망적인 마지막 곡이 연주되는 그 운명의 시간, 선실침대 위에서 꼭 끌어않은 채 죽음을 기다렸던 이사도라 스트라우스 부부, 두 어린 남매가 공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을 재우려고 애쓰는 삼등실의 한 젊은 여인, 스모킹룸에 들어가 선박 설계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시계를 맟추어놓던 토마스 앤드류, 구명정과 구명복을 모두 거절한 채 턱시도로 갈아입고 “신사답게” 죽음을 맞이했던 벤자민 구겐하임 (필자는 몇 년 전 뉴욕 맨하튼에 머물 때 갑자기 이 사람 생각이 나서 구겐하임 아트뮤지엄을 일부러 방문한 적이 있다.) 이 그들이다.
15 년 전 추운 겨울, 고국이 외환위기의 늪에서 침몰하고 있을 그 무렵, 필자에게 그로테스크하고도 여려운 메시지와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던 그 묘한 영화 ‘타이타낙’이 3D로 재상영되는 모양이다. 그 영화를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사건발생 100 주년을 맞아 그 때 떠올랐던 상념들이 떠 올라 몇 자 적어보았다. (sarnia)
---------------
(이 글은 제가 에큐메니안에 기고한 글 입니다. 다른 곳에서 발견하시더라도 제 글이니 안심하시구요.몇 가지 표현은 제가 1997 년 12 월 캘거리 교민지’ 주간시티’ 에 기고했던 글에서 재인용했음도 아울러 알려 드립니다)
배경음악은 영화 ‘타이타닉’OST 중 ‘Unable to Stay, Unwilling to Leave’ 를 선곡했습니다. 잭과 약혼자 카알의 설득에 마지못해 구명정에 오른 로즈가 하강하는 구명정에서 마음을 바꾸어 다시 침몰하는 배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