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애환을 겪다보면 아이 문제가 절대로 부부 문제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늘 가슴을 누른다. 그 까닭에 아이들을 상담하기 전에는 반드시 부모를 먼저 일정기간 동안 상담하면서 그 가정의 분위기도 파악하고 부부간의 문제도 알아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개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아이들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부부의 문제,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문제들이 곪고 터져서 아이의 문제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는 게 그다지 기쁘지 않은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문제를 끌어안고 자라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분출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먼저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왜 기쁘지 않은가를 알아내려는 노력이 있지 않으면 그것이 내 아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아이의 아이, 그 아이의 아이까지 동질의 문제로 고통을 받게 된다.
'사는 게 그다지 기쁘지 않은' 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가 있다. 특히 요즘같은 경기에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은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반드시 경제적 곤란이나 결핍으로만 가정이 불행해지지는 않는다. 꼭같은 문제라도사람마다 자기가 자라오면서 보고 배운 것(절대로 학교교육과 무관한)에 따라 해결방식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학업으로 고민한다. 엄마가 원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와주지 않다거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기르는 일처럼 힘든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꼭같이 60점 맞은 아이라도 엄마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느냐가 아니라 각각의 다른 반응이 나오게 된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을까가 더 중요하다. 심한 경우에는 아이의 학교생활 정도가 자신의 행복지수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 엄마도 있는데, 왜 그것이 그리도 중요한가를 돌아보는 일은 사실은 아이의 성적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공부 잘해주는 아이, 그 이상의 효도는 없어보인다. 하지만 과연 아이가 공부를 잘해주는 그것 한가지에만 국한되는 갈등인지, 아니면 내 안에 미처 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나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자꾸만 아이로 하여금 내가 한 부분을 해주기를 원하는 것인지는 서로 다른 것이다.
남편과의 갈등도 엄마들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마음의 짐으로 작용한다. 어느 교육학자는 자신의 삶에서 우선순위를 말할 때 남편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부부 간의 장벽이라고 했다. 아내 인생에서의 일순위는 남편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가정의 문제가 슬며시 시작이 된다. 아내에게 일순위가 되지 못하는 남편들과 일순위가 아닌데 아빠를 밀치고 일순위가 되어버린 아이들이 한가정을 이루면 역기능 가정이 되어버린다.
요즘에 젊은 한국 엄마들이 생각보다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것에 종종 놀란다. 이혼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결혼도 쉽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엄청난 계약이다. 상대가 도리를 다하면 나도 하겠다는 계약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나자신과 맺은 계약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결혼서약에서도 '아내(남편에게) 최선을 다하겠느냐"는 묻지만 만일 상대가 그렇지 못할 때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질문은 없다.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에는 사실 배우자의 처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미안해해야 하는 게 아닐까.
20여년을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결혼에 대해 느낀 점이 있다면 미국 사람들이 애정표현들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가 오히려 동양사람보다 낫다는 것이다. 남 앞에서 남편의 허물을 얘기하는 것이나 비아냥거리면서 이야기하는 평상시 대화를 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예외는 있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들의 경우, 부부 간의 문제가 생기면 싸움으로 끝내지 않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돈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결혼 상담도 받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쓴 뒤에도 안되면 그때에야 이혼서류를 제출한다. 캘리포니아는 No Fault Law 라고 해서 한쪽 배우자만 원하면 상대쪽에 아무 잘못이 없어도 이혼서류가 접수되고 신청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19년을 함께 살면서 우리 부부도 부부 상담 여러번 받았고 정말 이혼하고 싶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이 결혼을 선택한 사람은 바로 나자신이었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노력 없이 포기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대로 이혼하지 않는다라고 탈출구를 봉쇄해버리고나니 오히려 문제의 핵심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어려서 부모님이 헤어지신 아픔을 겪었고, 남편도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편모 슬하에서 자란 사람이다 보니 비현실적인 환상을 끌어안고 결혼을 한 셈이었던 우리 부부. 내가 생각하는 남편에 대한 기대치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남편이 생각하는 남편상의 차이는 정말 컸고, 기대치의 차이는 많은 갈등을 낳았다.
내가 생각하는 남편상은 우선 기댈 수 있고 믿음직하고 나를 잘 보호해줄 수 있고 내가 필요할 때에는 늘 나를 위해 달려와줄 수 있고 나를 끔찍이 아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건 아버지상이지 남편상이 아니고, 남편은 나와 꼭같이 약한 부분이 있고 도움이 필요하고 때로는 내가 보호해줘야 할 수도 있는 동격의 존재임을 깨닫는 데에 19년이 걸렸다.
이제는 희미하게나마 정신을 차려서 남편이 내 마음에 차지 않게 할 때에도 아, 남편은 그런거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다. 아버지도 다 못해주는데 남편이 어떻게 다 해주랴. 성경에서 아내를 돕는 배필이라고 한다. 남편을 도와주려면 내가 도울 여력이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상담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정말 가정의 문제의 가짓수가 어쩌면 그렇게도 많고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한가이다. 하지만 가정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배우자에 대한 애정지수이다. 모든 변화는 사랑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변해주길 바란다면 불가능한 소원이다. 사랑이 없거나 식었다면 지금 이순간부터라도 사랑을 찾아야만 한다. 한때 미국에서 '당신의 배우자와 새로이 사랑에 빠지라'는 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만났던 그 마음이 아무 노력 없이 지속된다는 것은 거짓환상이고, 아주 많이 노력해야 그 사랑이 유지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내가 사랑받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당연히 남편은 나를 사랑하기 어렵다는 것은 조금은 씁쓸한 얘기지만 사실이다. 부부는 남남이 만난 관계이기에 부모 자식처럼 아무 노력이 없어도 사랑이 저절로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오늘 또 새롭게 결심한다. 내 곁에서 지난 19년 동안 함께 있어온 그 남자와 새롭게 사랑에 빠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