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靑華白磁鐵砂辰砂菊花紋甁 (국보 제294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 김종제 일천 칠백 년 때였으니 꽃피는 조선의 어느 날쯤이었을게다 경기도 광주의 피끓는 젊은 도공이 연분홍 치마를 살며시 손에 쥐고 대궐집에 불려가는 기생인지 아리따운 여인네를 봤것다 저고리 위로 드러난 목줄기가 뽀얗고 가볍게 흔드는 엉덩이는 환한 달덩어리 같고 오월의 봄날이라 길가에는 국화도 어여쁘고 난초도 향기롭고 나비는 이미 날아와 앉아있고 벌은 붕붕 날아다니고 혼을 쏙 빼버리고 골목으로 사라져버린 여인네를 밤새도록 꿈에 품고있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백자를 굽는 것이었다 조선에 하나밖에 없는 아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을 굽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평생토록 품어안을 수 있는 매끈한 병을 하나 만들었던 것인데 그 여인네가 그리울 때마다 그 병에 술을 담고 입술을 마주댔다는 것이다
김종제 시인
1993 ≪자유문학≫ 등단 詩集으로 <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 <바람의 고백>, <내 안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이여>, <따뜻한 속도 2011>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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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華白磁鐵砂辰砂菊花紋甁에 담긴, 도공(陶工)의 지순한 그리움...... 외사랑의 모습을 보았음이런가? 아님, 청화백자를 빚은 유심조(唯心造)이런가? 그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겠다 국화문병은 온몸으로 女人의 선(線)을 가늘게 두르고, 뜨겁게 스며든 유약엔 도공의 거친 사랑이 충만하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도공의 허망한 꿈이었던가? 아니, 명백한 현실이었던가? 아, 그 어느 쪽도 아니면서 분명히 분명히 어느 쪽에 속해 있어라 - 희선,