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두 번 뿐이긴 했지만 죽은 사람의 형상이 보인 때도 있었다.
유서깊은 오래된 도시를 여행 할 때 이런 경험을 하곤한다.
목소리만 들릴 때와 형상이 보일 때의 차이가 있다. 내가 그 죽은 사람과 전생에 어느 정도 깊은 관계를 가졌었느냐에 따라 단순히 목소리만 들리기도 하고 형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지고 알아지는 차이다.
이번 여행에서...... 또 그런 일을 겪은 것 같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 3 월 20 일 목요일
산타클라라를 경유해서 트리니다드로 가기 위해 바라데로를 출발했다. 바라데로에서 산타클라라까지는 시외버스 Viazul 을 이용했다. 산타클라라에서 자동차를 렌트했다. 체 게바라 묘소에 들렀다 가려면 렌트카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최종 목적지는 트리니다드 였다. 트리니다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도시다. 쿠바에 가는 여행자라면 올드아바나와 함께 빠뜨려서는 섭섭한 '강추' 여행지다. 이 도시 근교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광대한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노동 흔적을 찾아가려면 역시 직접 운전해서 돌아다니는 게 편리하다.
렌트카 영업소에는 50 세 쯤 되어보이는 몰라또 (흑인과 스페인계의 혼혈) 남자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불붙이지 않은 시가를 입에 문 채 넋빠진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있던 그 사내는 나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며 “꼬레? 하뽄?” 하며 출신 나라가 어디인지부터 물어보았다.
도착할 때부터 느꼈던거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여행자들, 특히 동양계 여행자들에게 무척 관심이 많았다. 보통은 ‘치노?’ (중국인인가요?) 하고 질문을 시작하는데, 이 렌트카 영업소 직원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라고 물었다. 외국인들 출신나라를 알아맞추는 감각이 남다른 것 같았다.
미소로 답을 대신한 채 마당 한 구석에 세워져 있는 파란색 올드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959 년식 쉐볼레였는데, 신기하게도 자동트랜스미션을 장착하고 있었다. 에어컨은 없었지만 날이 그다지 덥지 않아 문제될 건 없었다.
무엇보다 차 색깔이 맘에 들었다. 세련된 파란색. 고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울트라블루였다. 렌트비 70 CUC를 현찰로 지불했다. 쿠바에서는 별도의 국제 면허증 없이 알버타주 면허증 만으로 운전하는 것이 가능했다.
차는 아직 쓸만했다. 시동걸 때 매연이 좀 나왔지만 대체로 손질과 정비가 잘 된 차였다.
산타클라라 시 외곽에 있는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 선생의 묘소
체 선생 묘소에서는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준비해 온 꼬히바 시가 한 개에 불을 붙였다. 다행히 올드카 안에는 라이터플러그가 있었다. 담배를 끊은지 정확히 10 년 6 개월만에 직접 시가에 불을 붙이니 기분이 이상했다. 입 안에 들어 온 시가 연기를 내뿜을 때 기침을 할 뻔 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가를 대리석 계단 위에 올려 놓았다. (체 선생은 생전에 몬테크리스또와 꼬히바 시가를 즐겨 피웠다. 두 종류의 쿠바산 시가 모두 고급이며, 특히 꼬히바는 최고급 시가다.)
“이게 선생께서 젤 좋아했던 시가라면서요? 비싸게 주고 샀어요.
뭐, 그래도 괜찮아요, 괜찮아.. 선생께선 태생이 부르주아 출신인데 어쩌겠어요.
100 원 짜리 '환희' 피우면서 궁상떨어야 뭔가 실천하는 건 줄로 착각하고 있던 바보들에 비하면 솔직해서 좋아요.
근데 아스마 환자가, 작전 중에 시가를 그렇게 많이 피워 동료들을 걱정하게 만든 건 비판대상 아닌가요?
ㅋㅋ.”
동상을 올려다 본 채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는 다시 올드카에 올랐다.
이번 여행 중 겪은 믿기 어려운 사건 이야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잠깐 쿠바에서 산타클라라 라는 도시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아시다시피 쿠바혁명은 1959 년 신년 벽두, 피델 카스트로 형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게릴라부대가 아바나에 입성하면서 달성됐다. 바티스타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친미독재정권의 고위관리들이 쿠바를 탈출하기 위해 보따리를 싸기로 결심하게 한 사건이 바로 산타클라라 함락이었다. 이 도시를 마지노선으로 여긴 바티스타 정권은 2 개 연대 병력을 태운 중무장 장갑열차를 이 도시에 파견했다.
망조가 들려고 그했는지 스물 두 량으로 편성된 이 장갑열차는 어처구니없게도 산타클라라 근교에서 전복사고를 일으켰다. 게릴라들이 선로를 끊어놓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장병력을 동선이 뻔히 알려져 있는 철도편으로 보냈다는 것 자체가 상식이하의 짓임에 분명했다.
체 게바라가 이끄는 2 백 여 명의 무장게릴라들은 문짝을 땅바닥에 깐 채 옆으로 자빠져 있는 정부군 장갑열차를 한심하다는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그 안에 갇혀 “사람살려” 를 외쳐대는 약 4 천 여 명의 정부군 병사들에 대한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무장게릴라들은 ‘착한 사마리아인’ 이 되어, 또는 나이팅게일 이라든가 에디스 카블 같은 천사 간호사들이 되어 부상병들을 정성껏 치료해줬다. 집에 가고 싶은 병사들은 무기만 반납시킨 채 조건없이 방면했다. 대부분의 정부군 병사들은 집에 가는 대신 게릴라부대에 합세했다. 정부군 병력과 최신 미제무기들을 고스란히 접수해 버린 것이다. 세계 전쟁사상 최대의 횡재로 기록될만한 기이한 사건이었다.
다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서,,,,,,
산타클라라 시내를 벗어나 474 번 국도로 들어섰다. 주위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하이빔으로 올렸다. 왼쪽 하늘에 달이 떠 있었는데, 구름에 반사된건지 옆에도 같은 모양의 달이 떠 있었다. 달이 두 개 인듯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은 또 처음봤다.
인가없는 숲길을 약 20 분 쯤 달렸을까, 길가에서 누군가가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히치하이커인가? 여자같은데,,,’
여자고 남자고 히치하이커를 차에 태우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으므로 그냥 서행으로 지나쳐갔다. 그러나 결국 차를 세웠다. 헤드라이트 불빛에 얼핏 비친 히치하이커가 어린 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운전하는 올드카는 아이가 서 있는 곳에서 10 미터 쯤 더 가서 정지했다. 사이드미러에 아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차를 천천히 후진시켰다.
열 살 쯤 되었을까? 어깨 뒤로 늘어뜨린 긴 머리에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드레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이가 열린 창문을 통해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새까만 눈동자와 가지런한 치아가 돋보이는 전형적인 남유럽계 아이였다.
“조금 가면 염소농장이 있는데 거기까지 태워다 주실래요? 집이 거기에요.”
아이는 뜻밖에도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내가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아이가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약간 망설이다,,, 차를 출발시켰다.
아이에게 물었다.
“얼마나 가면 농장이 나오니?”
아이가 대답했다.
“조금만 가면 되요.”
이름과 나이를 물어 볼 차례다.
“아저씨는 ‘싸르니아’ 라고 해. 너는?”
“Adriana 라고 해요.”
“몇 살?”
“열 두 살”
“열 두 살.. 보단 좀 어려 보이는구나. 한 아홉 살이나 열 살 정도인 줄 알았어”
아이가 말없이 창밖을 바라 보았다. 어둠이 낮게 깔려 있었다.
아이의 쓸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살 때 죽었으니까요. 콜레라에 걸렸었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아이가 자기 동생이나 언니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늦된 아이인가 싶어 다시 아이를 쳐다보았다.
쳐다보는 순간,,,,,,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옆 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
옆 자리는 빈자리였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뒷자리 역시 비어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너무 놀라서 그랬던걸까? 순간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깨어보니 날이 환히 밝아 있었다. 올드카에는 동그란 모양의 옛날식 시계가 붙어 있었는데 일곱 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려 열 두 시간 가량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미친듯이 차를 몰아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길도 모르면서 아무 골목이나 헤메다가 ‘까사’ (여행자 민박) 표시가 있는 어느 가정집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두드렸다. 약간 뚱뚱한 흑인 아줌마가 문을 열더니 외국인 여행자를 보고는 속도 모르고 활짝 웃어주었다.
어느 차가 내 차 였더라......
나는 흑인 아줌마에게 다짜고짜 10 CUC 짜리 지폐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올라 (안녕하세요) 수신자부담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전화를 건 곳은 보험회사인 Great-West Life 의 여행자용 핫라인 이었다. 나는 회사를 통해 글로벌 여행자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
“어젯밤 겪은 일로 현지의 psychiatrist 에게 상담을 받고 싶은데 이런 케이스도 보험처리가 가능한 지, 가능하다면 트리니다드시에서 소개할만한 상담 클리닉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별 기대하지 않고 전화한 건데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쿠바의 서비스 프로바이더들(병원 등)과는 디렉트페이 계약이 되어있지 않아 일단 현지에서 서비스 사용자가 비용을 지불하고 캐나다에 돌아와서 reimbursement (비용상환) 신청을 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왔다.
두 시간 쯤 후, 나는 센프란시스코 교회 근처에 있는 클리닉 상담실에서 의사와 마주 앉았다. 에니필립 롤리아스 (Enippiliph Rolias) 라는 이름의 50 대 남자였는데, 항상 웃고 있는 듯한 서글서글한 인상이 아음에 들었다.
트리니다드 시내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교회.
이 교회 근처에 정신과 상담 클리닉이 있다.
나는 그에게 어젯밤 산타클라라에서 트리니다드로 오는 도중에 겪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거기에 덧붙여 몇 년 전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몇 백 년 전에 죽은 사람의 혼령을 만난 일, 작년 가을 말레이시아를 여행 할 때 말라카의 어느 교회 안에서 빙의될 뻔 한 일 등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닥터 롤리아스는 미소를 지으며 ‘뇌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이론에 대해 알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는 사람의 얼굴 모습과 목소리 등에 대해 끊임없이 갱신되어 들어오는 정보자료들을 축적하는데, 축적된 정보자료들을 토대로 나름의 재창조되거나 왜곡된 모형과 음향도 구축한다고 한다. 잠을 잘 때 이렇게 재창조된 형상이나 소리 모형이 작동하면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깨어있을 때 그 모형이 생생하게 작동하는 경우를 가리켜 환각이나 환청현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설명을 마친 닥터 롤리아스는 뭔가 혼자 잠시 생각하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빠른 스페인어로 상대에게 뭐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고, 대답을 듣기위해 꽤 오랫동안 기다리기도 했다.
쿠바의 진주, 캐러비안 해안도시 Cienfuegos 시내를 지나가면서......
저 쪽에서 무슨 답변이 돌아왔는지 닥터 롤리아스의 얼굴표정에서 갑자기 미소가 사라졌다.
전화를 끊은 닥터 롤리아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혹시 2 년 전 쿠바에 콜레라가 창궐해 많은 사람이 사망한 사건을 알고 있었느냐” 고 물어봤다.
당연히 금시초문이었으므로 내가 오히려 진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되 물었다.
롤리아스가 여전히 굳은 얼굴로 확인했다.
“정말 몰랐습니까?”
“전혀요. 예방의학부문에서 세계 최고수준으로 알고 있는 쿠바에서 그런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도 나로서는 뜻밖입니다”
닥터 롤리아스의 표정은 혼란스러움으로 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나에게 조금 전에 통화한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상대는 산타클라라 시의 방역과 책임자였다. 방역과 책임자는 닥터 롤리아스와 의대 동기생이었다. 그 방역과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2012 년, 쿠바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산타클라라 시에도 콜레라가 번졌는데, 이 때 30 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첫 환자와 사망자는 그 해 3 월에 발생했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희생은 산타클라라 시의 동남쪽 교외에서 생겼다. 염소농장에서 일하던 일가족 여섯 명이 한꺼번에 몰살한 것이다. 두 부부와 세 아이,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부인의 남동생 등이 콜레라에 감염되어 차례로 사망했다.
무엇보다도 나와 닥터 롤리아스를 동시에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실은 !!! ,,,
사망자 이름 중에 내가 어젯밤에 만났던 그 소녀의 이름, Adriana 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드리아나는 염소농장을 관리하던 부부의 막내딸이었다고 한다.
잠시 후 싼타클라라 시의 방역 책임자가 닥터 롤리아스에게 보내온 팩스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성명: Adriana Marti
직업: 쎈 안또니오 초등학교 학생
출생: 2002 년 3 월 8 일
사망: 2012 년 3 월 20 일
사망의 종류: 병사
사망의 원인: 1급 수인성 전염병으로 인한 탈수증
지난 3 월 20 일 목요일 저녁, 내가 본 소녀의 형상과 목소리가 환각과 환청현상이라고 쳐도,,,,,,
소름끼치는 수수께끼가 여전히 남는다.
나는 어떻게 그 소녀의 정확한 이름과 나이, 그리고 사망원인을 '꿈에 나타난 그 소녀로부터' 들을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 그 소녀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다음 쿠바 방문 때는 닥터 롤리아스의 도움을 받아 그 소녀의 사진을 구해서 얼굴을 확인해 볼 생각이다.
그런 다음, 그 소녀의 묘지에 가 보려고 한다.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에서 맴돌아야하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제 그만 미련과 한을 내려놓고 편안히 잠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