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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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월 17 일 서울 날씨는 쌀쌀했다. 처음으로 긴 팔 셔츠를 입었다. 나는 겨울에도 답답해서 긴 팔을 입지 않는다. 싸르니아의 여름 패션과 겨울 패션의 차이는 간단하다. 쟈켓을 걸치느냐 안 걸치느냐 의 차이 뿐이다. 그 날 긴 팔 셔츠를 입은 이유는 여행올 때 가지고 온 윈드자켓을 싱가포르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분당에서 시청 근처까지 오는 광역버스를 탔다. 시청 근처에 내렸다. 프레스센터 부근에서 보기드문 광경을 목격했다. 웬 아이가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름은 김왕규진, 연희초등학교 4 학년, 올해 열 한 살이라고 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컵라면을 먹고 있던 아이가 고개를 꾸벅했다. 우선 보드에 써 있는 글부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테이블 앞에는 서명대가 놓여 있었다.
다른 건 묻지 않았다. 다만 여기 써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냐고만 물어봤다. 아이가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서명대에 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등을 기재하고 서명을 했다. 아이가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50 대로 보이는 아저씨 몇 명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아이의 일인시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다. 학교도 문제고 아이도 문제라는 양비론이 주류였다. 원래 양비론이란 저울기능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 된 참가상 같은 거다.
과연 보드에 적혀 있는 내용이 사실일까?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양측의 말을 듣고 교차확인 한 적도 없고 사건의 전개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한 적도 없으므로 ‘저 아이 사건’ 과 관련해서 직접 가타부타 하지는 않겠다.
그냥 떡 본 김에 제사지내는 식으로,, 간략하게 소감만 말하려고 한다.
사건 자체를 보고 느낀 소감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떠 오른 잡생각들을 정리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지금부터 말하는 건,, 김왕규진 군이나 연희초등학교 해당 교사와는 무관한 이야기라고 봐도 좋다.
......
내가 생각하는 위험한 부류의 사람들 중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종교교리’를 따르도록 강요하는 교사들이 있다. 보편적 가치가 시민정신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 다시 말해 제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이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도높게 규제하고 있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종교 또는 문화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거나 상호존중, 톨러런스 마인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기 전에 질문부터 하나 해 보자.
과연 종교란 무엇일까?
종교란 원래 삶과 죽음, 자아의 영, 이런 초월적 주제들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거기에 복종하고 따르는 게 아니라 인간이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영원한 프로세스’ 라야 원래의 종교의 의미에 좀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헌데 언젠가부터 일부 종교는 영원한 프로세스가 아닌 ‘누군가가 제멋대로 내린 결론에 대한 복종’의 이데올로기로 변질해 버렸다. 이를테면 “XX 믿어야 구원받고 천당간다” 는 식의 결론이 누군가가 제멋대로 만들어 낸 결론들 중 하나다.
저 아이 사건의 경우는 기독교와 관련된 것이니만큼 기독교 보수교파의 경우로 그 종교범위를 한정해서 말하자면 그렇다.
그렇다면 제멋대로 내린 결론을 교리화한 종교는 종교가 아닌가? 말하자면 빗나간 종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도 종교가 어느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한 형태일 것이다.
기독교의 경우 기원후 4 세기 경부터 이런 '단순명쾌한 결론'이 등장했다. 원래 예수선생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한 진짜 메시지는 좀 더 본질적인 '프로세스'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예수선생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느닷없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복잡함과 진지함 대신 순종과 믿음만이 강조된 교리는 대체로 기원후 4 세기 경부터 18 세기 경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의 잣대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국가의 주류교단에서는 아직도 그런 교리가 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왜 이런 교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진리의 잣대로 받아들여졌을까?
거기에 대한 싸르니아의 답변은 별로 신통치는 않지만 복잡하지도 않다.
그게 4 세기 경부터 18 세기 경까지 유럽사회의 평균 지력 수준에 합당하도록 설계된 맟춤형 교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대의 평균 지력에 맞게 제작된 맟춤형 교리에는 창조신화와 원죄론, 대속론 구원론, 심위일체론이 페키지로 포함되어 있었다.
계몽주의 시대로부터 200 년이 지났고, 챨스 다윈이라는 인류의 해골구조를 송두리째 뒤엎은 특출한 과학자가 이 세상을 살다간지도 그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저 아이의 나이가 열 한 살이라고 했다.
열 한 살 이라면, 자기 자신이, 이 사회가, 이 세상이, 우주만물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밀하기 짝이없는 상호관계와 작용을 거쳐 생동하고 있는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탐구하는 태도부터 가져야 할 나이다.
열 한 살 짜리 아이의 입에서 “이 세상은 하나님이 6 천 년 전에 6 일 만에 창조하셨으며,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라는 말부터 거침없이 나온다면,
그것은 “김정은 장군님과 김정일 대원수님이 안 계시면 조국도 없습니다” 라고 외치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정신세계가 아니다. (싸르니아보고 종북이라고 한 인간들 다 나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식으로 생각의 통로가 폐쇄된 아이가 그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 장래에 형성할 수 있는 지력의 한계란 너무나 뻔한 것이다.
21 세기 인류문명은 이런 문제를 눈치 챌 정도로 그 인문적 감각과 통찰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서 어린 아이들에 대한 학교에서의 종교강요를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중고등학교에서 매우 섬세하게 커리큘럼화된 종교 역사와 그 사상사에 대해 공부한다)
물론 문명국이라고 해서 교사들의 특정 종교 전도 행위를 모두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강요나 유도를 완벽하게 규제하기는 어렵다.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좀 더 강력하고도 디테일한 규제를 위한 입법에 의회가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또 길어지고 삼천포 (경상남도 사천시) 로 빠지려고 하는데,
어쨌든 공립학교건 사랍학교건 학교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강력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대체로 제 정신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창조신화나 The Theory of Intelligent Design (지적설계) 같은 것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런 것은 과학과목이 아닌 종교나 교양상식에서나 다룰 문제다. 아직은 기독교 문화잔재가 남아있는 미국의 어느 시골 소도시에서조차 지적설계론을 과학과목의 커리큘럼에 집어넣자고 주장하는 얼빠진 교육위원들을 주민투표로 모조리 낙선시켜 버렸다. 지금으로부터 8 년 전의 일이다.
교과서에 등장해선 안 된다고 판정이 난 종교적 주장을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일단 불법이고 합법이고를 떠나 보편적 시민윤리에도 어긋나는 짓이다.
교사라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을 그만 두던지, 교사직을 그만두고 선교사로 뛰든지,,,,,, 하길 바란다.
참고로,, 이 아이는 어떤 부분에서 드러나는 천재성과 예지가 남다른 것 같은데,
그런 아이이니만큼 아직 뭐가뭔지는 잘 모르더라도 기독교의 전통교리를 접했을 때 본능적인 혐오감이 일어남과 과 동시에, 그것을 불합리하게 전파하려는 어른들에게 강력한 저항감이 발생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