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좌절하면 배신한다
좌절하면 배신한다. 제가 파업 6개월 하면서 체험한 법칙입니다. 선거는 로또가 아닙니다. 한큐에 다 바꾸려고 투표를 하셨다면 그것은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도박을 한 것입니다. 비록 잭팟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뒤틀린 상식을 되돌릴 든든한 밑천을 마련했습니다.
저들의 몰상식이 너무나 극악했기에 야권연대의 과반 달성이 합당한 기대였습니다. 저들 스스로도 과반을 내줄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자명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낙담의 근거가 아니라 우리가 더 노력해야 할 이유입니다.
실망하지 맙시다. 아무리 괴롭기로소니 김용민만큼 괴롭겠습니까? 아쉽기로서니 천호선만큼 아쉽겠습니까? 절망적이기로서니 해직되고 파업 중인 언론인들 만큼 절망적이겠습니까? 우리가 위로해야 할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마음 추스리시고...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맙시다.
헤게모니는 절대 한꺼번에 넘어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위험합니다. 국민은 수도권 선거 결과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했고, 또한 비수도권에서 무능한 야당을 심판했습니다. 그러나 140석이라는 든든한 밑천을 쥐어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보여줄 차례입니다.
2) 우리에겐 좌절할 권리가 없다
이번 총선이 준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언론 독립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패배자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언론 독립입니다.
조중동이 김용민 막말 때문에 야권이 졌다고 말하는데, 정확히는 김용민 막말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 때문에 진 것입니다. 막말은 문제지만 표절과 강간미수와 매국발언 보다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을 더 문제로 보이게 한 조중동이 진짜 문제입니다.
언론장악을 온몸으로 맞섰던 기자와 PD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YTN 해직기자 출신인 노종면 <뉴스타파> 앵커와 MBC 해직 PD 출신인 이근행 <뉴스타파> PD를 보세요. 얼마나 절망스럽겠습니까? 인고의 세월을 겪어온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다시 <뉴스타파> 제작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SNS 등 뉴미디어 영향권인 도시 지역과 조중동과 방송 등 올드미디어 영향권인 농촌 지역의 투표 성향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났습니다. 팟캐스트와 SNS 등 대안미디어에서 나타난 여론을 신문 방송 등 주류미디어가 반영하는 에코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죠.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에 나타난 여론을 죽이는 쪽으로 힘이 작용했죠. 아직 올드미디어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이 나타났네요.
3) 나꼼수는 나꼼수의 길을 가게 하자
저는 봉도사와 김총수가 김용민을 출마시키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막말파동 때 사퇴하지 않은 것에도 부정적이었습니다(정치는 사실의 싸움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인식의 싸움인지라). 그러나 의미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무대포 정신도 필요합니다. 특히 싸울 때는.
나꼼수는 야권연대팀의 '데니스 로드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불스의 전성기를 이끌던 마이클 조던-스콧 피펜-데니스 로드맨 트리오 기억하시죠? 스콧 피펜 격인 통합진보당도 제몫 했습니다. 경기에 진 것은 마이클 조던(민주당)이 제대로 골을 못 넣어서입니다. 나꼼수는 로드맨의 역할을 충분히 했습니다.
앞으로도 나꼼수는 나꼼수의 길을 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나꼼수가 바르고 고운말 하며 기성언론 흉내를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뉴스타파>도 있고 <이털남>도 있습니다. 각자 자기 개성을 발휘해서 할 말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괜히 슛자세 바꾸면 골만 튕겨나옵니다.
진보언론이 조중동 프레임에 말려들었다고 비판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이른바 한경오가 조중동처럼 대놓고 편들지 않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자세를 견지한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지지합니다. 우리가 되찾으려고 하는 것은 '상식'이지 '패권'이 아닙니다. 더디 가도 원칙을 지키며 가야죠.
4) 몇 가지 아쉬운 점들
선거전에서 야권이 지역에 방점을 찍고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몰아가는 선거를 치렀으면 어땠을지... 그랬다면 강원 충북 경기외곽에서 이 정도로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SNS 이슈는 수도권 선거에서는 유효하지만 지역 표심은 움직이지 못했는데, 지방에서 야권연대의 득표활동이 부진했던 것 같습니다.
나꼼수팀도 김용민을 노원갑에 출마시키면서 발이 묶여버렸는데, 애초에 기획했던 것처럼 부울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동남풍’을 불게 했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김제동 윤도현 김C가 ‘개념찬 콘서트’를 통해 투표독려 운동을 하기도 했던 곳인데, 나꼼수가 이곳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낙동강벨트'라고 명명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수도권 선거로 진행되었는데 많이 아쉽네요. 전선을 어디에 형성하느냐가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낙동강 전선에서 전선을 형성했다면 수도권은 이미 장악한 것으로 기정사실화 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총선결과 수습 국면에서 ‘지도부 책임론’과 관련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혼란스러워질 것 같은데... 문성근 김영춘 김부겸 정동영 천정배 등 적진에 뛰어들어 의미 있는 성과를 올린 야권연대 후보들을 민주당 구원투수로 불러들이면 어떨지 싶네요. 지금 국민들이 보고 싶은 민주당의 모습은 바로 '살신성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데...
5) 박근혜 대세론에도 함정은 있다
의석수로는 새누리당이 압승했지만 정당 지지율은 야권연대에 뒤집니다. 90석(민주당+민주노동당)에서 140석(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으로 50석이 늘었습니다. 무엇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국민이 어렵게 만들어준 140석으로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연말 대선이 판가름날 것입니다.
총선 이후 정치권은 '박근혜 대세론'으로 급재편될 것입니다. 조중동도 박근혜 대세론을 조기에 띄워서 이명박 vs 정동영 선거 때 그랬던 것처럼 야권 지지 성향 유권자의 기권을 유도할 것입니다. 야권연대가 기싸움에서 밀리면 대선도 힘들어질 것입니다. 얼른 털고 일어서서 당당하게 맞서야죠.
이번 총선에서 특히 주목할 양상은 '여촌야도' 현상입니다. 호남과 영남의 지역 투표 성향이야 예전에도 있었던 것이고... '여권야도'가 새로운 현상이죠. 세대 투표 성향이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촌야도' 바로 이 구도 때문에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김대중에게 밀려서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이제 박근혜에게도 '여촌야도'라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이 구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연말 대권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19대 국회에서 주목할 부분은 민주통합당의 경쟁력 있는 수도권 '중진'들이 많이 복귀했다는 것과 통합진보당이 13석의 '기계화사단'이 구축되었다는 것입니다. 노회찬 심상정 최재천 등 장외에 있던 스타플레이어들도 다시 경기에 투입되었습니다. 이들이 국회 안에서 치열한 정책 싸움을 벌이면 야당의 존재감이 커질 것입니다. 기대해 볼만한 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