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 년대에 소년시절을 보낸 박정희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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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참 의아했다.
세 후보간 토론이 끝난 후 두 가지 검색어가 1, 2 위로 올랐다는 보도를 읽었다. 하나는 ‘다카키 마사오’였고 또 하나는 ‘6 억원’이었다.
이 두 단어가 검색어가 올랐다는 건 이 두 개의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박정희의 창씨개명 이름이나 (그는 나중에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좀 더 일본화된 이름으로 다시 바꿨다) 박근혜 6 억원 사건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진 유명한 스토리들이다.
싸르니아에게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다. ‘내가 아는 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것이다. 이 나쁜 버릇때문에 이야기할 때 거두절미하고 말을 꺼내는듯한 인상을 줄 때가 많다.
오늘,,,,,, 스물 네 살 짜리 한국 유학생에게 ‘박근혜 6 억원 이야기를 아느냐’고 물어봤다.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은가?
이정희 후보가 토론 중 언급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들은 적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황당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새삼스런 이야기를 실화에 바탕을 둔 단막극으로 꾸며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이정희 후보는 이 말을 잘못 전달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받은 6 억원’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박근혜에게 6 억원을 전달한 사람은 대통령 전두환이 아니라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육군소장 전두환이었다.
무엇이 다르냐고? 그 의미가 엄청 다르다.
왜 의미가 엄청 다른지는 천천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먼저 이 사실을 최초로 발굴해 낸 훌륭한 기자분부터 소개하겠다.
십 수 년 전부터 노망이 난 것으로 알려진 전 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씨다.
그는 1987 년 8 월 7 일부터 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씨에 대한 집중취재를 했다.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다시 10.26 궁정동 비밀요정 살인사건에서부터 12.12 쿠데타 과정에 관련된 관련인사 수 백 명을 인터뷰한 자료를 토대로 그 해 11 월 ’12.12 사건, 정승화는 말한다’ 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까치사에서 출판한 1 판을 기준으로 300 페이지가 채 안되는 이 책은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만 놀리면서 쓴 엉터리 정치비사가 아니라, 1 차 자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취재기자의 노고가 들어간 역작이라고 평가한다.
싸르니아는 20 여 년 전 구입한 이 책 1 판을 소장하고 있다. 나중에 나온 자료들은 이 책을 정보근거 및 기준으로 삼아 2 차 취재나 검색을 통해 스토리를 첨삭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박근혜 6 억원 이야기는 바로 이 책에 가장 먼저 등장했다. 1987 년 11 월의 일이다. 참, 그 해 12 월에도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양김이 후보단일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덕분에 어부지리로 최만득씨가 당선됐다. 최만득씨의 옛날 이름은 노태우였다.
암튼…… 딱딱한 책이 아니라 재미있는 책이니까 시간나면 한 번 쯤 읽어 보시기 바란다.
이야기 계속하면,
1979 년 10 월 27 일 새벽,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8 시간이 지난 후, 장갑차로 중무장한 1 개 헌병중대병력이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한 안전가옥을 포위했다. 이 병력은 수도경비사령부 (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이었다가 바로 두 시간 전에 보안사령부에 배속되어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지휘를 받게 된 제 33 헌병대 소속 병력 중 일부였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이들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안전가옥에 남아있는 중앙정보부 반란분자들을 일망타진하라”
이 명령에 따라 헌병들은 권총과 M16 자동소총을 난사하며 궁정동 안전가옥에 돌입해 들어가 가옥을 접수하고 잔여인원을 체포했다. 헌병들의 뒤를 따라 방탄조끼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수사관들이 진입해 들어갔다.
다음 날인, 10 월 28 일,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이 체포됐다. 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청와대에 본관에 들이닥쳤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이들에게 보다 사려깊은 명령을 하달했다.
“각하의 금고가 있는 본관은 뒤지지 말라”는 거였다.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수사관들은 각하의 집무실과 대통령 숙소인 2 층은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비서실장실을 뒤져 금고에서 ‘액수미상’의 현금과 자기앞수표를 자루에 쓸어담아 정동 사령부로 가져갔다. (보안사령부는 정동에 있었다. 흔히 말하는 서빙고는 수사분실이다)
조깁제가 취재한 1 차 자료에는 비서실장실에서 가져 온 금액이 9 억원이라고 쓰여있다. 정승화가,,,,,, 당시 전두환이 1 억 원은 자기 호주머니에 챙겨넣고 6 억원은 박근혜에게 주었으며 남은 2 억원을 1000 만원짜리 자기앞수표 20 장으로 만들어 자기에게 가져왔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국방장관 노재현에게도 따로 5 천 만원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당초 청와대 금고 안에 있던 돈의 액수가 9 억원이라는것 부터가 계산이 맞지 않는다. 즉 전두환이 자기 주머니에 얼마를 더 챙겨넣었는지, 누이동생이나 다름없던 박근혜에게 얼마를 더 건넸는지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6 억 플러스 알파였을 거라는 추정만 가능할 뿐이다.
당시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으로서 자기 위에 직속상관이 세 명이나 있었다. 계엄사령관 정승화와 국방장관 노재현, 대통령 권한대한 국무총리 최규하가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이들에게는 사전 사후 보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청와대 금고 내용물을 제멋대로 처리했다.
제일 중요한 금고는 비서실장 금고가 아니라 대통령 집무실 금고였는데, 국가 재산에 해당하는 그 내용물에 대해서는 아무도 손을 못대게 했다.
합수부에서 그 금고를 열지 않았다면 도대체 그 금고를 열고 내용물을 가져간 장본인은 누구일까? 그 금고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뿐이었고, 그 대통령이 죽은 뒤 그 금고열쇠는 유품으로 큰영애에게 전달됐다.
그 금고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큰영애 이외에는 누구도 모른다. 아마 전두환도 모를 것이다. 그가 나중에 왜 자기가 그때 금고를 챙기지 않았는지 땅을 치고 후회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청와대 수색이 단행된 그 날 수사관들이 그 금고를 열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두환은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을까?
그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즉 국가공무원으로서 이 일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양아들이자 박근혜의 양오빠로서, 즉 가족의 일로 이 일을 처리한 것이다. 적어도 양아버지가 비명횡사한 지 불과 이삼일이 지난 그 시점에서는 그 가문의 충직한 집사로서, 또 큰영애를 자기가 모셨던 주군의 상속자로서 최대한 존중해 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1979 년 10 월 29 일 경 청와대 본관
빨간 바탕에 두 개의 별판을 단 은색 피아트 132 한 대가 정문에 도착했다. 정복 차림에 상장을 단 사내 하나가 차에서 내리더니 거침없이 본관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이층 거실에는 상복을 입은 20 대 후반의 여자가 혼자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다가 뛰어 올라온 남자를 맞았다. 본관 이층에서 근무하는 비서와 부속실 직원들을 미리 내보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냈다. 남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 큰 영애. 각하의 유품들 (집무실 금고안에 있던)은 무사히 인수했어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는 몹시 불안한 표정이 감돌았다.
“오빠,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답답한지 고개를 돌렸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곧 여기 (청와대) 에서 나가셔야 할텐데 비좁은 신당동 집에서 동생들과 살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
하면서 봉투를 한 개 여자에게 내밀었다.
“00 억원이예요. 이제 큰영애가 가장이십니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뭇소리없이, 그러나 당연하다는듯이 봉투를 받았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말아요. 장례식이 내 달 3 일로 잡힐 것 같은데, 아마 그 이후에 이사하게 될 거예요”
남자는 짧은 대화 도중 두 번이나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다. ‘우리’는 다름아닌 박정희가 직접 키운 친위장교들의 비밀 사조직 하나회를 의미했다. 남자는 하나회의 회장이었는데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 이었고 그의 동기들과 1 년차 후배들은 실전부대의 사단장들이었다.
이상이 박근혜 6 억원 사건의 ‘사실에 아주 가까운’ 전말이다.
당시 6 억원은 지금의 약 200 억원에서 300 억원 정도로 추정하면 엇비슷할 것이다.
박근혜 등록재산이 20 억 좀 넘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돈으로 이 돈을 내놓겠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혹시 원금 6 억원 만 내 놓겠다는 말은 아니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